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반영 시 한동훈 유리, 나경원 윤상현 대항마 거론…친윤계 이회창 소환에 친한계 이재명 사례로 응수
#전대 개최 시기 '7월 말 8월 초'
전당대회를 둘러싼 여당 내 계파 간 공방은 조금씩 정리되는 분위기다. 우선 전대 개최 시기가 ‘7월 말 8월 초’로 정해지는 기류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5월 24일 기자들이 ‘7월 말∼8월 중순 개최’ 가능성을 묻자 “지금 거론되는 시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 당 안팎에서 시기는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시기를 놓고서도 당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져왔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한동훈 전 위원장 출마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었다. 전당대회 시기가 빨라지면 한 전 위원장이 총선 패배 책임론에서 벗어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 출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 전 위원장 출마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전대 조기 개최론을 앞세워 왔다. 이 연장선에서 ‘6월 말 7월 초’ 개최가 한때 유력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중한 성격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는 속전속결보다는 바깥 상황을 엿보고 살피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방향으로 갔다. 물리적인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6말 7초’는 어렵고 이보다 한 달가량 더 연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은 5월 23일 비대위 회의에서 “원내 상황과 더불어민주당 전대 일정을 고려해 우리 일정을 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8월 전대를 열어 당 대표를 뽑는 만큼 여당도 그에 맞춰 지도부 진용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7월 말에서 8월 중순 사이에 새 여당 대표를 선출하면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집중됐던 전당대회 룰은 개정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민의힘은 5월 27일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어 서병수 전 의원을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했다. 서 전 의원은 강한 계파 색을 띠는 인사가 아니라는 평이다. 당내 지형보다는 외부 여론을 많이 들을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 발족과 함께 전대 룰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행 룰은 당원 투표 100%로 당 대표를 선출한다. 친윤계는 이 룰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총선 패배 후 이 룰을 바꿔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일정 비율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친윤계 내부에서도 ‘룰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많다. 전주혜 김용태 비대위원이 당 대표 선출시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가운데, 지도부도 이런 방향에 올라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원투표 50%·일반국민 여론조사 50% 비율로 경선 룰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당원들 반발을 고려해 당원투표 70%·여론조사 30%로 개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내 주 의견이다.
한 친윤 의원은 “당원 100% 룰을 고수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다. 남은 건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다. 수도권 중심으로 50% 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느냐. 당원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민심에 부합하면서 당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30%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 대항마는 나경원·윤상현?
어떤 구도로 가든 한동훈 전 위원장이 가장 유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그 자신도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당 대표 출마를 위해 워밍업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한 위원장은 5월 30일 지구당 부활을 들고 나왔다. 그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총선 당선·낙선인들을 만나 2004년 폐지된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현실 정치에 대해 본격적인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볼 때 당 대표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해석을 한다.
지구당은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후원회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중앙 정당의 지역 하부 조직이다. 지구당이 되살아나면 현역 의원이 지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처럼 원외 당협위원장도 지역 사무실을 두고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된다.
한 전 위원장은 “기득권 벽을 깨고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하고, 지구당 부활이 “정치 영역에서의 격차 해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 전 위원장은 다만 지구당 부활 전에 특권 폐지를 위한 정치 개혁 과제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 위원장이 4·10 총선 패배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해 공개 발언을 한 것은 정부의 해외 직구 규제 정책 논란에 이어 두 번째다. 지구당 부활 발언은 향후 자신이 뛰게 될지 모르는 여당 내부 정치판 구도를 직접 짜보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원외세력을 규합, 이를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뜻이다.
한 전 위원장과 겨뤄볼 만한 인물은 현재로서는 나경원 의원이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나 의원도 출마를 묻는 질문에 “안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는 5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 나가 차기 당 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당정 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고 제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정치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어서 한 달 전 (출마 의사가) 60이었다면 지금은 55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 소극적으로 해석되는 언급도 내놨지만 정치권의 분석은 달랐다. 나갈 가능성이 50%를 넘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내 주류도 나 의원에 대해서는 발목잡기가 별로 없는 모습이다. ‘찐윤’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은 5월 28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배승희입니다’에 나가 차기 당권 도전 가능성이 제기되는 나경원 의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이 의원은 나 의원이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을 ‘55%’라고 밝힌 데 대해서 “나온다는 것 아닌가”라며 “(50%를 넘었으니) 확률로 보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했다.
윤상현 의원도 ‘출마 유력’ 후보다. 그는 5월 29일 대구에서 자신이 주최한 보수 정치 토론회에 나간 뒤 기자들을 만나자 “(차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두고) 아직 나간다, 물러난다고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무조건 나간다’는 전언이 떠돈다는 질문에도 확답을 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윤 의원이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갖고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까지 온 것을 보면 윤 의원 역시 의지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이른바 ‘채 해병 특검법’ 등에서 당론과 다른 입장을 보였던 만큼 출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전당대회 민심 반영 비율도 높아질 터인데 인지도가 높고 팬덤까지 있는 한 위원장이 나온다면 가장 유력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며 “하지만 ‘지금은 쉬어야 할 때’라는 여론도 매우 강하게 형성돼 있는 만큼 이를 뚫고 나온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나경원·윤상현 의원이 그 틈을 노릴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 이회창 소환하는 이유
국민의힘 중진들, 그리고 친윤계에선 ‘한동훈 비토’ 여론이 감지된다. 이들은 패장을 조기에 복귀시켰다가 결국 실패한 경험을 소환한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게 패배했던 이회창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전 총재가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대선 패배 직후 불과 8개월 만인 1998년 8월 31일 한나라당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총재로 복귀했다. 55.7%의 득표율을 올리면서 이한동 김덕룡 서청원 후보를 따돌렸다. 그 당시에도 “이회창 말고 누가 있나”라는 대안 부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이회창 총재는 패장 책임론을 조기에 떨쳐내고 당권을 거머쥔 뒤 곧바로 대권 재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의 대선 대결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이회창 피로감’이 작용했고, 노무현 후보가 젊은층이 호응하는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을 들고 나오자 이에 대한 대응도 부족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정치 선배들이 한 위원장에게 지금은 쉴 때라고 조언을 자꾸만 던지는 것은 끌어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라는 의미”라며 “한 위원장이 이번 전당대회에 조기 복귀해 대선 프로그램을 곧바로 가동하면 이회창 총재처럼 피로감에다 당 내부와의 지속적인 마찰에 직면하면서 한동훈 특유의 신선미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정치판을 오래 봐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월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론에 대해 “정치적인 현명한 판단을 한다면 당분간 당에 들어와 대표 같은 걸 할 생각은 안 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다음 선거가 그렇게 오래 남지도 않았다”며 “2년 후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해야 할 텐데, 그때 등장할 수도 있고 하여튼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조언했다.
친윤 진영에선 이와 함께 지도부 구조 변경 아이디어까지 나온다. 현행 단일지도체제와 과거의 집단지도체제를 혼합한 형태의 절충형 지도부로 가자는 내용이다. 한 전 위원장이 ‘끝내’ 출마할 경우를 대비, 당 대표 힘 빼기 포석인 동시에 한동훈 강세로 인한 경쟁 후보들의 출마 포기를 막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과거 이회창과 지금의 한동훈을 비교해선 안 된다. 과거엔 정치인들이 몇 년 동안 뒤로 물러났다 복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민주당을 봐라. 미국으로 갔던 이낙연과 대선 패배 후 재보궐과 전당대회에 나온 이재명 중 지금 누가 더 잘 됐나. 한동훈 전 위원장 역시 비슷한 조언을 듣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