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작가 “정치권은 배경일 뿐 그리고자 했던 것은 오직 그 인간의 본질”
왜 이런 지적이 이어지고 있으며 작가는 왜 이런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은 것일까. 드라마 ‘돌풍’ 속 정치 구도를 따라가며 현실 정치와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봤다.
#주요 정치인 캐릭터 6명의 출신 따져보니…
‘돌풍’에서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정치인은 6명 정도다. 우선 주인공인 박동호(설경구 분)와 정수진(김희애 분)이 있다. 둘 다 대한국민당 소속으로 대통령 장일준(김홍파 분)의 오른팔과 왼팔이다. 장일준 대통령 체제에서 박동호는 국무총리, 정수진은 경제부총리다.
‘돌풍’에서 대한국민당은 여당으로 진보 정당이다. 장일준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출신이며 박동호는 특수부 검사 출신, 정수진은 전대협 문화선전국장을 거친 운동권 출신이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수진의 남편인 한민호(이해영 분)는 전대협 의장 출신이다. 대한국민당 대표 박창식(김종구 분)은 평당원 출신으로 당적 이동 15회, 탈당 8회, 창당 6회의 이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장일준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최연숙(김미숙 분)은 대학교수 출신 정치인으로 정수진과 사제지간이다.
야당은 신한당으로 정통보수 정당이라기보다 극우 정당에 가깝다. 신한당 대표는 조상천(장광 분)으로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공안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태극기 부대의 정신적 지주로 묘사된다. 조상천은 공안검사 시절 전대협 문화선전국장이던 정수진을 체포해 전대협 의장 한민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고문을 가한 일도 있다.
6명의 정치인 주요 캐릭터 가운데 검사 출신이 2명, 운동권 출신이 1명, 인권 변호사 출신이 1명, 교수 출신 1명, 평당원 출신 정통 정치인이 1명이다. 그리고 드라마 중반부에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하는 대한국민당과 신한당 후보는 모두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위험한 검사 출신과 타락한 운동권 출신
주인공인 박동호와 정수진만 놓고 보면 ‘돌풍’은 ‘검사 출신 정치인’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대결이다. 정치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하지만 드라마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돌풍’의 기본 설정을 보면 선역은 박동호, 악역은 정수진이다.
사실 정수진이 처음부터 악역은 아니었다. 올바른 정치인이고자 했던 정수진은 남편의 비리로 흑화하기 시작한다. 정권에 줄을 대고자 했던 대진그룹 부회장 강상운(김영민 분)이 사모펀드 남산 C&C의 대표인 한민호에게 접근해 거액을 투자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남편 때문에 정수진도 비리의 늪에 발이 빠지기 시작한 셈이다.
전대협 의장 출신 한민호가 재벌가에서 뇌물성 투자를 받은 데 더해 장일준 대통령의 아들까지 사모펀드 관련 비리에 연루된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남편에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아들이 재벌가 뒷돈에서 비롯된 비리에 연루된다는 게 ‘돌풍’의 출발점이다.
이런 이유로 감춰야 할 게 생긴 정수진과 장일준 대통령에게 박동호가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온다. 재벌과 결탁한 대통령을 심판하고 정치판을 바꾸고 싶은 박동호는 장일준에게 하야를 강권하지만 오히려 거짓 비리를 뒤집어쓰는 정치보복을 당한다. 대통령 장일준과 경제부총리 정수진은 자신들의 비리를 파고드는 국회의원 서기태(박경찬 분)에게도 거짓 비리를 씌워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재벌가 연루 비리는 기본, 수사기관 동원 정치보복도 서슴지 않는 인물들로 묘사된 셈이다.
기본적으로 ‘돌풍’은 재벌 연루 비리를 밝히려는 검사 출신 정치인 박동호와 재벌 연루 비리에 휘말린 운동권 출신 정치인 정수진의 대결 구도가 핵심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중반부 이후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 대략적인 결말 구도는 정수진의 완벽한 패배다. 그렇다고 박동호가 승리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결말이다.
