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여성대회 기념식서 “서른둘에 홀로 되셨지만 그 가난과 고생 속에서 항상 정직하셨고 남을 배려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어” 술회
김 지사는 “저희 어머니는 32살에 혼자가 되셨다. 저는 그때 사남매 중 맏이였고 11살이었는데 집은 빈곤하기 짝이 없었고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서른두 살은 어쩌면 철부지같이 보일 수 있는 나이 때지만 저희 어머니는 그런 나이대에 혼자가 되셔서 저희 사남매와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의 생계를 도맡으셔야 했다”고 입을 열었다.
김동연 지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가 하셨던 고생을 돌아봤다.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집 근처 야산에 가서 채소를 뜯어 길거리에서 노점상도 하셨고 인근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을 나르셨다. 어머니는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분이다. 제가 부총리 지명이 돼 청문회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답을 하다가 어머니가 무학이라고 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럴 정도로 학교도 다녀 본 적이 없는 분이 저희 어머니시다”라고 했다.
김 지사는 자신이 단 한 번 마음속으로 효도했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고 전했다. “집이 어려워서 상업학교를 들어갔고 3학년 때 취직시험을 봤다. 그때는 은행이 가장 좋은 직장이어서 은행 시험을 봤는데 합격을 했다. 집에 가서 어머니를 놀라게 해드리려고 떨어졌다는 얘기를 먼저 한 후 나중에 사실 붙었다고 하려 했는데 차마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는 그게 유일한 희망이셨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머니께 합격했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셔서 박수를 치면서 춤을 추셨다”라고 회상했다.
김동연 지사는 “몇 해 뒤 야간대학을 다녔고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도 받고 장관도 해보고 부총리도 해봤지만 그 때 이후로 어머니가 춤을 추거나 박수를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제가 유일하게 제 마음속에서 어머니께 효도했다고 생각한 날, 고생한 어머니 돕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직시험 붙어서 어머니가 일어나 박수 치고 춤을 췄던 날 바로 그날이다”라고 전했다.
김 지사는 “그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 지사는 이어 “선거를 두 번 나갔는데 여러 질문을 받았다. 많은 분이 그렇게 절대 빈곤에서, 찢어지는 가난함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보였다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면서 “그 이유를 꼽으라면 저는 젊은 시절 몸소 고생하셨던 어머니의 정직함, 남에게 폐 안 끼치려 하는 그 마음, 그리고 남을 배려했던 마음씨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라며 어머니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자 청중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동연 지사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경제 관료를 오래 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 요소 중 하나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드린 적이 있다. 저희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작고 보잘것없는 일부터 하셨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라면서 “그런 면에서 경기여성단체협의회 생일을 맞아 경기도 여성분들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남성 또는 어떤 계층과도 차별받지 않는 고른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동연 지사는 끝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성분들이 얼마만큼 많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얼마만큼 많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얼마만큼 많이 목소리를 내고 얼마만큼 많이 지금의 이 불합리한 정치판, 잘못된 경제의 틀, 우리 아이들을 이상한 데로 몰고 있는 교육 시스템, 둘로 쪼개져서 갈등을 일삼는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면서 “우리 여성분들이 목소리를 내주시고 행동으로 옮겨주셔야 하고 바꾸는 데 힘을 보태줄 수 있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다”라고 당부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