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2심 “노소영 기여” 인정…법조계 “뇌물죄로 본다 해도 공소시효 지나”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SK(주) 주식을 재산분할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노 관장 측은 SK그룹이 부친 노태우 씨의 도움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1991년 노태우 씨가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대통령 비자금 중 300억 원을 건넸고 이에 대한 어음까지 받았다며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관련 증거를 제출하기도 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말하는 300억 원의 비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 측 관계자는 “비자금 유입 및 유무형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다. 이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확인됐다”며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노태우 씨는 대기업에게 4100억여 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2628억 원을 추징하라는 명령을 받아 완납한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 300억 원이 앞선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비자금과는 별개의 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어음에 대해 “30년 정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이라고 보면서 “최종현과 최태원이 노태우의 존재를 배경으로 객관적으로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기업활동을 하는 등 노태우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노태우가 이러한 상황을 용인한 이상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및 SK그룹의 성장에 노소영 측의 기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새로운 비자금이 법원에서 인정되었다면 이 역시 추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법원은 이 비자금의 성격과 출처, 불법성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지는 않으면서도 “1991년도 기준으로 볼 때 300억 원이 불법적인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계속해서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재벌가 이혼 소송 역사상 법원이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한 적은 거의 없었기에 이번 판결은 매우 이례적이고 전향적”이라면서도 “다만 법원이 이 비자금이 부정한 성격의 자금이라고 보는 동시에 재산 분할 대상에서 뺄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이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자세하진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형사 전문 변호사는 “비자금 300억 원을 뇌물죄로 본다고 해도 이미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수사도 추징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준 300억 원을 이들의 자녀인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의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법적으로 다퉈 볼 여지가 있다”며 “대법원 상고심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다.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적지만 만약 문제가 된다면 이 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대법원 상고심이 이어질 전망이다. 최 회장 측은 “정반대의 억측과 오해로 인해 기업과 구성원, 주주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