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만에 최소 규모 선수단 파견해 금 5~6개 기대…수영·펜싱 사브르·유도 기대감 높아
이번 대회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를 뒤덮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진 뒤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직전 대회였던 2020 도쿄 올림픽은 예정보다 1년 늦어진 2021년에 개최됐고, 선수들은 처음으로 관중 없는 경기장의 적막 속에서 승부를 펼쳐야 했다. 그러나 파리 대회를 계기로 올림픽은 다시 '4년 주기 짝수 해' 궤도에 재진입했고, 관중도 8년 만에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온다.
#22개 종목에 144명 선수 파견
파리 올림픽은 역대 최초로 주 경기장 밖에서 열리는 야외 개회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에서 각 나라 선수가 배를 타고 6km를 행진하는 수상 행진을 펼친다. 에펠탑 광장에서 비치 발리볼 경기,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와 근대 5종 경기, 그랑 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각각 열리는 등 역사·문화 유적과 스포츠를 결합한 프랑스만의 대회 운영 방식도 시선을 모은다. 대회 마스코트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군이 쓴 프리기아 모자를 형상화한 '프리주'(Phryge)다. 자유·평등·박애의 의미를 담은 프랑스의 삼색기(청·적·백)를 상징한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대회 때마다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드는 '10-10'을 목표로 삼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잇따라 금메달 13개를 따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금메달 9개를 수확해 두 자릿수에 도달하지 못했고,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선 금메달 6개에 그쳐 급격한 내림세를 탔다. 한국의 금메달 수가 6개 이하로 떨어진 건 1984년 LA 올림픽 이후 37년 만이었다.
한국은 파리올림픽에서도 험난한 레이스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번 대회에선 22개 종목에 144명의 선수를 파견한다. 한국의 올림픽 출전 역사에서 48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이다.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 선수 50명을 파견한 뒤 LA 대회(210명)부터 매번 200명이 넘는 선수단을 올림픽에 보냈다.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 대회에는 역대 최다인 477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그런데 올해는 48년 만에 100명 대 선수단을 파견하게 됐다. 남자 핸드볼과 축구·농구·배구·하키·럭비 등 단체 구기종목이 줄줄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출전 선수가 확 줄어든 탓이다. 11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낸 여자 핸드볼만 구기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대한체육회도 이런 현실을 고려해 이번 대회에선 금메달 5~6개를 기대하고 있다. 3년 전 도쿄 대회와 비슷한 수치다.
#황선우, 포포비치와 진검승부
수영은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초반 레이스 분위기를 좌우할 최고 관심 종목으로 꼽힌다. 2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따낸 황선우(21)와 김우민(23·이상 강원도청)이 쌍두마차로 앞장선다. 당시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김우민은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 2011년 '마린 보이' 박태환 이후 끊겼던 세계선수권 금맥을 13년 만에 다시 이었다. 이들은 또 이호준(23·제주시청), 양재훈(26·강원도청)과 함께 출전한 남자 계영 800m에서도 세계선수권 단체전 사상 첫 메달(은메달)을 수확해 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한국은 세계선수권처럼 황선우의 200m, 김우민의 400m, 둘이 함께 출전하는 계영 800m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자유형 200m에 함께 출전하는 황선우와 다비드 포포비치(20·루마니아)의 진검승부는 한국 선수단이 기대하는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황선우보다 한 살 어린 '괴물' 포포비치는 명실상부한 자유형 세계 일인자다. 남자 자유형 100m 세계 기록(46초86)을 보유했고, 200m 세계 주니어 기록(1분42초97)도 갖고 있다. 황선우의 200m 최고 기록(1분44초40)보다 1초43이나 빠르다. 2022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는 49년 만에 자유형 100m와 200m를 석권하는 역사를 써 '수영 황제'로 등극했다. 이뿐만 아니다. 자유형 200m 역대 세계 챔피언 중 최연소였고, 루마니아가 배출한 최초의 수영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기록됐다.
