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 들고 개떼처럼…야쿠자보다 ‘잔인’
▲ 영화 <비열한 거리>의 한 장면. |
이후 제보가 조금씩 나오면서 가해자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신종 조직폭력집단 한구레다. 한구레는 근래 세력이 크게 약화된 야쿠자를 대신해 밤의 세계에 새로운 지배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사회의 어둠, 한구레 실태를 <주간겐다이>를 중심으로 살폈다.
9월 2일 새벽 1시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에 위치한 클럽. 200여 명의 손님이 홀에서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추리닝에 검은 복면을 쓴 9명의 20~30대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안쪽에 있는 VIP룸으로 곧장 들어가더니 룸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인근 레스토랑 사장(31세)을 야구배트로 마구 때렸다.
▲ 도쿄의 한 클럽에서 젊은 남성들이 야구배트를 들고 나타나 술을 먹던 한 남성을 때려죽인 사건이 벌어졌다. 사진은 CCTV에 찍힌 용의자 모습. |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일당은 자칭 ‘배트맨’이란 이름의 한구레 세력 중 하나다. 한구레는 속어로 ‘반쯤 야쿠자’란 뜻으로 여러 신종 조직폭력배를 총칭하는 말이다. 제일 널리 알려진 게 도쿄의 ‘관동연합’과 ‘드래곤’, 오사카의 ‘강자’인데 조직원은 각기 30~40명에 달한다. 일본 전국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조직원 10명 안팎의 작은 규모 한구레 집단이 수십여 개가 있다고 한다. 조직원은 10~40대로 폭넓게 구성되는데 비행청소년, 야쿠자 조직에서 눈 밖에 나 제명당한 사람, 폭주족 출신, 술집·클럽 경영자, 성매매 업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관동연합’에는 자서전을 펴고 탤런트 데뷔에 나섰던 이시모토 다이치란 인물도 있을 정도다.
한구레는 마약판매, 사채, 보이스피싱, 자릿세 뜯기, 성매매 알선 사이트 운영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 그중에서도 마약판매와 보이스피싱이 주요한 수입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클럽이 즐비한 도쿄 롯폰기 일대는 도쿄 및 인근 지역에 뿌리를 내린 한구레 세력들이 선호하는 지역인데 그도 그럴 것이 암거래로 팔리는 마약매출 실적이 가장 좋다. 한구레 조직들이 최근 조직원을 늘리는 등 세력을 우후죽순처럼 불리는 데는 마약판매가 호조인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조직범죄전문가들은 롯폰기 클럽에서 일어난 살해사건도 마약판매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남성이 ‘배트맨’ 조직한테서 마약을 공급받아 마약소매상을 하면서 큰돈을 벌고도 마약을 판 돈을 빼돌리다가 그만 노여움을 사서 앙갚음을 당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집안이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피해남성이 서른이란 젊은 나이에 땅값이 비싼 롯폰기에서 레스토랑을 차린 데는 다 그만한 연유가 있다는 증언이 피해자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롯폰기 클럽에서 벌어진 사건의 잔인무도한 살해방식에서 드러나듯 한구레는 기존 조직폭력배 야쿠자보다 훨씬 흉악하다. 외부에 범죄가 드러나길 꺼려하는 기존 야쿠자와는 달리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원한을 가진 이를 무자비하게 때리거나 죽이는 탓이다.
이들이 응징에 나설 때의 특징은 설령 상대수가 적더라도 조직원 모두가 동시에 달려들어 습격하며 야구배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실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무리를 지어 몰려가 야구배트로 사람을 죽이면 대체 누가 죽였는지 경찰이나 검찰이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즉 특정인을 살해범으로 지목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에 잡혀 재판을 받더라도 형량이 비교적 가볍다. 실제 10여 년 전 일어난 한구레 세력 간 싸움에서도 한 10대 청소년이 배트에 맞아 사망했는데 싸움에 관련된 이들은 모두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기소되어 불과 몇 년 만에 석방된 바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반인과 시비를 벌일 때도 패거리를 지어 폭행을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올여름 오사카에서는 ‘강자’ 조직원 10명이 주차문제로 다투게 된 40대 남성을 에워싸고 발로 차는 폭행을 가했다. 그런가하면 밤에 시내식당에 가서 보호해준다는 구실로 자릿세를 받을 때도 무더기로 몰려가 행패를 부리는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행태를 두고 한 조직범죄 전문 저널리스트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은 야쿠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11년 12월 도쿄의 한 식당에 도쿄의 한구레 조직 20명이 나타나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파 간부 4명에게 맥주병을 던지며 그들을 때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태 같지만 이들이 이렇게 거침이 없는 것은 일본경찰의 대대적 단속으로 야쿠자가 지난 몇 년간 몸을 극도로 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야쿠자가 자신들조차 하기 싫은 더러운 일을 맡길 때 찾는 식으로 한구레를 필요로 할 때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보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다.
