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유승민·안철수, 정책 비판하며 윤 대통령과 대립각…오세훈 윤 지원사격, 홍준표 동조 넘어 ‘원팀’
#한-유-안, ‘직구 사태’ 한 목소리
지난 4·10 총선 참패 후 칩거에 들어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식사 행보 및 도서관 출몰 정치를 통한 간보기를 중단하고 5월 18일부터 정치 현장에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날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정부의 해외직구 금지 조치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며 재고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 전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개인 해외직구 시 KC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의 해외직구 시 KC인증을 의무화할 경우 그 적용 범위와 방식이 모호하고 지나치게 넓어져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공정한 경쟁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정부”라면서 보수정부의 이념까지 규정지었다.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현안에 대해 공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윤석열 정부를 때리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정치권 평가를 뒷받침하는 대목이었다. 한 전 위원장이 국민 관심도가 높은 ‘직구’ 정책을 잡아내 정부를 질책한 것은 전당대회 출마 선언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7월 개최가 유력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예열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한 위원장이 공천 작업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만큼 당내에 이른바 ‘친한’ 세력이 형성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특히 한 전 위원장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았던 초선 당선인(44명)들의 행보가 변수로 거론된다.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이들의 지지를 받을 경우 “이번 전당대회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한 전 위원장과 같은 줄에 섰다. 그는 5월 21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배승희입니다’에 나가 정부가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 직구 금지를 추진하다가 사흘 만에 철회한 데 대해 “전형적인 탁상공론 또는 정책 실패 전형”이라면서 “현장에서 직접 본인들이 경험하지도 못하고 그냥 신문에 나온 내용들만 보고 필요한 조치라고 한 건데 그게 전혀 지금 세태와 맞지 않았던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 역시 ‘차별화 모드’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는 5월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 조치에 대해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라고 날을 세웠다. “KC 인증이 없는 80개 제품에 대해 해외직구를 금지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비윤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것 같다. 당장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차기를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여당 내 야당을 자처했던 박근혜가 좋은 본보기”라면서 “안철수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 역시 윤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통해 존재감을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오-홍, 대통령 지원사격
그동안 정부 현안에 대해 좀처럼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변화는 최근 정가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오 시장은 ‘직구’ 문제를 두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는 달리 윤 대통령에 대한 보호막을 쳤다. ‘동조화’ 코스에 진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 시장은 5월 20일 페이스북 글에서 “안전과 기업 보호는 직구 이용자들의 일부 불편을 감안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며 “시민 안전과 기업 보호에 있어선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 편에 선 셈이다.
오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을 비롯해 여당 내에서 정부 정책 혼선을 둘러싸고 비판이 나온 것과 관련해 ‘여당 중진의 처신’을 거론하면서 잘못됐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오 시장은 “함께 세심하게 ‘명찰추호’해야 할 때 마치 정부정책 전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여당 중진으로서의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쏘아붙였다.
‘명찰추호’는 사리가 분명해 극히 작은 일까지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작은 것도 빈틈없이 살핀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오 시장은 정책 전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한 중진이 누구인지는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가에선 잠재적 차기 경쟁자인 한 전 위원장을 때린 것으로 추측한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과 식사했다는 발언까지 한 홍준표 대구시장도 동조화 대열 쪽에 서있는 모습이다.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한 간접적 옹호가 아닌 날아오는 화살에 대한 직접적 방패를 치는 일까지 목격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5월 1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전날 이뤄진 검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야권의 ‘김건희 여사 방탄용’ 비판에 대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라고 했다. 그는 “당신이라면 범법 여부가 수사 중이고 불명한데 제 자리 유지하겠다고 자기 여자를 하이에나 떼들에게 내던져 주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홍 시장은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며 “비난을 듣더라도 사내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역지사지해보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인의 좌익 경력이 문제됐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한 번 보라”고도 했다. 김 여사 수사가 진행형인데 마치 죄가 있는 것처럼 단정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 역시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이 동조화를 넘어 원팀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이 만찬을 통해 홍 시장에게서 여러 조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연장선에서 홍 시장 역시 윤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지속중이고 홍 시장의 행보에도 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연쇄 반응이 이뤄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홍 시장은 5월 17일 매일신문이 대구에서 주최한 대구·경북 국회의원 당선인 결의회에 참석,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재추진을 발표했다. 그 후 사흘 만에 윤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도우라”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따라붙고 있다.
국민의힘 한 당선인은 “홍 시장이 한동훈 전 위원장을 당의 가치와 신념에 맞지 않는 인물로 몰아세우며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용산과의 브로맨스인 것 같다”고 했다.
#동조화냐, 차별화냐
정치권에서는 당권 경쟁에 들어간 여권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를 떠올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유력 차기주자였던 박근혜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후계자 양성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2기 내각 상징이었던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표적이었다. 2010년 6월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직후인 그해 8월 8일 개각에서는 48세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국무총리로 내정하는 등 파격 인사를 하면서 젊은 대항마를 만들어보려는 시도까지 했다.
뿐만 아니었다. 경쟁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 전술을 통해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 등의 인물들이 박근혜 의원을 상대할 필승조 대열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이 전 대통령 구상은 빗나갔지만 정치권에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여권엔 ‘박근혜급’ 차기 주자가 없다는 이유다. 따라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도처럼 현직 대통령의 의지가 차기 리더 결정에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친윤 진영의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의정활동을 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시대 변화를 얘기하면서 차별화에 나선 주자들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나경원 당선인이나 윤상현 의원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충분히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설 수 있지만 최근 직구 논란 등에서 정부 비판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오랜 정치 활동을 통해 힘이 어디서 작용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조차 이명박 대통령 임기말에 이르러서야 세력화에 나섰다. 정치판을 오래 겪어온 홍준표·오세훈 시장의 행동에는 경험치가 묻어 있다. 어느 정도 팬덤이 있고 정치적 기반이 탄탄한 정치인들이 동조화에 나서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도 “윤 대통령이 최근 여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이 역시 잘 봐야 한다”며 “차기 당권은 물론, 잠룡들의 지위에도 현직 대통령의 힘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