지난 시즌엔 코치와의 불화설에 휩싸이는 등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2023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100m 6위와 200m 4위에 머물렀을 정도다. 그러나 '본무대'인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다시 무서운 속도로 괴물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6월 22일(한국시간) 열린 유럽선수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3초13에 터치패드를 찍고 우승했다. 올해 자유형 200m에서 1분43초대에 진입한 선수는 포포비치 단 한 명뿐이다. 황선우의 올해 최고 기록은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남긴 1분44초75로 포포비치와 격차가 작지 않다. 올림픽에서 치열한 메달 경쟁을 펼치게 될 루카스 마르텐스(1분44초14·독일), 매슈 리처즈(1분44초69), 덩컨 스콧(1분44초75·이상 영국)도 올해 최고 기록이 포포비치에 1초 이상 뒤진다. 포포비치가 정상 컨디션으로 좋은 레이스를 펼친다면, 그 어느 선수도 넘어서기 어려운 벽이라는 의미다.
황선우와 포포비치는 3년 전 도쿄에서 두 차례 올림픽 레이스를 함께한 적이 있다. 나란히 자유형 100m와 200m 결선에 올라 '10대 돌풍'을 일으켰다. 100m에서는 황선우가 5위, 포포비치가 7위에 올랐고 200m에선 포포비치가 4위, 황선우가 7위였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수영 잡지 스위밍 월드는 "포포비치와 황선우는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향후 수년간 국제 무대 정상을 겨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 후 포포비치는 황선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2009년 '과학기술이 만든 도핑'으로 통하던 전신 수영복 착용이 금지된 이후 자유형 200m에서 1분42초대에 진입한 선수는 포포비치 단 한 명뿐이다. 황선우 역시 포포비치를 '한 수 위'로 인정하고 있다. "포포비치는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엄청난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 나도 그렇게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황선우의 자신감과 투지도 하늘을 찌른다. 포포비치 외에도 마르텐스, 리처즈, 스콧처럼 막상막하의 기록을 내고 있는 메달 경쟁자가 많기에 더 그렇다. 황선우는 "도쿄 대회 이후 3년간 (올림픽) 한 우물만 파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동안 쌓아올린 경험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꼭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며 "지금까지 연습해왔던 대로 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포포비치는 "황선우는 아주 좋은 선수다. 선수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며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 수영해 온 친구인 동시에 매우 치열한 경쟁자다. 황선우와의 승부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어펜저스' 아닌 '뉴펜저스' 출격
한국은 신흥 효자 종목인 펜싱에서도 금메달 2개 이상을 목표로 잡았다. 세계 최강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단체전 3연패를 노리고, 오상욱(28·대전시청)과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은 개인전까지 2관왕에 도전한다. 송세라(31·부산시청)를 앞세운 여자 에페의 반란도 기대해볼 만하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베테랑 김정환(41·국민체육진흥공단)과 김준호(30·화성시청)가 빠지고 도경동(25·국군체육부대)과 박상원(24·대전광역시청)이 합류한 '뉴펜저스'(뉴 어펜저스)가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지가 관심거리다.
김정환-구본길-김준호-오상욱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어펜저스'(펜싱+어벤저스)로 불리는 한국 펜싱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2017년 세계선수권에서 이 멤버로 사상 첫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뒤 숱한 국제대회 정상을 휩쓸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로는 압도적인 기량과 뻬어난 외모를 앞세워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맏형 김정환과 셋째 김준호가 이탈하면서 굳건하던 '톱 4'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 이제 '어펜저스' 멤버 중 새로운 맏형 구본길과 간판스타 오상욱만 남아 새로운 후배 둘을 이끌고 올림픽 무대에 나서게 됐다. 김정환과 김준호는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파리에 간다.
