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밥이 꿀맛” 병영식 호평 일색, 백마고지전적비 앞에선 절로 숙연 “1000km 함께한 대원들 전우애 느껴”
4일차인 6월 28일, 육군 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아침을 맞이한 대원들은 아침 점호를 마치고 병영식당으로 향했다. 1일차부터 병영식을 먹었던 대원들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평소 아침 식사를 거르던 대원들도 부대 급식을 먹으러 나와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식사했다.
2020년대 전까지만 해도 국군 병영식은 “맛이 형편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짬밥’이라는 오명으로 부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범유행 당시 휴가 복귀 후 자가격리 중인 장병에게 부실하게 음식을 제공해줬다는 사실이 인터넷상에서 내부 고발되면서 병영식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기점으로 국군은 병영식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고, 현재 “맛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그간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을 수도 있는 대원들에게 병영식은 더 이상 맛없는 짬밥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켰다.
아침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15보병사단 수색대대로 이동했다. 연병장에는 K1A 기관단총, K2C1 소총, K14 저격소총 등 개인화기들과 다기능 관측경, 천막(텐트), 길리 슈트(위장복) 등 각종 장비가 진열돼 있었다.
일부 대원은 완전군장을 체험했다. 예상보다 무거운 무게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각종 의류에 침구류 등이 담겨서 20kg을 족히 넘기는 배낭을 메고, 방탄모, 전투조끼를 착용하면서 개인화기까지 들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다기능 관측경을 사용해 본 대원들은 고배율 카메라로 멀리 있는 곳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또한 레이저 거리 측정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활용해 위치정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고성능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어 금성지구전투전적비로 이동한 대원들은 윤현지 을지여단 정훈장교(중위)로부터 금성지구전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윤 중위는 “이곳이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부터 7월까지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며 “선배 전우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윤 중위 설명에 집중하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는 휴대전화에 부지런히 기록하기도 했다. 설명이 끝난 뒤 대원들은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한 뒤 헌화했다.
버스를 타고 강원 화천군에서 철원군으로 넘어간 대원들은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한탄강으로 향했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2021년 개장 이후 수백만 명이 찾은 관광지다. 자연경관에 감탄한 대원들은 그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면서 추억을 간직했다.
주상절리길 코스를 다 걸은 대원들은 육군 6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해 재정비했다. 다음날 예정된 철원군 전사적지 탐방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제2땅굴-백마고지-태풍전망대, 치열했던 격전지로
5일차인 6월 29일, 아침 점호와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을 지나 제2땅굴로 이동했다. 제2땅굴은 1975년 발견된 남침용 땅굴로, 총길이 3.5km, 남북으로 2.4km, 군사분계선까지 1.1km에 달한다. 발견 당시 수색 과정에서 한국군 8명이 전사했다.
6사단 측 설명을 들은 대원들은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땅굴 입구 앞 위령비에서 묵념했다. 그 뒤 땅굴 안으로 들어간 대원들은 견학이 가능한 500m 지점까지 향했다. 끝자락까지 가는 동안 높이가 1.5m가량 되는 구간이 있어 천장에 머리가 부딪치는 대원들도 있었다. 물 고인 곳에 발을 잘못 디뎌 놀란 대원도 있었다.
이어 대원들은 철원 평화전망대로 향했다. 2일차 당시 금강산과 봉우리, 동해가 보였던 고성 통일전망대와 달리 이곳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전망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북한 지역에서는 초소와 마을이 보였고, 포스터 형식 대남선전물로 추정되는 물체도 망원경을 통해 식별할 수 있었다.
대원들은 민통선 이남지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월정리역에 잠시 들려 기념 촬영을 한 뒤 철원역사문화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향군여성회가 국토대장정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향군여성회 회원들은 대원들에게 전투식량과 소시지,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면서 격려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약 4km 떨어져 있는 백마고지를 향해 행군했다. 전남대학교 스마트수산자원관리학과에 재학 중인 김은찬 씨(25)는 이 코스를 걸으면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 씨는 하루 만에 끝나는 학생예비군 훈련 대신 2박 3일 동원 예비군 훈련을 갈 정도로 자신을 ‘밀덕’(‘밀리터리 덕후’ 줄임말, 군사 관련 애호가)으로 소개했다. 김 씨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백마고지를 봤을 때 정말 아름다웠다”며 “이번 국토대장정을 계기로 백마고지를 직접 보게 돼 정말 기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당시 강원 철원군은 인근 평강군, 김화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 중 하나라 일컬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었다. 화살머리고지와 더불어 백마고지도 철의 삼각지에 속했다. 한국군은 현리 전투를 비롯해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졸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백마고지에서는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이겨낸 끝에 승리했다.
백마고지전적비로 향한 대원들은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국군 9사단 장병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했다.