그런데 한구레는 한번 발을 들이면 헤어 나오기가 극히 힘들다. 바로 돈의 유혹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야 돈을 많이 가져갈 수 있는 야쿠자와는 달리 한구레는 돈이 들어오면 조직원간에 비교적 평등하게 분배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보이스피싱으로 500만 엔(약 6800만 원)이 생기면 10명 인원을 가진 한구레 조직에서는 한 사람당 50만 엔(약 680만 원)씩 돈을 똑같이 나눠가진다. 야쿠자처럼 사무실을 차려놓고 있는 게 아니라서 비싼 임대료를 낼 일도 없고 그저 갈취한 돈을 나눠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쉽게 돈을 벌면 평범한 일은 우습게 보여서 도저히 할 수가 없다. 한구레 조직원 간의 관계는 야쿠자에 비해 비교적 상하관계가 덜 엄격한데 두목과 간부라 불릴 만한 체계가 없다. 그저 명목상의 대표인 ‘리더’가 있을 뿐이다. 조직원끼리의 끈끈한 정을 아주 중시하는데 의리를 키우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도 동원한다.
▲ 관동연합 출신 탤런트 이시모토 다이치의 자서전. |
롯폰기 클럽의 살인사건 이후 일본경찰은 부랴부랴 한구레 파악에 나서고 있지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 야쿠자 감시와 적발에만 치중하다보니 신종 조직은 미처 살필 겨를이 없었던 까닭이다. 또 야쿠자 조직에는 각 파벌마다 정보원을 심어두고 있지만 한구레에는 정보원이 전혀 없다. 더군다나 한구레가 생긴 지는 불과 10년으로 역사가 짧아 조직범죄수사대가 갖고 있는 데이터 자체가 없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한구레란?
뜻 ‘반쯤 야쿠자’
조직 규모 10명 안팎에서 30~40명 정도 소규모
주요 범죄 마약 판매·사채·보이스피싱·자릿세 뜯기·성매매 알선 사이트 운영
주요 조직 관동연합· 드래곤·강자·배트맨
한구레 ‘지하격투기’ 세계
‘파이트 클럽’ 영화가 현실로
로마의 검투사처럼 상대가 죽을 때까지 격투를 한다? 일본의 신종 조직 폭력 ‘한구레’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격투기에 빠져들고 있다. 소위 ‘지하격투기’라는 것인데 클럽 지하나 작은 경기장을 임시로 빌려 불법으로 격투기를 여는 것이다. 링에 등장하는 선수는 대체로 한구레에 소속된 조직원들로 자기 주먹을 시험해보는 동시에 실전연습을 하고자 격투기에 참가한다. 토너먼트로 최종 승자를 가린다.
그런데 이런 지하격투기에는 규칙이 없다. 상반신을 벗고 등이나 배에 새긴 문신을 드러낸 채 별다른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무조건 상대를 때린다. 머리를 가격해도 상관이 없어서 실제 지하격투기에 나가 사망한 조직원도 있을 정도다.
조직원들은 지하격투기 티켓을 강매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K1 같은 격투기가 “매번 패턴이 비슷해 따분하다”며 지하격투기를 구경하고자 제 발로 지하격투장을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났다.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 값이 제일 저렴한 4000엔(약 5만 4000원)이다. 링 바로 앞 VIP좌석은 표 가격이 열배는 족히 넘는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일본 각지에서 매주 한 차례 지하격투기가 열리는데 지하격투기 선수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이는 무려 3만 명에 달하고 있다. [조]
‘파이트 클럽’ 영화가 현실로
로마의 검투사처럼 상대가 죽을 때까지 격투를 한다? 일본의 신종 조직 폭력 ‘한구레’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격투기에 빠져들고 있다. 소위 ‘지하격투기’라는 것인데 클럽 지하나 작은 경기장을 임시로 빌려 불법으로 격투기를 여는 것이다. 링에 등장하는 선수는 대체로 한구레에 소속된 조직원들로 자기 주먹을 시험해보는 동시에 실전연습을 하고자 격투기에 참가한다. 토너먼트로 최종 승자를 가린다.
그런데 이런 지하격투기에는 규칙이 없다. 상반신을 벗고 등이나 배에 새긴 문신을 드러낸 채 별다른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무조건 상대를 때린다. 머리를 가격해도 상관이 없어서 실제 지하격투기에 나가 사망한 조직원도 있을 정도다.
조직원들은 지하격투기 티켓을 강매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K1 같은 격투기가 “매번 패턴이 비슷해 따분하다”며 지하격투기를 구경하고자 제 발로 지하격투장을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났다.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 값이 제일 저렴한 4000엔(약 5만 4000원)이다. 링 바로 앞 VIP좌석은 표 가격이 열배는 족히 넘는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일본 각지에서 매주 한 차례 지하격투기가 열리는데 지하격투기 선수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이는 무려 3만 명에 달하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