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일극체제 저지” 득표율 30% 관전 포인트…친명계 일각, 독주 비판 피할 수 있는 양자구도 반색
#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이재명 연임론’은 4월 15일 박지원 당시 당선인이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처음 띄웠다. 박 당선인은 “민주당의 당헌·당규는 대권후보가 되려면 1년 전에 당대표를 사퇴한다는 것이어서 그걸 지키면 된다”며 “이 대표가 본인이 원한다고 하면 당대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 이 전 대표 연임 추대론에 불이 붙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5월 11일 자신의 SNS에 “당대표 연임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다.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재명 대표를 설득하고 권유하는 데 총대를 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후 민주당은 당대표 사퇴 시한에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 당헌·당규 개정도 추진했다. 당헌 25조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선에 나가려면 선거일 1년 전 사퇴하도록 규정한다. 개정안은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시한을 달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이는 대권 도전이 확실시되는 이 전 대표의 당대표 연임을 전제로 한 개정으로 풀이됐다.
전당대회 선거룰도 권리당원 영향력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확정됐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본경선에서 권리당원 표 비중을 기존 40%에서 56%로 늘리고, 대의원 비중은 기존 30%에서 14%로 줄이기로 정했다. 국민여론조사는 30% 비중이다. 대의원 대 권리당원 비율은 60 대 1에서 19.9 대 1로 변경했다.
결국 이 전 대표는 6월 24일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이어 16일 만인 7월 10일 당대표 연임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 대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주요 선거가 있는 올해, 우리 앞에도 중대한 갈림길이 놓여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인지, 엄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퇴보와 정체의 길을 갈 것인지. 선택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전 대표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며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라며 민생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소득·주거·금융·교육·에너지·의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기본사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전 대표의 당대표 연임 도전이 공식화되자 이 전 대표에 맞서 당권 도전에 나서는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대명’이라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 운동권 맏형격인 5선 이인영 민주당 의원이 대항마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 의원은 6월 28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서 “나는 아직 당원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준비가 안 돼 있고 소명을 걸머진 상태는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신 최고위원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7월 9일 기준 전현희(3선) 이언주(3선) 강선우(재선) 김병주(재선) 한준호(재선) 민형배(재선) 이성윤(초선) 등 현역 의원과 원외에서 정봉주 전 의원, 김지호 전 부대변인, 박완희 청주시 의원, 최대호 안양시장 등이 출마했다. 모두 친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이들은 출마 선언에서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강선우 의원은 “어대명이 아니라 ‘당대명(당연히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강조했다. 전현희 의원은 “국민과 민주당, 이재명 곁을 지키는 ‘수석변호인’으로 든든한 방패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준호 의원은 “후보들 모두 충성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행할 진정한 지도자로 이재명 전 대표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형배 의원은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이재명 전 대표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재명과 김두관의 약속대련?
경선 후보 등록 첫날인 7월 9일 김두관 전 의원이 이재명 전 대표 독주 체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김 전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민주당은 역사상 유례없는 제왕적 당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움으로써 국민의 염려와 실망 또한 커지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이 오염원을 제거하고 치료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간다면 민주당의 붕괴는 칠흑 같은 밤에 번갯불을 보듯 명확하다. 다양성과 분권을 조장해줄 제도와 장치를 강화해 1인 독주를 막지 못하면 국민이 우려하는 민주당의 위기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일극체제’를 비판한 대목이다.
이어 김 전 의원은 질의응답에서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의 상징 도시인 세종시에서 출마 선언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대명’ 분위기에 대해서는 “민주당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와 중원을 대변하는 사람들과 팀워크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여야가 강 대 강으로 싸우는 것보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처럼 민생을 먼저 챙기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사실상 이재명-김두관 양자구도로 치러진다는 점이 김 전 의원의 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당내 비명계 비율은 약 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의원이 비명계의 표를 전부 흡수한 다음, 외연을 확장해 3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리면 이 전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보다 낮은 득표율(77.7%)을 기록하게 된다. 김 전 의원의 입지는 커지고 이 전 대표의 위상에는 흠집이 가는 셈이다.
고 평론가는 “만약 김 전 의원이 30% 득표율을 얻으면 그의 정치적 무게는 엄청나게 커진다. 확고부동한 2인자가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 전 대표가 80% 이상을 얻으면 지난번보다 표를 더 얻은 것이기 때문에 ‘김두관 나와 봐야 소용없다’는 게 된다. 이번 경선은 김 전 의원이 득표율 30%를 얻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짚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이 3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재명 대세론이 견고한 분위기다. 한 친문계 중진 의원은 “김두관 전 의원은 계파가 없다. 굳이 분류하면 범친명계인 것 같다. 친노(친노무현)계가 갈 일도 없을 것 같다”며 “당내에서는 이재명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다. 이 전 대표에게 몰표가 나와서 이재명 일극 체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출마를 발표하기 전 현역 의원들에게 지지를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현역 의원들과) 특별히 연락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내에서 세력화해서 편을 나누면 (당원과 국민에게) 불편해 보일 거다. 그리고 조직화한다고 해도 이미 큰 조직들이 이재명 전 대표 중심으로 돼있다. 우리는 더 큰 차원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명계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의 출마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 김두관’이라는 구색이 갖춰지면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 없는 단독 후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
그럼에도 이 전 대표의 대세론은 꺾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 전 대표가 경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게다가 김 전 의원은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이 전 대표를 지지했다. 지난 21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김 전 의원은 친명계 색을 강하게 냈다. 이 전 대표와 척을 진 인물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친명계 입장에서는 김 전 대표의 출마로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더 큰 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김 전 의원과 이 전 대표의 ‘약속대련’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전대가 흥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와 이재명 일극 체제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두 사람이 물밑에서 합의를 봤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1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약속대련’ 질문에 “풀뿌리 마을 이장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경남에서 2010년에 경남 민주진영 대연합으로 경남도지사를 하고 또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도 하면서 나름대로 김두관 정치를 해왔다”며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내 정치 해야죠”라고 반박했다.
이어 ‘2026년 지방선거를 노리고 나온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전 의원은 “2010년에 경남도지사를 이미 지낸 바 있고, 다시 도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 당이 이 전 대표를 추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1인 독주 체제가 되면 민주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이 전 대표와 각을 세웠다.
한 친명계 의원은 “공당의 당대표 후보가 된다는 것은 영광과 명예가 있는 일이다. 두 사람이 좋은 비전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길 바란다”면서도 “제왕적 대표라는 김 전 의원의 발언은 공감 안 된다. 제왕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이 전 대표는 당원이 선택했다. 현재도 당내 지지가 월등히 높다. 국민도 지지한다. 차기 대권 지지도 1위”고 지적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