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계좌관리 이 씨 말 바꾸지만 ‘김 여사’ 지칭 가능성…임성근 “이 씨와 통화한 적도 만난 적도 없다”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타임라인
2023년 7월 19일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채수근 당시 일병(순직 후 상병 추서)이 경상북도 예천군에 있는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급류에 휩쓸렸다. 채 해병은 실종 지역에서 7km 떨어진 고평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해병대 장병들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하고 작전에 투입됐다. 해병대는 7월 21일 채 해병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했다.
박정훈 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해병대 수사단은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단은 임성근 1사단장, 채 해병이 소속됐던 포병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사 결과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 상부에 보고됐다.
보고를 받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수사 결과에 대한 결재를 마쳤지만, 돌연 사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훈 대령은 이 전 장관 지시에 따르지 않고,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규정에 따르면 군은 군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경찰 등 민간 수사 기관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7월 28일 임성근 전 사단장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이틀 뒤인 30일 이종섭 전 장관은 김 사령관과 임 전 사단장의 보직해임을 논의했다. 바로 다음 날인 31일 임 전 사단장은 업무에서 배제됐다.
임 전 사단장이 업무에서 배제된 날 오전 11시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른바 ‘VIP 격노설’이다.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전화번호도 이날 처음 등장한다. 이 전 장관은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전화를 받았다. 이날 오후 이 전 장관은 다시 임 전 사단장의 업무 복귀를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이 전 장관에게 연락한 사람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대통령실 참모라고 했다.
8월 2일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인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오후 4시 59분 02-80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 온 대통령실 전화를 받았고, 오후 5시 55분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직 해임됐고,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서 수사 기록을 회수했다.
이 시기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4년 7월 10일 JTBC, MBC,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이종호 전 대표가 VIP에게 임 전 사단장 구명활동을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을 보도했다. 녹취록은 지난해 8월 9일 공익 제보자 A 변호사와 이 전 대표의 통화 내용이다. A 변호사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다 경선에서 탈락한 인물이다. 5월부터는 박정훈 대령 변호를 맡고 있다. 녹취록은 공수처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언론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그래 가지고 B(전직 청와대 경호처 직원, 해병대 출신)가 전화 왔더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하겠다. 원래 그거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라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이 B 씨에게 사표를 낸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 소식을 B 씨가 다시 이 전 대표에게 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직 경호처 직원 B 씨는 이 전 대표와 임 전 사단장의 연결고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 변호사 A 씨, B 씨 등은 ‘멋진해병’ 카카오톡 대화방 구성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 외에도 현직 경찰 C 씨, 사업가 D 씨가 대화방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JTBC에 따르면 B 씨는 2023년 5월 3일 이 카카오톡 대화방에 ‘포항 1사단에서 초대한다’며 사단장 및 참모들과 1박 2일 골프 및 저녁 자리를 같이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구체적인 계획도 나왔다. 6월 2일 오후 1시 임 전 사단장을 만나고 2시부터 골프를 치고, 저녁에 사단장 및 참모들과 회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대표는 일정을 체크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와 임 전 사단장이 서로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다만 이 모임은 이후 이 전 대표의 참석이 어렵다고 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 전 대표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 있는 인물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서 김건희 여사 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으로 2020년 수사선상에 올랐고, 2021년 기소돼 2023년 2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김 여사와 서로 아는 사이라고 인정했다. 야권은 김 여사와 관계가 있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실에 임성근 구명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한다.
2023년 8월 21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 혐의를 삭제한 채 경찰에 수사 기록을 넘겼다. 같은 달 25일 임 전 사단장이 다시 사의를 표명했다. 임 전 사단장 측은 자리에 연연했다면 다시 사의를 표명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북경찰서는 지난 7월 8일 업무상과실치사,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된 임 전 사단장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8월 포병대대 7본부 대대장이던 이용민 중령의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에 의해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법원은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의 해병대 관계자 등에 대한 통신영장 청구를 3차례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사의 통화 기록 보존 기간은 1년으로 관련 기록 보존 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VIP는 김 여사? 김계환?
이 전 대표는 복수의 언론을 통해 해병대 후배들 앞에서 허세를 부린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임 전 사단장과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그의 구명에 힘쓸 이유가 없다고 부인했다. 김건희 여사와는 연락하지 않고 있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했다.
녹취록에 담긴 VIP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확실하지 않다. 이 전 대표가 말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7월 10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VIP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 김계환 사령관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 날인 11일 채널A에는 VIP는 김 여사를 뜻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A 변호사가 공수처 조사에서 이 전 대표가 사석에서 여러 차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V1과 V2로 지칭하며 친분을 과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통상 대통령은 VIP 또는 V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A 변호사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를 VIP로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전 대표 해명에 의문점은 또 있다. 이 전 대표는 MBC에 “임 전 사단장 사표 소식을 전해준 B 씨(전직 경호처 직원)가 VIP라는 언어를 쓰고 그래서 따라서 쓴 것”이라고 했다. B 씨는 “임 사단장 사표 얘기는 했지만, 이 전 대표에게 VIP를 언급한 적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말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임 전 사단장은 “작년 7월 28일 사의를 표명하기 전, 어떤 민간인과도 사표 관련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이 씨와는 한 번도 통화하거나 만난 적 없고, 사의 표명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8월 2일 이후 B 씨로부터 ‘언론 통해 사의 표명을 들었다. 건강 잘 챙겨라’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로비가 있었다면, 이 전 장관이 7월 31일 수사단의 결재를 번복하기 전에 이뤄졌어야 한다”며 “부대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이 전 대표나 B 씨가 로비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7월 11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 이 씨가 ‘VIP에게 내가 얘기하겠다’며 임 사단장 구명 로비에 나섰다는 일부 의혹 보도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물론 대통령 부부도 전혀 관련이 없다”며 “대통령실은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보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정청래)는 7월 9일 김건희 여사와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 등 39명을 증인으로, 7명을 참고인으로 부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민청원’ 청문회 개최를 의결했다. 청문회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열린다. 채 해병 관련 질의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