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대동소이’…“문제는 양보야”
▲ 안철수 후보(왼쪽)와 문재인 후보가 지난 10월 29일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골목상권 살리기 운동 전국 대표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
현재까지 발표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상당부분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분야를 아울러 살펴봐도 “바르게, 깨끗하게, 국민을 위해”라는 기본 아래 정책 방향의 큰 틀이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에 있어서는 ‘판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공정경제’ ‘혁신경제’ 등 단어 표현만 달리 했을 뿐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 10대 공약 대부분 입장 일치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10대 공약 비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두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확대(찬성), 일제고사 폐지(찬성), 원자력발전소 증설 추진(반대), 지방정부 재정권한 강화(찬성),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찬성) 등 5가지 항목에서 거의 일치된 모습을 보였다. 무상의료 실시에 대해서만 문 후보는 절대적 찬성을, 안 후보는 조건적 찬성을 나타냈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도 크게 입장을 달리 하지 않았다.
정치컨설턴트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는 “두 후보의 공약이 비슷한 것은 무엇보다 포퓰리즘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수 확보를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두 후보뿐 아니라 박근혜 후보의 공약도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공약이라 봐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라며 “후보 등록일이 20일도 남지 않았는데 단일화 후보도 정하지 못했으니 어찌 공약 대결을 펼치겠느냐. 앞으로의 대선정국도 공약 선거로는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대통령 인사권 축소엔 이견
물론 모든 공약이 ‘붕어빵’은 아니다. 전체적인 방향은 같으나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차이를 보이기도 하며 상반된 시각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개혁과 관련한 공약을 살펴보면 방법론적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자는 큰 틀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나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안 후보는 대통령 인사권 축소를 통해 권한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청와대가 임명하는 자리가 직·간접적으로 1만 개가 넘는데 이를 10분의 1 이하로 줄이겠다는 것. 안 후보는 이를 통해 매번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니 전관예우니 하는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후보는 대통령의 인사권 축소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문 후보는 대통령의 인사권 축소는 자칫 새 정부의 개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이다. 대신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권한을 이양하는 동시에 투명하고 객관적인 인사시스템 도입을 통해 대통령 인사권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 문 후보 양보에도 국회개혁 차이
문 후보가 한 발짝 물러서긴 했으나 국회개혁을 두고도 단일화에 걸림돌이 될 부분이 남아있다. 그동안 안 후보는 중앙당의 공천권 폐지를 앞세우며 동시에 국가에서 지원되는 국고보조금도 정치권 스스로 액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앙당을 폐지하거나 축소를 해야만 소위 패거리 정치라 불리는 폐단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문 후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초 문 후보는 “국민이 정치를 불신한다고 해서 정치 자체를 위축시켜서는 안 되며 바르게 작동하도록 고치는 것이 정당이 할 일”이라며 “정당과 정치를 축소시키는 것은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단일화 회동을 앞둔 지난 6일 문 후보가 발표한 정치쇄신안에서는 중앙당의 권한 축소에 일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국고보조금에 대해서는 금액을 줄이는 것이 아닌 중앙당의 정책기능 강화를 강조했다. 현행법상 국고보조금의 30%는 정책분야에 쓰도록 돼 있는데 이를 투명하게 관리해 깨끗한 정치를 만들겠다는 것.
국회의원 정원을 두고도 비슷한 논리로 두 후보가 대립하고 있다. 안 후보는 국회의원의 정원을 줄여 비용절감 및 민생에 필요한 법률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문 후보는 정치 자체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대 의견을 내보이고 있는 것. 대신 문 후보는 지역구의 의석을 대폭 줄여 200석으로 제한하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려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 안 후보 참여정부의 사법개혁 비판
사법개혁안을 두고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 후보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 제도를 금지해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공식적 관계로 환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안 후보는 이를 ‘작은 이슈’라며 보다 앞서 나간 개혁안을 발표했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를 비난하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위해서는 검찰청을 독자적인 예산·인사권을 가진 독립된 외청으로 개편하겠다는 것.
검찰의 기소·수사권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정치적 목적의 부당한 수사 및 기소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실과 원인을 규명해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을 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 시민의 견제역할을 강화하고 검사가 자신의 수사·기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인사 시스템 도입을 약속했다.
