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검찰 들이닥칠까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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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감사 내용 중 A 그룹 고위인사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이 계열사 내에서 비밀리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룹 고위층의 별도의 지시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A 그룹은 지난 여름부터 해당 계열사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했다고 한다. 경영실태 점검을 위한 의례적 감사로 여길 수도 있었지만 이 계열사의 창사 이래 유례가 없던 그룹 차원의 감사가 갑작스레 실시됐다는 것 자체가 재계인사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의 회사는 지난 2004년부터 연간 매출액이 5000억 원대를 넘어서고 당기순이익도 매출액의 10%가 넘을 정도로 A 그룹 내에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까닭에서다. 때문에 갑작스런 그룹 차원의 감사가 실시됐다는 것 자체가 재계 정보통들 사이에선 ‘이상 징후’로 여겨져 주목받았다. 일각에선 이미 사전에 내부 임직원의 비리와 부정에 대한 단서가 포착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이 ‘사건’은 초반에는 전혀 진행상황이 그룹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감사 과정에서 중간간부 이상급 인사들 여러 명이 해고조치를 당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주로 외주 업체들로부터 청탁성 금품을 받은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감사 과정에서 해외로 도피한 인사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감사 결과 리베이트 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A 그룹 전체를 당혹스럽게 만들 만한 일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계열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 재계 일각에 퍼지게 된 것이다. 일부 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그 비자금 규모가 적게는 수백억 원대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규모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이 돈은 현금으로 보관된 것이 아니라 해당 계열사와 관련된 여러 계좌에 분산 관리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로선 이 비자금이 A 그룹 고위층의 별도 지시 없이 해당 계열사 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면 굳이 내부 감사를 실시해 이를 발견해낼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재계 인사들은 보고 있다. 올해 굵직한 재벌 관련 수사들이 줄이어 터졌던 것을 감안하면 그룹 차원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할 만큼 A 그룹이 무모하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비자금 용도에 대해선 외부에 크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비자금 조성을 지휘하고 실무를 담당한 해당 계열사 임직원들의 개인 비리일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개인비리로 치부하기엔 비자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그룹 고위층과의 공모 여부에 대한 궁금증도 일부 인사들 사이에 거론되고는 있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바는 없는 상태다.
이번 감사결과 해당 계열사에서 해고 조치된 인사는 6~7명 선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인사조치 이상의 후폭풍 또한 예상된다. 이번 감사내용이 외부에 상세하게 공개될 경우 A 그룹으로선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의 규모있는 재벌들 대개는 감사조직을 활성화시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A 그룹의 감사 시스템은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또 각 재벌그룹의 구조본 역할을 맡아온 조직들이 축소개편되는 추세에 따라 A 그룹의 감사 전담 부서도 예전에 비해 그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그룹 내에선 여전히 실세 부서라는 전언이다. 핵심 계열사를 급습해 감사를 펼치는 모습이 국가기관을 방불케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 정도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감사 부서가 눈을 부릅뜨고 있음에도 핵심 계열사 안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된 것은 A 그룹 입장에서 망신살 뻗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련 인사를 해고하고 고위층이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수사당국 등 국가기관에서 이를 인지하게 될 경우 이는 재벌그룹의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돼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는 까닭에서다. 검찰의 내사 착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태원 SK 회장이 구치소 생활을 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A 그룹 고위층 또한 ‘식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A 그룹이 수사당국에 대한 큰 우려를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어 관심을 끈다. A 그룹 고위층이나 핵심 계열사에 대한 주요 동향은 수사당국이나 정보기관에서 항상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이라는 관점에서 당국이 A 그룹 내부 감사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올해 국내 유수의 재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A 그룹 또한 검찰의 요시찰 대상으로 간주돼 온 것을 보면 무리한 관측도 아닌 셈이다.
만약 수사당국이 A 그룹 내부 감사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국내외적 신인도 하락과 경제활동 위축을 고려해 A 그룹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게끔 놔뒀을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지적이다. 혹은 문제의 비자금 중 일부를 양지로 끌어올려 사회환원이나 공적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부당국과의 물밑교감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A 그룹 입장에선 서둘러 이 일을 매듭지으려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현재 A 그룹 안팎과 그룹 사정에 밝은 인사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A 그룹 내에선 이번 일의 확전을 막기 위한 묘수 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인사들은 A 그룹이 거액의 비자금을 마냥 묻어둘 수 없기 때문에 급여 인상이나 인센티브 지급 등의 지출을 늘려 회계처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일 것으로 보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