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선 폭발에 불펜 약진으로 6월 월간 승률 1위…김태형 감독 “후반기엔 제대로 붙는다”
그랬던 롯데가 봄이 아닌 여름에 반전을 일으키고 있다. 5월(13승 1무 10패·월간 3위)부터 조금씩 반등하더니, 6월 들어 본격적으로 도약했다. 6월 치른 24경기에서 롯데의 성적은 14승 1무 9패.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6할이 넘는 승률(0.609)로 월간 1위에 기록했다. 7월 3~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내리 패하면서 전반기를 8위로 마무리했지만, 5위 SSG 랜더스와의 격차는 고작 3경기다. 5강에서 멀어진 듯했던 롯데가 '여름데'로 거듭나 가을야구를 꿈꾸고 있다.
#김태형 리더십도 안 통한 봄
롯데는 올 시즌을 앞두고 2015년부터 8년 동안 두산을 이끈 김태형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세 차례(2015·2016·2019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신흥 '명장' 반열에 오른 베테랑 지도자다. 팀 쇄신 차원에서 단장과 감독을 동시에 교체한 롯데는 김 감독에게 선수단 지휘봉을 맡기면서 야심찬 도약을 꿈꿨다. 2022시즌을 끝으로 두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으로 돌아온 김 감독 역시 의욕이 넘쳤다. 롯데가 KBO리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기 구단이라 더욱 그랬다.
김 감독은 1월 31일 스프링캠프지인 괌으로 출국하면서 "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감독이 되고 나니까 팀의 인기를 실감했다"며 "홀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내게 롯데 얘기를 했다. 누구는 롯데를 잘 부탁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롯데가 가을야구를 갈 수 있는지 은근슬쩍 물어보더라. 쉬러 갔다가 오히려 야구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웃어 보였다.
김태형 감독은 롯데와 3년 총액 24억 원에 계약했다. 앞서 지휘봉을 잡았던 두산은 선수 시절부터 몸담았기에 속속들이 익숙한 팀이었지만, 롯데는 프로 사령탑으로 9번째 시즌을 맞은 김 감독에게도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포스트 시즌 단골 손님인 두산과 달리, 롯데는 최근 10년 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한 시즌이 단 한 해(2017년)뿐이다. 특히 2018년부터 2023년까지는 매년 하위권을 맴돌며 7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따라서 김태형 감독이 롯데에 온 목적, 롯데가 김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1992년 이후 31년 동안 염원해 온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은 "우승이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목표는 내 임기 3년 안에 우승하는 거다. 올해는 일단 가을야구 진출이 첫 번째 목표"라며 "내가 이 팀에 그냥 왔겠나. 성적을 내러 왔다. 하지만 선수들도 성적을 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한 시즌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 감독은 또 '봄데'라는 롯데의 별명을 의식하면서 "유독 롯데가 여름에 상승세가 꺾이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들을 하나씩 줄여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곰의 탈을 쓴 여우'로 불리는 김태형 감독 특유의 쥐락펴락 리더십도 시즌 초반에는 통하지 않았다. 롯데는 개막 4연패로 침울하게 출발하더니 '약속의 봄' 내내 맥을 못췄다. 4월 9일 부산 삼성 라이온즈전부터 17일 잠실 LG 트윈스전까지 내리 8경기를 패해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롯데의 8연패는 2019년 9월 18일 KIA 타이거즈전~10월 1일 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무려 1660일 만이었다. 게다가 2003년(2승 2무 16패) 이후 21년 만에 개막 20경기에서 16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4월 18일 잠실 LG전에서 간신히 8연패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LG 선발 투수 케이시 켈리와 롯데 2번 타자 황성빈 사이에 갈등이 생겨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등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반등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개막 전 짜놓은 전력 구상이 상당 부분 흔들린 게 더 큰 불안 요소였다. 부상 선수가 속출했고, 투타 세대교체 주역으로 꼽히던 선수들이 일제히 슬럼프에 빠졌다. 2023시즌을 앞두고 총액 170억 원을 들여 영입한 자유계약선수(FA) 삼총사조차 나란히 부진했다. 포수 유강남, 내야수 노진혁, 투수 한현희가 모두 4월에 2군에 다녀오면서 팀이 크게 흔들렸다. 4월까지 팀 평균자책점은 7위(5.27)로 선방 했지만, 팀 타율은 9위(0.262)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5월 도약해 6월 날아오른 여름
롯데는 5월부터 거짓말처럼 힘을 내기 시작했다. 5월 이후 승률이 0.563(27승 2무 21패)로 전체 3위다. 이 기간 승률 1위 두산(0.577), 2위 LG(0.566)와의 격차도 각각 0.5경기, 1경기로 크지 않다. '비호감' 이미지로 먼저 유명해졌던 황성빈이 타격과 주루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2군에 갔던 FA들과 베테랑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LG에 투수 우강훈을 내주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손호영은 4월 17일 잠실 LG전부터 6월 20일 수원 KT 위즈전까지 30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내는 반전을 일으키면서 돌풍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외국인 타자 빅터 레이예스는 기복이 심하던 롯데 타선의 중심을 잡으면서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전방위 활약을 펼쳤고, 외국인 투수 애런 윌커슨도 4월의 부진을 털고 5월(평균자책점 2.43)과 6월(평균자책점 2.45)에는 확실한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하위권에 머물던 롯데의 상승세는 점점 순위표에 확연한 결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하위를 벗어날 줄 모르던 롯데가 5월 23일 선두 KIA를 꺾으면서 처음으로 탈꼴찌에 성공했다. 그 후 9위와 10위를 오가다 6월 2일 NC 다이노스전 승리를 기점으로 9위에 안착했고, 6월 7일엔 SSG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8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6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부산 경기 승리로 5연승을 달리면서 마침내 7위까지 도약했다. 전반기 종료 직전인 7월 3일 두산전 패배로 다시 8위가 됐지만, 7위 KT 위즈와는 게임 차 없이 승률 0.003 차로 밀려 있을 뿐이다.