구본길은 "그동안 정환이 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제 알겠다. 리더, 캡틴이라는 자리가 무척 힘들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내가 무너지면 후배들도 무너진다는 걸 알기에 내가 멘털적으로 더 강해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에게 긍정적인 부분은 베테랑과 신예 사이 세대교체가 외국처럼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명이 메달리스트고, 2명은 신진이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며 "새 멤버들과 기존 멤버들은 펜싱 스타일이 다 달라 시너지 효과가 생길 거라 믿는다. 준비를 열심히 했으니 기대해주셔도 좋다"고 자신했다.
오상욱은 "젊은 후배 두 명이 들어와 패기가 생겼고, 그 힘을 많이 얻는 것 같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이전 못지않은 팀으로 파리 올림픽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팀의 막내였다가 둘째가 된 그는 "이전에는 형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후배들이 나를 따라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가 경기를 못 하면 후배들에게도 영향이 갈 것 같아서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위해 힘을 합칠 구본길과 오상욱은 개인전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다. 구본길은 자신에게 마지막이 될 이번 올림픽에서 반드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겠다는 각오다. 그는 "네 번의 올림픽을 치르면서 욕심도 내기도 해봤고, 내려놓기도 해봤다. 내 장점은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며 "개인전 준비는 이미 끝났다. 색깔과 상관없이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그래도 그 전에는 결과만 보고 준비했다면, 마지막 대회를 준비하는 지금은 과정도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팀 에이스인 오상욱은 도쿄 올림픽에서 가져오지 못한 개인전 금메달을 손에 넣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올해 초 그를 괴롭혔던 손목 부상도 털어냈다. 최근 기르던 수염까지 깨끗하게 면도한 오상욱은 "파리 올림픽을 (메달로) 잘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자 양궁 단체 10연패 위업 도전
그래도 금메달이 가장 유력한 종목은 단연 한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양궁이다. 도쿄 대회에서 양궁 리커브 종목에 걸린 금메달 5개(남녀 개인·남녀 단체·혼성) 중 4개를 따냈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최소한 3개는 손에 넣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여자 단체전에서는 1988년 서울 대회부터 시작된 올림픽 10연패를 바라보고 있다. 올림픽에 양궁 단체전이 도입된 이래 한국 여자 선수들이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서지 못한 대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이번 대회에 나서는 태극 궁사들의 어깨가 무겁다.
유일한 불안 요소는 여자 대표팀 세 명 중 큰 경기를 많이 경험한 선수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 임시현(21·한국체대)밖에 없다는 점이다. 임시현과 함께 나서는 전훈영(30·인천시청)과 남수현(19·순천시청)은 지난해까지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임시현도 올림픽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홍승진 대표팀 감독은 고심 끝에 베테랑 전훈영에게 단체전 1번 사수를 맡기고, 임시현을 마지막 3번 사수로 배치하기로 했다. 양궁 단체전에서는 강심장을 1번에, 경험이 가장 많은 선수를 3번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임시현은 "(10연패 달성의) 부담을 느끼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 번 금메달 맛을 보니까 계속 욕심이 난다"며 "이제 올림픽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훈영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올해 월드컵부터 준비를 잘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며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 목표한 것을 이루고 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도, 12년 만의 금빛 메치기?
한국은 유도·배드민턴·태권도에서도 각각 1개 이상의 금메달을 바라지만, 우승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올림픽에서 최근 2회 연속 '노 골드' 수모를 겪은 한국 유도는 다행히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5월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허미미(여자 57㎏급)와 김민종(남자 100㎏ 이상급)에게 희망을 건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건 29년 만이었고, 남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이 나온 건 무려 39년 만이었다. 세계선수권 동반 금메달 소식에 유도 대표팀은 올림픽에서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황희태 남자 대표팀 감독은 "이번에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한국 유도는 완전히 추락한다. '수사불패(雖死不敗)' 정신으로 올림픽에 임하겠다"고 했다. 배드민턴의 안세영은 1994년 애틀랜타 대회의 방수현 이후 30년 만에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을 노린다. 태권도 남자 58㎏급의 박태준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걸고 출격한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