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한동훈 출마 저지 조짐 있지만 대세론 공고…친윤 일각, 김재섭 등 내세워 돌발 기류 형성 움직임
#운동장 입구까지 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6월 13일 ‘당원 투표 80%·일반 국민여론조사 20%’로 대표를 선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원투표 100% 방식의 2023년 3·8 전당대회 대표 선출 규정을 변경해 민심도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당내 주류인 친윤 의원들은 현행 규정 유지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4월 총선 참패 이후 여당을 바라보는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하자 민심 반영을 일부 하는 데 합의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개정특위는 대표와 최고위원단을 분리 선출하는 현행 단일지도체제는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지도체제를 단수가 아닌 복수의 권력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 계획이 무산되고 ‘원톱’ 체제가 유지됐다. 정가에선 복수 지도체제를 두고 ‘한동훈 대표 체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전당대회 규정 정리가 큰 마찰 없이 마무리된 것만 봐도 ‘어대한’을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리 바꾸나, 저리 바꾸나 대세를 변경시키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여당 주류 세력이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전당대회의 운동장 정비는 끝났다. 한 전 위원장 앞에 펼쳐진 운동장은 기울어진 형태가 아닌 것은 물론, 장애물까지 말끔하게 치워진 채 깨끗한 모습으로 정리됐다. 그가 결승선까지 맘껏 달리기만 하면 되는 말끔한 트랙이 일단 깔린 셈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해온 한 전 위원장은 몸 풀기를 끝내고 운동장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동훈 비대위 1호 영입 인재인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부산진갑)은 6월 13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더 이상 (출마 결정을) 미룰 수 없는 때다”이라며 “곧 한동훈의 시간이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은 6월 20일을 전후해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전당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세력이다. 여권 일각에선 정치 초보 한 전 위원장의 세력화에 대한 물음표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당대표 선거에 대비,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 불리기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또 캠프 준비도 완성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위원장은 자신이 공천장을 줬던 영입 인재 출신 22대 현역 의원들을 연이어 만나왔다.
한 전 위원장 측은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당을 접수한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에 나서는 것은 물론, 그의 측근들로 구성된 친한계 인사들의 최고위원 출마도 점쳐진다. 한동훈 비대위 시절 한 전 위원장과 호흡을 맞췄던 원내·외 인사들이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 한동훈 사수대로 활동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런 구상에는 과거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학습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깜짝 당선됐다. 하지만 이 전 대표와 함께 선출된 친윤계 최고위원들이 이 전 대표와 각을 세우며 연일 충돌했다. 이 전 대표는 힘을 전혀 쓰지 못했고, 조기에 물러나야 했다.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할 경우 원외 대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최고위에 사수대가 반드시 배치되어야 한다는 게 한 전 위원장 주변 인사들의 한목소리다.
이런 가운데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한 전 위원장 앞에는 호재도 터졌다. 한 전 위원장은 6월 8일 페이스북에서 헌법 제84조를 거론하며 ‘대통령이 되기 전 이미 소송이 제기돼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은 중단될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재명의 대항마’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한 전 위원장 글이 화제가 되자마자 검찰이 이 대표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에 연루된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겹겹이 놓인 바리케이드
한동훈 전 위원장의 운동장 진입을 막으려는 저지선은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한 전 위원장과 당권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점쳐지는 당내 인사들은 물론, 원외 인사들도 이런 저런 논리를 내세우며 운동장 내에 허들을 설치하는 것을 넘어 운동장 입장을 아예 저지하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것이다.
한 전 위원장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국민의힘 당원이 가장 많고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에서의 ‘배신자 프레임’이다. 한 전 위원장이 당권을 잡으면 윤석열 대통령과 엇박자를 낼 것이란 게 주요 골자다. TK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6월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나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관계에 대해 “제가 듣기로는 굉장히 소원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고 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복원시키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려움에 처하리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당대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TK 지역 한 현역 의원 말이다.
