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몰려드는 인파에 몸살…7월 섬 전역 역대 최대 규모 집회 예고
스페인 동부에 위치한 발레아레스 제도는 마요르카, 메노르카, 이비자, 포르멘테라 등 크게 네 개 섬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휴양지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 활기를 띠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근래 들어 다소 바뀌고 있다. 관광객을 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격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마요르카를 비롯한 섬 곳곳에는 “관광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적힌 험악한 그래피티가 발견되고 있으며, 심지어 섬의 공항을 봉쇄하고 호텔 밖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주말에는 마요르카와 메노르카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관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관광객 급증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온 시위대 수는 1만 명가량으로 추산됐다. 시위에 참가한 카르마 라인스는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곳에 5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금지해줄 것을 촉구한다. 또한 휴가철에 주택 임대를 하는 숙박업에 더 많은 규제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시위대는 스페인 정부에 신축 호텔과 휴양지 건설을 제재함으로써 방문객 유입을 억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엑셀터’의 자료에 따르면, 발레아레스 제도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약 45%가 관광업인 만큼 사실 관광객에 대한 이런 반대 시위는 다소 이례적이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시위를 벌였다는 건 주민들이 그간 얼마나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고통을 받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메노르카 섬의 비니베카 벨 주민들은 보다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미코노스’라고도 불리는 비니베카 벨은 하얀색 집이 줄지어 서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특히 셀카를 찍는 사람들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매년 이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만 약 80만 명에 달한다. 사정이 이러니 낮밤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게 된 건 당연한 일.
이에 참다 못 한 주민들은 얼마 전 관광객들이 특정 시간에는 아예 주택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을의 22개 입구를 모두 봉쇄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에 접근 금지 표시와 함께 쇠사슬을 친 것이다. 이에 따라 관광객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 사이에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관광객 반대 시위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카나리아 제도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는 5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관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시위 참가자들은 “당신들은 즐기고, 우리들은 고통받는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시위대들이 이렇게 항의하는 이유는 비단 소음 문제나 주거 환경 침해 때문만은 아니다. 무분별한 관광업으로 인해 기존의 주택들이 숙박업소로 전환되면서 정작 지역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 부족해지거나, 환경이 훼손되거나, 혹은 임금 하락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텐트와 자동차 안에서 생활하면서 노숙을 하는 주민들도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이는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위대들은 오는 7월에는 스페인 섬 전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를 조직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