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 사업에 지배주주 개인 자금 투입 두고 ‘사업기회 사적 활용’ 논란…시장 참여자들의 진지한 논의 필요
유럽에서 중세를 대표하던 길드의 시대가 가고, 주식회사가 등장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주식회사는 많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길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도 증가했지만, 투자자는 이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주식회사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를 갖는다. 이 경우 경영진에게 사업에 관한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경영진이 장기적인 회사의 성장보다는, 본인의 평판과 보수를 위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회사의 최대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경영진이라면, 때로는 위험이 따르는 사업도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과감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수 체계를 정교히 설계하더라도,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에게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소유와 경영이 가급적 분리되지 않은 구조가 대리인 문제가 없는 만큼 더 낫다는 주장이 실증 사례와 함께 제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창업주가 최대주주이면서 동시에 경영진으로 장기간 재임한 회사가 성공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유력한 기업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꼽히곤 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회사와 분리되지 않은 회사 중에서 어느 일방이 항상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 차원의 논의를 하기 전에, 최근 대기업집단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기업집단에서는 총수일가가 상당한 지분을 소유하는 비상장회사가 그룹의 주력 사업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거나,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주요 사업을 영위하는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이나 책임경영의 실현으로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투자회사 임원이 여러 투자대상을 검토하던 와중에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부동산 투자처를 알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동 임원이 직접 본인의 계산으로 해당 부동산을 매입한다면, 회사는 투자기회를 잃는다. 회사법은 이러한 행위를 '회사기회유용'으로 규정하고,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이사회 승인 등을 얻도록 통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도 이를 대규모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사익편취 규제의 한 유형으로 정하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의 재산분할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SK실트론도 회사기회유용 여부가 문제된 대표적 사례다. SK실트론은 SK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에 들어가는 필수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최 회장은 이른바 총주식스왑(Total Return Swap, TRS) 형태로 약 29.4%의 지분을 사실상 직접 취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가 최 회장을 위해 유망한 사업의 지분 취득을 일부 포기함으로써 사익편취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고, 과징금 등 처분을 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SK가 최 회장 지분까지 인수하지 않은 데에는 경영상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부당한 회사기회유용이나 사익편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건은 공정위의 불복으로 대법원에서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대기업집단에서 회사기회유용의 성격이 있다고 볼 만한 사례가 목격되고 있다. 효성그룹은 2차전지를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조현상 부회장 일가가 사실상 개인회사와 함께 2차전지 핵심소재(황산니켈)를 생산하는 우전지앤에프 지분을 인수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주력사업 중 하나로 강조 중인 로봇산업을 영위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역시 정의선 회장이 20% 지분을 직접 취득했다.
강조하건대 위 사례는 모두 지금까지는 법률상 문제가 있다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켜 기업가정신을 실현한 긍정적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지배주주가 그 지위에 기반해 수익성과 성장성이 기대되는 사업기회를 사적으로 활용 또는 유용했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다.
대기업집단은 대부분 다수의 주력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상장된 계열회사도 다수다. 이에 따라 소유-지배의 괴리가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고, 주력 사업은 개인이 소유하기엔 규모가 막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미 규모가 커질 만큼 커진 국내 대기업집단은 충분한 소유지분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정신을 기대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반면, 회사기회유용과 같이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회사 및 일반주주와의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문제에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될 수 있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