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워터밤 여신’ 권은비에 이어 올해는 시그니처 멤버 지원 눈길
그룹 자우림의 김윤아는 지난 6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그를 향해 ‘꼰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견 수긍이 간다. ‘음악’에 방점이 찍히는 축제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워터밤 페스티벌’이 대표적 여름 축제로 자리매김했지만, 노출과 선정성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워터밤 페스티벌’도 본격화됐다. 지난 7월 5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워터밤 서울 2024’가 진행됐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대표적 ‘워터밤 여신’이라 불리는 가수 권은비가 어김없이 참석했고, 비비·현아·마마무 화사·트와이스 나연·선미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남성 가수들도 앞다투어 출사표를 내고 매력을 겨뤘다. 보이그룹 뉴이스트 출신 백호와 비투비 이민혁은 상의를 벗고 몸매를 과시했다.
통상 음악 페스티벌은 록·EDM·재즈 등 각 영역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모여 꾸린다. 야외무대에서 그들이 라이브로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 것이 묘미다. 그렇다면 ‘워터밤 페스티벌’의 장르는 무엇일까. 물론 탄탄한 실력을 갖춘 K-팝 스타나 힙합 뮤지션 등이 섭외되지만, ‘워터밤 페스티벌’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따로 있다. 누가 더 과감한 의상과 노출로 눈길을 끄느냐가 관건이다. 군더더기 없는 몸매는 필수다.
그들이 노리는 수식어는 단연 ‘워터밤 여신’ 혹은 ‘워터밤 남신’이다. 이는 그해 여름 가장 섹시한 가수로 뽑혔다는 평가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페스티벌을 통해 '권은비'라는 대표적 스타가 탄생됐기 때문에 ‘워터밤 페스티벌’에 참가하려는 가수들이 부쩍 늘었다는 후문이다.
2014년 걸그룹 예아로 데뷔한 권은비는 어느덧 데뷔 10년 차다. 그런데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2018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48’에 참가해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의 일원으로 재데뷔하며 이름을 알리긴 했으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진 못했다.
지난해 ‘워터밤 페스티벌’에서 풍만한 몸매가 드러나는 비키니를 입고 무대를 장식한 후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각종 축제 및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가 됐고, 그의 노래가 음원차트에서 역주행했다. 얼마 후에는 권은비가 서울 성동구 카페거리 인근 단독주택을 24억 원에 매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워터밤 페스티벌’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셈이다.
올해는 걸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이 그 배턴을 이어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지도만 놓고 봤을 때 쟁쟁한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지원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언론과 여론의 시선을 모은 이유는 역시나 그의 외모와 의상이었다. 지원은 노출 강도가 꽤 높은 의상을 선택했고,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회자됐다. 관련 기사가 포털사이트 연예 면을 가득 메웠고, 유튜브를 비롯해 각종 SNS 상에는 그의 모습을 담은 ‘직캠’ 영상이 수없이 업로드됐다. “워터밤 페스티벌은 물놀이하면서 즐기는 페스티벌인 것 같은 느낌이더라”면서 음악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김윤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워터밤 페스티벌’을 폄훼할 순 없다. ‘워터밤 페스티벌’은 이미 MZ세대가 각광하는 여름 축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즉 대중이 열광하는 ‘대중문화’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름이라는 계절과도 잘 어울린다. 바다가 있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힘든 이들에게 도심 한복판에서 즐길 수 있는 물 축제는 더없이 매력적일 수 있다.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가면 다들 비키니 수영복을 입는데 뭐가 선정적이라는 것인가?’ ‘미성년자는 들어올 수 없는 페스티벌인데 선정성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박도 꽤 설득력 있다.
또 다른 논란도 있다. 물을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지적이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은 최근 “DJ로서 늘 축제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면서 “과도하게 물을 사용하는 페스티벌은 그 사용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방면에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노력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없다는 게 속상하다”고 비판했다. 배우 이엘 역시 “워터밤 콘서트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 있다. 누군가는 열광하고, 또 누군가는 우려한다. 누구의 말이 맞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매번 여름, 이런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는 건 그만큼 ‘워터밤 페스티벌’이 여름 축제 시장의 대세로 확고하게 위상을 굳혔다는 증거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