그 뒤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경기 연천군 태풍전망대로 향했다. 해당 지역 경계와 감시를 담당하는 육군 28보병사단 관계자 설명을 다 들은 대원들은 정면에 마련된 모형도를 살피고, 육안이나 망원경으로 DMZ와 북한 지역을 살펴봤다. 전망대 앞에는 임진강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베티고지, 노리고지 등 여러 고지와 북한 오장동 농장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태풍전망대 견학을 마친 대원들은 연천군과 파주시 경계선을 넘어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파주시 적암면에 도착했다. 28사단 신병교육대대로 행군한 대원들은 군악대의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그날의 견학과 행군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바람 몰아쳐도 멈출 수 없는 행군
6일차인 6월 30일 오전, 개인 정비를 마친 대원들은 문산체육공원에서 행군을 시작했다. 전날 밤부터 시작된 비바람은 야속하게도 이날 아침에 상당히 거세졌다. 대원들은 부랴부랴 판초(우의)를 입었다. 습하지 않아 땀이 많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쾌적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대원들은 임진리-장산리-마정리-임진강역에 이르는 평화누리길 8코스를 행군했다. 초반부터 임진리부터 장산전망대 입구까지의 오르막길을 맞이했던 대원들은 질척이는 진흙 바닥에 고전했다. 장산전망대 입구부터 임진각까지는 내리막길과 평지길이지만 마찬가지로 진흙 때문에 미끄러운 곳이 많았다. 스태프로 참여했던 대학생 중 한 명도 이 때문에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까지 도착한 대원들은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해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로 향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북한 개풍군까지는 직선거리로 고작 2km인 데다가 비가 오전에 그쳤기 때문에 북한 일대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망대 바로 앞에는 마을과 논이 펼쳐져 있는데, 논일을 하고 있는 북한 주민 수십 명을 망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지역 경계·감시를 담당하는 해병대 2사단 측과 전망대 해설사에 따르면 원래 위장 마을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주민이 마을에 실제로 거주한다.
해병대 복지시설인 청룡회관으로 이동한 대원들은 삼겹살 파티로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 뒤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피날레로 문화제를 즐겼는데, 대원들은 1~5일차 동안 조별 활동을 통해 준비했던 장기자랑으로 각자 끼를 뽐냈다. 유일하게 연극을 준비해 큰 재미를 선사했던 1조와 가장 완벽한 춤 호흡을 자랑했던 5조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문화제가 끝난 뒤, 대원들은 해병대 2사단 동원교육대대로 이동해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단장·부단장들과 대학생 대원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대원들을 통솔했던 스태프 중 해병대 2사단과 인연이 있는 학생이 있다. 한국교통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곽민수 씨(35)는 해병대 중사 출신으로 복무지였던 해병대 2사단에 다시 방문하게 돼 많은 추억이 떠올랐다고.
곽 씨는 “해병대 2사단은 어려움과 도전을 겪으면서 많은 성장을 했던 곳이었다. 대원들을 통솔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군부대에서 쌓였던 경험 덕분에 리더십을 잘 발휘했던 것 같다”며 “향군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내년에도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곽 씨는 “전사적지를 방문하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의 희생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며 “그분들의 헌신 덕분에 현재 우리의 자유와 평화가 지켜졌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도 기억하며…6박 7일 여정 마무리
마지막 날인 7월 1일, 아침 정비를 마친 대원들은 버스로 2시간 정도 이동해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 도착했다. 서해수호관으로 향한 대원들은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비롯해 제1·2연평해전, 천안함 사건 관련 전시를 보면서 해군 2함대 측 설명을 들었다.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로 자리를 옮긴 대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했다. 그리고 추모비 왼편에 두 동강 난 구형 천안함 선체, 추모비 오른쪽 편에 찢겨나간 가스터빈을 보면서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서해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충무관으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을 진행했다. 개인 사정으로 도중하차한 3명을 제외하고 6박 7일 대여정을 마친 82명 대원들은 수료증과 기념 군번줄을 받았다. 신상태 향군회장은 “1000km 국토대장정 수료증을 받은 대원들은 출발 전보다 더 의젓하고,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라면서 “이제 대원들은 향군과 깊은 인연을 맺은 향군 가족이며, 평생 함께해 나갈 동료이자 전우”라고 말했다.
해단식이 끝난 뒤 대원들은 서울과 대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한 대원들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뒤 버스에 올라탔다.
상명대학교 국가안보학과에 재학 중인 최치헌 씨(22)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혼과 얼이 담긴 안보 최일선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지원했다”며 “우리 국군 장병들의 노고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중임을 상기하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언제나 군인들에게 지지와 감사, 격려를 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운대학교 군사학과에 재학 중인 박준이 씨(여·23)는 “지난 제13회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군사학과 동기들이 향군과 인연을 맺으면서 안보의식을 키워나간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참가하게 됐다”며 “전사적지를 방문하면서 뼈아픈 한민족 역사를 배우게 됐다. 강한 안보의식이 장착된 장교 후보생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힘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