“김 전 최고위원 말처럼 TK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사이가 상당히 벌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 전 위원장이 지지율 떨어진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노리려 하고 있다는 이른바 ‘배신자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전 위원장을 강력 비판하면서 ‘대통령 보호론’을 가동하는 것도 이 논리의 연장선이다.”
전당대회 룰이 확정되고 사실상 전당대회 출발 총성이 울리자 한 전 위원장 경쟁자들도 앞다퉈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2021년 전당대회 때 이준석 전 대표에게 밀렸던 나경원 의원은 ‘원외대표 불가’ 논리를 앞세웠다. 나 의원은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싸움의 전장, 정치의 전장이 국회이다 보니 원외 당대표는 그런 부분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은 원외라서 리더십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몰아세운 것으로 읽힌다.
이어 나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것이냐’는 물음에 “누구를 겨냥하고 아니고가 아니라 리더십에 관한 답변”이라고 했지만 이 말을 곧이듣는 기자들은 없었다. 나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원내인데 원외에서 대표가 나와서는 이 대표와 상대할 수 없다는 논리 구도를 펼 것으로 보인다. 나 의원 측은 정치판을 오래 봐온 당원들에게 이 논리가 잘 먹힐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당대표 출마 의사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윤상현 의원은 ‘패장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윤 의원은 6월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전 위원장을 겨냥, “총선 패배에 책임지고 사퇴한 분도 다시 나오겠다고 한다. 당대표를 맡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는 논리는 민주당식 궤변”이라고 했다. 이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도 변하지 않더니 총선에서 괴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윤 의원은 “이번 당대표는 대통령과 갈등으로 당을 분열시키지 않을 분, 오랜 기간 당에서 성장해서 당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 한동훈 불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차고 넘친다는 뜻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원로인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도 패장 책임론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6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한 전 위원장에 대해 “내 동생 같으면 못 나오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당대표가 책임지고 국민들 앞에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고 사람이 겸손해야지, 선거 끝난 지 두 달도 안됐는데 또 대표 나선다? 이재명 씨가 대선에서 지고 국회의원 하고 당대표 한다고 얼마나 우리가 욕했냐”라며 나와선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친윤계, 돌발 기류 만들어 대세론 저지?
이처럼 한 전 위원장을 막아설 바리케이드가 설치될 조짐을 보이지만 이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한 전 위원장과 겨룰 만한 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여당 안팎의 한목소리다. 한 전 위원장이 이를 잘 알기에 출마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말도 뒤를 잇는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여당의 주류는 아직 전당대회까지 기간이 남아 있어 변수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전당대회 룰이 민심 반영을 하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당 주류가 마지막까지 그 비율을 20%로 묶은 것만 봐도 마지막 기회를 노리는 전략으로 보인다. 황우여 위원장이 룰 최종 확정을 앞두고 6월 12일 4선 이상 중진들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영남권 의원 등 당 주류를 중심으로 민심 30%가 아니라 20%를 끝내 고수했는데 이는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역전 승부를 노리는 시도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20%는 너무 부족하다.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적어도 50%는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최소 30%는 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운 결과”라면서 “민심 반영이라는 대세를 피할 수 없다고 본 친윤계가 20% 도입을 명분으로 삼은 후 반전을 모색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동훈 대항마’로는 나경원 윤상현 안철수 의원 등이 오르내린다. 일각에선 ‘2021년 이준석 모델’ 재현을 시도하면서 1987년생 초선 김재섭 의원(서울 도봉구갑)이 나올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특히 친윤 주류가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려 김 의원을 밀 것이란 관측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일부 친윤 의원들은 “김 의원이 돌풍을 일으키면 한동훈이 크게 밀릴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김기현 대표가 지난해 3·8 전당대회에서 될 때 그의 인지도가 높아서 됐나”라고 반문한 뒤 “똘똘 뭉치는 힘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바람이 형성되면 예상치 못했던 인물도 바닥에서 천정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자리를 거머쥐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대세론’은 분명하지만 이에 맞서는 돌발 상승 기류도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