대기업 끼어들기…‘내년은 암두 몰러’
업계 4위인 CJ GLS는 올해 삼성HTH를 인수, 순식간에 규모가 커져 업계 1위 현대택배를 위협하고 있고, 신세계 드림 익스프레스가 11월부터 택배업에 진출하면서 ‘빅4’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부그룹도 동부건설 물류부문을 동부익스프레스로 바꾸고 택배업에 진출한다는 설이 돌고 있다. 내년 업계 순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10월 대한통운은 물량 710만 박스(업계 추정치)를 기록하면서 한진의 670만 박스를 추월했다. 대한통운이 월간 기준으로 한진택배를 제친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대한통운은 “이미 올해 4월부터 매출액 기준으로 한진을 따라잡았다. 물량 기준으로 순위에서는 뒤지고 있었지만,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2위가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미 2위나 다름없으니 호들갑 떨기보다는 느긋하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물량 기준으로는 현대택배와의 차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앞으로 1위 자리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고무된 분위기다.
한진도 “2위 경쟁은 별로 의미 없다. 비슷비슷한 규모에서 조금씩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언제든 순위는 바뀔 수 있다”며 2위 경쟁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그보다는 “4위였던 CJ GLS가 삼성HTH를 인수한 뒤 업계 1위인 현대택배와 규모가 비슷해지면서 선두다툼이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종합물류기업체인 대한통운은 전체매출액으로 보면 업계 1위로 한진을 앞서지만, 택배사업에서는 한진에 뒤져왔기 때문에 2위 탈환은 물류업 1위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사업구조가 거의 비슷한 한진과 대한통운은 라이벌기업으로 항상 비교대상이 되어 왔다. 1961년 설립된 한진은 1992년 국내 최초로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택배사업을 시작했고, 1975년 설립된 대한통운은 1993년 ‘특송’ 서비스를 개시하며 택배사업에 진출했다. 전업택배사들이 모그룹의 물량을 지원받으며 몸집을 키워나가는 것과 달리 그룹 물량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형편이다. 그러나 오랜 전통에서 나오는 물류에 대한 노하우와 서비스가 꾸준한 매출의 동력이다.
그러나 한진과 대한통운이 2위 경쟁에 무덤덤한 것은 택배사업이 전체 회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15%가량으로 주력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업체는 공통적으로 “저가 경쟁을 하면 물량을 단기간에 늘릴 수 있지만 수익성을 담보로 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확장 경쟁은 하지 않는 편”이라고 얘기한다.
오히려 택배업계의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전업 택배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1999년 설립된 현대택배는 현대홈쇼핑 물량을 지원받으면서 2년 만인 2001년 업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2001년 설립된 CJ GLS도 CJ홈쇼핑의 지원을 받아 단숨에 업계 4위로 부상했다. 당시 TV홈쇼핑과 인터넷쇼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될 정도로 급성장하던 때로 그룹사들은 유통사업과 세트로 택배업에 진출하던 때였다.
현대택배는 현대홈쇼핑으로부터 물량 지원을 받았지만 현대가문이 여러 개로 갈라선 뒤 사정은 달라졌다. 현재는 현대홈쇼핑 물량은 현대택배와 대한통운이 주로 맡고 있는데, 두 업체는 우리홈쇼핑 물량도 나누어 맡고 있다. 한진은 과거 GS홈쇼핑 지분 8%를 보유하고 있을 때 GS홈쇼핑 물량을 주로 맡기도 했었다.
한편 중소 택배업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저가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택배업체들은 성장성의 한계를 고민하고 있다. 업체들은 국제물류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택배업계에서는 인수합병과 신규업체 진출이 화제다. CJ GLS가 삼성HTH를 인수한 데 이어 쎄덱스(Sedex: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가 11월부터 택배업에 진출한 것. 삼성은 인터넷쇼핑인 삼성몰이 호응을 얻지 못한 데다 최근 분당 삼성프라자 매각에서 보듯이 단계적으로 유통·물류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삼성HTH도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CJ GLS가 삼성물산의 물량을 보장받는 대신 ‘앓던 이’를 해결해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한편 CJ GLS가 삼성HTH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쎄덱스가 삼성HTH의 수도권 영업소 대부분을 빼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삼성HTH의 영업소가 대부분 CJ GLS와 겹치다 보니 구조조정에 대한 위기를 느낀 개인사업자인 영업소들이 쎄덱스와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CJ GLS의 민병규 대표가 쎄덱스의 송주권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양측은 부인하고 있다. 택배업계는 영업소 차량 직원들도 대부분 개인사업자 계약인데, 비싼 비용을 들여 삼성HTH를 인수한 CJ GLS와 달리 쎄덱스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영업소를 확보한 셈이다.
쎄덱스는 6개월 후 손익분기점에 도달, 2010년까지 연간 20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쎄덱스의 택배업 진출은 신세계의 홈쇼핑 사업 진출과 맞물려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신세계는 농수산홈쇼핑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택배업 전체 규모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터넷쇼핑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데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는 과거처럼 대량 운송보다는 맞춤형 운송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