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북측 ‘고사총 대응’ 재연 우려에 지역관광 타격 걱정도…탈북민 단체들 “중단 없다”
지난 25일 ‘일요신문i’가 찾은 현장에선 인근 주민 20여 명이 집회를 열어 전단 살포 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은 북한이 우리 측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5번째로 대남 오물풍선을 날려 보낸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집회에 나선 월롱면 주민들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주민들의 생명과 일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어 불안해 살 수 없다”고 호소했다. 특히 탈북민 단체가 인적이 드문 산이나 강가가 아닌 주택가에서 전단을 살포해 체감되는 위험이 훨씬 크다고 토로했다.
이달태 월롱면 영태5리 이장은 “전단이 발송되는 지점을 북한이 다 파악하며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곳이 우리 마을이어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다. 우미랑 월롱면새마을부녀회장은 “북한이 혹시라도 우리 지역에 집중해 포탄·사격 대응이라도 나서면 어떡하나 두렵다”며 “탈북민 단체는 인근 주민들의 안전은 무시한 채 오로지 전단풍선을 날릴 생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오는 7월 21일까지 현장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파주시내 주민들은 대북 전단 살포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임진각과 통일촌, 헤이리예술마을, 마장호수 등 시내 주요 관광지를 찾는 여름철 나들이객이 줄고, 카페·음식점주 등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것도 걱정하고 있다.
특히 대성동·통일촌 등 임진강 북쪽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농사일을 위해 오가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길 수 있어 우려가 나온다. 이완배 파주시 장단면 통일촌 이장은 “통일촌에는 제3땅굴·도라전망대 등을 관람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하루 약 2000명씩 오고 있는데 이들에게 기념품이나 우리 농산물, 음식 등을 팔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양·파주·서울 등 각지에서 하루 3000명가량이 농삿일을 돌보느라 오가고 있는데 민통선 출입이 며칠이라도 끊기면 파종 시기를 놓치거나 농작물이 그새 말라버려 1년 농사를 다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 새 운정신도시 등 시내 신도시나 아파트 밀집지역을 찾아 파주로 이주해온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공포’에 가까울 것이란 걱정도 들렸다. 파주시내에서 만난 한 주민은 “파주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은 접경지역 긴장 상황에 조금 익숙할 수 있지만 최근 이주해 온 젊은 세대 주민들은 파주가 대북전단 살포의 거점지역이 된 것에 크게 겁을 먹고 있다”며 “외지 인구의 유입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 이미지 타격이 엄청 큰 상황”이라고 아쉬워 했다. 금촌역 앞 상권의 한 음식점주는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을 계속 보낸다고 우리까지 덩달아 전단을 보낼 필요가 있겠나”라며 “북한 정권을 자극할수록 접경지역 긴장만 높아지고 우리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 단체들은 앞으로도 경기 파주나 인천 강화 등에서 비공개로 대북 전단 발송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나 주민들과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상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달 초 연합뉴스에 “대한민국 국민이 오물 쓰레기를 뒤집어쓴 데 대해 김정은이 직접 정중히 사과하면 우리도 (전단 살포) 잠정 중단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지난 6일과 20일 다시 대북 전단을 날렸다. 박 대표에게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통화를 요청했지만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 답만 돌아왔다.
지난 7일 밤 인천 강화도에서 대북전단 20만 장을 발송한 겨레얼통일연대 장세율 대표는 통화에서 “다음 전단 발송 일정이 계획된 것은 없다”면서도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일 뿐 전단 발송 자체를 중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접경지역 주민들이 불안해 할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으며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탈북민 단체들의 지속된 대북 전단 발송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존중해 접근 중이며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관할구역의 안전 책임을 져야 하는 파주시나 경기도, 경기경찰 등에 더욱 부담이 늘고 있다.
파주시는 전단 살포 일정이 파악되면 현장에서 직접 제지한다는 기조다. 앞서 지난 20일 김경일 파주시장은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전단 발송을 제지하려다 연합 회원들과 30분간 실랑이를 벌였다. 김 시장은 당일 기자회견에서 “파주시 전 지역을 (재난안전법상) 위험구역으로 지정하고, 전단 살포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적극 고려하겠다”며 “위험구역 설정 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과 함께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파주시청을 찾아 확인한 결과 ‘위험구역 지정’은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태다. 강영도 파주시 언론팀장은 “위험구역을 설정하려면 북한의 어떤 실질적인 위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경기도와 파주시의 판단”이라며 “과거(2014년) 북한군이 대북 전단이 담긴 기구(비행체)를 향해 고사총을 발사한 사례처럼 실제적 위협이 있을 때 즉각적 발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팀장은 “현재는 경찰이 전단 발송 후보 지역들을 중심으로 순찰하며 동향을 파악 중”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전단풍선 발송이 ‘항공안전법’을 위반했을 소지에 주목하며 전단 살포 단체들을 압박 중이다. 대형 풍선이 2kg 이상 물건을 매달아 비행하는 경우 항공안전법상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돼 이를 위반 시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 20일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대한 수사를 경기북부경찰청에 의뢰한 데 이어 지난 21일 김포시 하성면에서 전단풍선 59개를 살포한 ‘국민계몽운동본부’에 대해서도 지난 24일 경기남부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한편 파주갑 지역구인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접경지역 주민안전보장위원회’를 통한 대북전단 발송 사전승인 절차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지난 18일 대표 발의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