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주주’까지 확대한다는 내용, 금융당국 동조…실제 증시 상승 효과는 미지수
현행 상법(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설된 조항이다. 하지만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명시되지 않아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사례 같은 논란이 나타났다는 것이 상법 개정론자들의 견해다. 이사들이 회사 이익만 따져 대주주에게는 이익이지만 소액주주들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22년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 개념을 추가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란 대주주나 소액주주 모두 각자의 주식 1주당 가치를 보호한다는 뜻을 담은 개념이다.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주식 1주당 가치는 동일하지만 실제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다르게 평가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5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도 해당 조항의 ‘회사’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로 바꾸는 내용이다.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 법 개정은 어렵다. 그런데 민주당은 왜 다시 개정안을 꺼내 들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2일 한국거래소의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같은 달 17일에는 역시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대주주가 임명한 경영진(이사회)이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 회사법(상법)을 꾸준히 바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토론회 발언 이후 별도 브리핑을 통해 ‘이사 충실 의무’ 강화를 담은 상법 개정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주주 보호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사 충실 의무 개정이 이뤄져도 추상적이고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는 만큼 보다 실용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대신 이사가 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는 회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장치를 강화한다는 것이지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에만 불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사회는 형식상 주주 대표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은 의결권을 가진 대주주의 뜻에 따라 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번 법 개정안 발의 이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6월 12일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세미나 축사에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다수의 시장 참여자도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를 지적하고 있다”며 그 해결책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제시했다.
또 이복현 원장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모범회사법은 명시적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그 외 영국, 일본 등도 판례나 지침 등을 통해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기업이라는 거대한 배를 운행하는 데 선장과 항해사의 역할을 하는 이사는 승객, 즉 전체 주주를 목적지까지 충실하게 보호하는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라며 “모든 시장참여자가 윈윈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 확대가 배임죄가 적용되는 형사적 이슈로 번져 경영환경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는 부작용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법을 고치고 보완 장치를 만들자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는 일맥상통하지만 법무부의 설명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이 원장은 6월 14일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브리핑에서 이 같은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소액주주 모임 등에서는 야당의 법 개정안과 이 원장의 발언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사회가 소액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는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소액주주들을 위한 경영판단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법 개정이 이뤄져도 당장 ‘밸류업’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사의 판단이 회사에는 이익이지만 소액주주에게는 손해라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소액주주에 불리해 보이지만, 일단 회사에 득이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모든 주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도 이사회가 자신들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소송전을 벌이기보다는 기회비용이 적은 주식 매도로 대응할 가능성이 클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