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광해> 제작 보고회 현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제49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은 말 그대로 <광해 : 왕이 된 남자>(광해)를 위한 파티가 됐다. <광해>는 무려 15개 부문을 독차지하면서 제49회 대종상영화제 최고의 작품이 됐다. 유독 쟁쟁한 출품작이 많아 관심도가 컸던 영화제임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결과다.
모든 영화제는 출품작에 의해 평가 받는다. 좋은 영화가 많이 출품되면 그만큼 영화제는 풍성해진다. 영화 상영보다는 1년 동안 개봉된 한국 영화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 개념의 대종상 영화제가 더 풍성해진다는 얘긴, 그만큼 지난 1년 동안 한국 영화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 냈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제49회 대종상 영화제가 쟁쟁한 출품작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는 점은 한국 영화계 전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반면 수상 결과는 <광해>의 독주다. 15관왕은 영화제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기록이다. 그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니 <광해> 제작진과 배우 모두에게 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 부분은 의외다. 수상 결과만 놓고 보면 지난 1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제작된 영화 가운데 <광해>가 독야청청 홀로 출중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고 해외 영화제에서 끊이지 않는 수상 소식이 들려왔음을 감안하면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수상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광해> 측은 기쁨이 컸다. 분명 <광해>는 좋은 영화다. 그만큼 관객들의 큰 사랑도 받았다. 그렇지만 흥행 성적을 높이기 위해,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나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선 지적이 잇따랐다.
<광해>는 막강한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CGV를 소유한 CJ엔터테인먼트에서 직접 제작 기획한 영화다. 지금까지 영화의 투자 배급에만 관여해오던 CJ엔터테인먼트가 처음으로 직접 제작 기획한 영화인 터라 CGV를 필두로 한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지나친 <광해> 밀어주기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온 것. 게다가 관객수 1000만 명에 접근하자 다양한 이벤트 행사까지 마련하며 관객 수 올리기에 급급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러다 보니 <광해>는 분명 좋은 영화임에도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대종상 15관왕은 <광해>에게 더없는 축복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가진 대기업에서 만든 상업적인 영화로 각인된 <광해>는 대종상은 15관왕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작품성 있는 영화로의 탈바꿈에 성공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거듭해서 <광해>가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시상식장을 찾은 영화기자들 사이에선 “대종상 영화제인지 CJ의 밤 행사인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관건은 대종상의 권위가 <광해>의 작품성을 공식적으로 입증해 줬는지 아니면 <광해>로 인해 또 한 번 대종상의 권위가 추락했는지 여부다. 올해 49회째를 맞이하는 대종상 영화제는 분명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깊은 역사와 유서를 가진 영화제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그 권위가 크게 흔들려왔다.
대종상 영화제는 유난히 수상 결과를 두고 뒷말이 무성해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2000년엔 검찰에서 한 여배우의 소속사가 대종상 영화제 심사 위원에게 돈을 건넨 수상 청탁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엔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인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가 대종상을 공동 주최하며 대종상 영화제 부흥에 나서기도 했지만 그해 대종상 영화제는 가장 논란이 많았던 최악의 영화제가 되고 말았다.
▲ 지난 10월 30일 열린 제4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이다. 김기덕 감독은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냈고 1분 순서에서도 배우 조민수의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수상 부문을 <광해>가 휩쓴 1부 행사가 끝난 뒤 김기덕 감독은 사라지고 말았다. 중도퇴장한 것. 김기덕 감독 측에선 “몸이 좋지 않아 일찍 귀가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지나친 <광해> 쏠림 현상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냐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