롯데는 특히 전반기 1위 팀 KIA를 상대로 유독 강했다. 올 시즌 상대 전적이 7승 1무 3패다. NC전 8승 1패, 한화전 6승 2패로 기세를 올리던 KIA는 이상하게 롯데만 만나면 힘을 못 쓰고 뒷걸음질을 쳤다. 반면 롯데는 KIA를 상대할 때 뒷심이 더 강해졌다. 6월 25일 부산 맞대결에선 4회 초까지 KIA에 1-14로 크게 뒤지다 4회 6점-5회 2점-6회 3점-7회 3점을 잇달아 뽑아 15-14로 역대 최다 점수 차 역전에 성공했다. 사직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역전 드라마였다. 비록 8회 초 동점 점수를 빼앗기면서 연장 12회 혈투 끝에 무승부로 돌아섰지만, 달라진 롯데의 저력을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6월의 롯데는 리그 최강팀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성적을 냈다. 2023년 롯데의 6월 성적이 9승 16패(승률 0.360)로 월간 8위였던 점을 고려하면 환골탈태에 가깝다. 여름 시즌 홈 경기에서 유독 약했던 롯데가 6월에 열린 홈 12경기에서 8승을 거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더 고무적인 건 시즌 초반 골칫거리였던 타선이 여름 들어 폭발하면서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롯데의 6월 팀 평균자책점은 4.82로 4위지만, 팀 타율이 0.312로 1위였다. 팀 득점권 타율도 0.362로 선두다. 이 기간 잔루가 160개로 10개 구단 중 가장 적었다. 리그 평균(193개)보다 월등히 좋다. '쳐야 할 때 치는' 타선의 응집력이 빛났다는 의미다. 특히 뒷심이 대단했다. 14승 중 9승을 역전승으로 장식해 6월 전체 1위다. 상대 팀에 선제점을 내준 경기 성적도 8승 1무 6패(승률 0.571)로 가장 좋았다.
타선 뿐 아니라 불펜 투수들의 활약도 이런 역전승 릴레이에 한몫했다. 6월 롯데의 선발 투수 성적은 8승 5패 평균자책점 5.37로 8위인데 구원 투수 성적은 6승 4패 6세이브 13홀드 평균자책점 4.07로 2위다. 후반기 반격을 위한 발판은 확실히 마련됐다.
#"야수와 투수 모두 구성 좋아지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전반기를 마무리하면서 "사실 개막 전 시범경기 중반부터 타선 쪽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 팀이 조금씩 나아졌고, 후반기에는 더 괜찮아질 것 같다"며 "시즌 전 구상은 시즌 초에 다 틀어졌다. 하지만 원래 감독이 구상한 대로 다 이뤄지는 시즌은 없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야수와 투수 쪽 모두 구성이 좋아지고 있다"고 총평했다.
김 감독은 부산의 야구팬들이 간절하게 원했던 유형의 사령탑이다. 롯데 팬들은 그동안 강한 통솔력을 지닌 지도자가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단을 하나로 묶고 팀에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어주기를 기다려왔다. 지난 시즌 직후 김 감독 선임 소식이 발표되자 많은 팬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한 이유다. 심지어 시즌 초 팀이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도 김 감독을 향한 팬들의 지지는 변하지 않았고, 롯데가 5월 이후 상승세를 타자 김 감독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김 감독은 "전반기 전 경기에 출장한 외국인 타자 레이예스에게 정말 고맙다. 외국인 선수가 이렇게 경기에 빠지지 않고 뛰어주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며 "황성빈·윤동희·나승엽·고승민 등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개인 기록이 더 좋아지면서 팀에 힘이 생겼다"고 돌이켰다. 김 감독은 또 "선수층이 두꺼워졌다기보다는 지금의 주전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자기 자리를 잘 찾았다. 좋은 흐름을 탄 것 같다. 내가 아니고, 선수들이 잘한 것"이라고 짐짓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김 감독은 다시 후반기 반격을 위해 고삐를 조였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이제 후반기가 더 중요하다"며 "후반기에는 제대로 붙어야 한다. 최대한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하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롯데의 후반기에는 여전히 희망과 우려가 공존하기에 더 그렇다. 김 감독은 "주전 포수 유강남은 다시 오금 통증을 느끼고 있고, 허벅지를 다쳐 이탈한 손호영도 복귀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외국인 선발 찰리 반즈가 허벅지 부상을 털고 돌아오면, (대체 선발로 쓰고 있는) 한현희를 중간으로 돌릴 수 있어서 불펜이 확실히 강해질 거다. 최준용도 7월에는 복귀가 가능하고, 고승민도 후반기에는 다시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