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룹 수백명씩 동원한 ‘무더기 정치후원’ 들통
▲ 최근 수사당국은 B 그룹의 ‘편법 기부’ 통로로 정치후원금이 이용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과 관련한 삼성 이건희 회장 소환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 관련 재판 결과가 곧 나오면 에버랜드 관련 수사는 종착역을 향해 가속을 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몽구 회장 1심 결과를 앞두고 있는 현대차 비자금 수사 또한 사실상 종료된 상태다.
삼성과 현대차 그리고 론스타-외환은행 사건까지 올 한 해 동안 굵직한 기업 수사를 해온 검찰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경제 관련 기획수사를 가급적 자제한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말과 내년 초 사이 이 사건들 관련 문제가 일단락된 이후에도 재벌그룹을 향한 검찰의 시선은 여전히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사당국의 첩보망에 주요 재벌그룹 관련 비리 의혹들이 걸려들고 있는 까닭에서다.
2세 승계 화두를 붙들고 있는 B 그룹은 오너 일가의 지분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문제는 검찰 수사설로 비화돼 B 그룹 측에서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B 그룹에 대한 수사당국의 활시위가 새해 들어선 더욱 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재벌 자산 순위 20위 안에 드는 B 그룹은 지난 국정감사장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던 바 있다. B 그룹의 사업 확대와 관련한 정부기관의 규제가 안일했다는 비판론이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물론 B 그룹도 이에 맞서 사업확대 정당성을 역설하고 관련부처에 대한 적극 대응 의사까지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B 그룹이 국회 특정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인다’는 내용의 첩보가 수사당국에 접수됐다고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B 그룹 관련 문제를 제기한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당국의 B 그룹 관련 첩보 내용은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떠올리게 한다. 문 의원은 S-OIL 김선동 회장으로부터 100만 원, 김 회장의 지시를 받은 S-OIL 직원들 546명으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546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8월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김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공장건립에 지역 국회의원인 문 의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S-OIL 측은 김 회장과 사측의 ‘지시’가 아닌 사측의 ‘권유’로 인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자금을 낸 것이라며 검찰 측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 회장은 회계부정 혐의 등으로 2002년 10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최근 수사당국이 인지한 B 그룹 관련 첩보의 내용도 위의 경우와 비슷하다. B 그룹 주요 임원들이 각자 300~500명의 인원을 동원해 상임위 활동 등을 통해 B 그룹을 질타한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게 각자 10만 원씩 후원금을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는 10만 원의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경우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다. 10만 원이 소액규모 정치후원금의 상징적 금액으로 여겨지는 것을 이용한 셈이란 지적이다.
현재 해당 상임위에 소속된 국회의원은 총 24명이다. 만약 B 그룹 임원 한 사람이 300명을 동원해 1인당 10만 원씩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 1명에게 후원금을 몰아줬다면 이 의원이 수령하게 될 후원금은 총 3000만 원이 된다. 상임위 소속 24명에게 같은 식으로 후원금을 보냈다면 B 그룹 임원 한 사람이 뿌린 후원금은 총 7억 2000만 원이 된다. 적어도 2~3명 이상의 임원이 동원됐을 거라 가정하면 수십 억 원의 정치자금이 전달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사당국은 이 후원금이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 대한 대가성 불법 정치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S-OIL의 5000만 원대 후원금에 대해 문 의원을 기소한 전례와 마찬가지로 B 그룹의 정치자금 제공 또한 검찰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수사당국 첩보망에 걸린 또 다른 재벌 C 그룹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룹의 주력 사업체에 건설사가 끼어있는 C 그룹은 민간휴직제도로 파견돼 있는 공무원 D 씨와 관련한 구설수에 올라있다.
공무원 민간휴직제도는 공무원의 휴직기간 동안 민간기업체 파견근무의 기회를 줘서 전문성을 강화하라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지난 10월 17일 재경부 국정감사장에서 민간휴직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던 바 있다. 재경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재경부 출신 공직자들이 민간휴직제도를 통해 법무법인 등에 취업해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례 등을 들며 ‘민간휴직제도가 민관유착의 통로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쏟아냈고 재경부 측이 이를 반박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모 지자체의 국장급 간부 출신인 D 씨는 C 그룹 건설 계열사에 파견근무 중인데 C 그룹이 특정 지역의 재개발 사업권을 독식하면서 지자체 내의 재개발 관련 내부 정보를 D 씨가 C 그룹에 사전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당국이 ‘인지’하고 있는 내용은 ‘사전 정보 덕분에 C 그룹의 건설 계열사가 특정지역의 재개발 사업권 획득이 용이했고, 그 대가로 C 그룹이 D 씨에게 거액의 금품을 건넸다’는 것이다.
D 씨가 C 그룹에 재개발 관련 사전 정보를 흘리기 위해선 주요 지자체 인사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C 그룹 내사에 착수해 D 씨와의 관계를 밝히고 나아가서 D 씨가 접촉한 지자체 유력인사들과의 유착 여부까지 파헤칠 수도 있다. D 씨는 정치권의 유력 인사가 지자체 단체장으로 있을 때 C 그룹에 파견된 바 있다. 해당 유력 인사가 지자체에 있을 당시 D 씨가 그 지자체 인사들과 두루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내년 각 정파의 대선후보 경선과 정계개편을 앞둔 시점에서 C 그룹 내사로 시작된 검풍이 정치권을 한바탕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