박경수 작가는 일요신문i와 인터뷰에서 “‘돌풍’은 박동호의 위험한 신념과 정수진의 타락한 신념이 정면충돌하는 드라마”라며 “박동호와 정수진의 ‘성찰 없는 분노’는 그들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드라마 결말에서 박동호는 위험해지고, 정수진은 타락한다.
#운동권 출신에 대한 모욕(?) 정통보수는 아예 지워져
요즘 정치권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는 두 부류가 ‘검사 출신 정치인’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검사 출신 정치인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여야에 두루 포진해 있는데 이런 현실이 드라마 ‘돌풍’에도 녹아 들어가 있다. 또 완벽한 창작물인 드라마지만 현실 정치에서 본 듯한 풍경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돌풍’에 대한 정치권 반응도 뜨겁다.
우선 장일준 대통령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운동권 학생들을 변호했던 이력을 놓고 보면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 떠오르고 노벨평화상 수상 대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 아들 문제가 발생했다는 부분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장일준은 딱히 한 명이 아닌 여러 전직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로 보인다.
특수검사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는 박동호의 현실 모델은 모호하다. 특수검사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닿지만 보수정당이 아닌 진보정당 정치인이며 정치권에 투신해 10여 년을 거쳐 대통령이 된 부분도 다르다.
드라마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그려진 캐릭터는 검사 이장석(전배수 분)이다. 거악을 수사하다 한직으로 발령난 이장석은 절친 박동호가 대통령이 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이 된다. 이상적인 검사 이장석의 엄정한 수사 칼날은 절친이자 대통령인 박동호에게도 예외 없이 겨눠진다. 이런 측면에서 박경수 작가가 검찰주의자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는 전작 ‘펀치’에서 검찰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바 있다. 이번 ‘돌풍’에서도 검사 출신인 신한당 조상천 대표에 대한 묘사는 이장석과 상반된다.
경제부총리를 거쳐 국무총리가 되는 정수진의 현실 모델은 찾기 힘들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으로 정부 고위직에 오른 이들이 상당수이며 여성도 여럿이다. 온라인에서 실제 모델로 거론되는 정치인은 몇몇 있다. 그렇지만 ‘돌풍’ 속 정수진처럼 철저한 악역으로 그려지며 대통령 시해사건까지 연루된 인물은 현실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수진이라는 캐릭터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폄하하는 설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 정치와 비교할 때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정통보수 정당의 실종이다. ‘돌풍’의 정치 구도는 진보정당인 여당 대한국민당과 극우정당인 야당 신한당이다. 대선에서 대한국민당 51.7% 대 신한당 46.2%의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볼 때 ‘돌풍’ 속 국회는 양당 구도로 보인다. 그런데 신한당은 공안검사 출신 당대표가 태극기 부대의 지지를 받는 극우정당으로 묘사된다. 현실 정치의 ‘국민의힘’과 같은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 ‘돌풍’ 속에는 없다.
박창식, 박동호, 정수진 등 대표적인 정치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파가 내분을 벌일 만큼 거대 정당으로 묘사되지만 야당은 철저히 조상천 대표를 중심으로 태극기부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정당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돌풍’은 현실정치 속 국민의힘과 같은 정통보수 정당이 아예 사라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창작물인 ‘돌풍’ 속 정치권의 모습을 두고 현실 정치와 대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해석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왜 ‘돌풍’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든 것일까. 박동호 역할의 설경구는 ‘돌풍’을 “정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박경수 작가 역시 ‘돌풍’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념, 분노 등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다. ‘추적자 THE CHASER(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 ‘펀치’로 권력 3부작을 써 큰 사랑을 받은 박경수 작가가 ‘돌풍’에서도 정치권을 단지 이야기의 배경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박 작가는 “시대와 국가와 무대와 작업은 배경일 뿐 제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오직 그 인간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