반면 안 후보는 일반시민들의 역할을 더욱 강조했다. 정치적 파장이 큰 중요사건일 경우 기소 여부에 대해서도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의 결정에 따르도록 한 것. 여기에 판사, 검사, 사법경찰관, 공수처 특별검사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공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엄벌할 것을 주장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에서도 이견을 나타냈다. 안 후보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조해 경찰권의 남용과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반면 문 후보는 경찰에 수사권을 전임하고 검찰에 기소권을 부여해 검찰과 경찰이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 특목고 존립 두고 대결
교육정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생각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목고 축소와 대학 등록금 반값 인하에서 각기 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 문 후보는 외국어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포함한 특목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당초 설립목적과 달리 입시경쟁을 악화시키고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문 후보는 특수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고 대학 입학전형에서도 일반고를 낮게 평가하는 고교등급제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면 안 후보는 특수고의 존재는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사교육 열풍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특목고의 우선 선발권만 폐지하도록 했다.
대학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문 후보가 보다 적극적인 모습이다. 문 후보는 당장 내년부터 국공립 대학을 시작으로 사립대까지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안 후보는 2014년 전문대부터 시작해 지방대 이공계(2015년), 지방대 전체(2016년), 수도권 전체(2017년) 순으로 등록금 인하를 발표했다. 산학협력을 의무화하고 교부금 형태로 대학을 지원해 순차적으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 일자리 창출 방법론적 차이
일자리 문제 해결에 있어서 안 후보는 ‘사회통합’을, 문 후보는 ‘만들고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 문 후보는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방법으로 3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으며 대기업에 3%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적용해 청년실업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또한 공공부문에서의 비정규직 일자리 중 상시적인 일자리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017년까지 전 사업에서 비정규직 비중을 30%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안 후보 역시 일자리 창출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주요 문제에 대한 큰 틀을 제시할 뿐 지금 당장 구체적인 수치로 공약을 내놓진 않았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는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청년고용 특별조치’를 취해 기업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빈자리를 청년 신규 채용으로 대처할 것을 약속했다. 비정규직 해소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 2년 이상 일을 지속할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히는 정도였다.
# 금강산 관광 ‘재개 vs 재발방지’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두 후보가 매우 유사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으나 한 가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는 약간의 입장 차이를 보였다.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중시하는 문 후보는 즉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약속했으나 안 후보는 금강산 사태와 같은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이 우선돼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분야별 공약에 있어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곤 있으나 전문가들은 단일화에 걸림돌이 될 수준은 아니라고 예상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대원이엔씨 대표는 “큰 틀에 있어서는 방향이 유사하기 때문에 충분히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기 어렵고 관심도 없다”며 “안철수의 약점은 정당이라는 근간이 없다는 점이고 문재인은 구태정치라는 프레임이 약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화를 이루면 서로의 약점이 보완돼 플러스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술 대표 역시 “두 후보 간 단일화를 불발시킬 정도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없으나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안 후보의 경우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왔는데 만약 단일화를 통해 기성정당에 몸담고 있는 문 후보에 흡수되면 지지자 이탈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지난 대선엔 있고 이번 대선엔 없는 것
‘한 방 공약’이 없다
속속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되고 있지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파급력을 가진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대원이엔씨 대표는 “본래 대선에는 각 후보가 미는 ‘한 방 공약’이 있기 마련이다. 16대 대선에서는 세종시가, 17대 대선에서는 4대강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건설경기에 대한 피로도가 중첩된 상황이라 딱히 토건 같은 큰 공약을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반응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의 장은숙 회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행복한 학교’ 공약은 이상적인 측면이 강하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나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반값등록금, 자사고 정책 검토 등은 그동안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오던 부분”이라면서 “한 번에 분위기를 역전시킬 만한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환경, 대학입시, 장애인인권,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녹색연합 윤기돈 차장은 “야권 후보들의 4대강 관련이나 탈핵, 신규 원전 건설 금지 등의 공약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새롭다고 볼 수는 없다. 환경정책에서 파급력 있는 공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정책을 펴도 예산과 거기에 얽혀있는 이해단체들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로선 모든 공사에 있어 환경평가를 최우선으로 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하면 가장 좋은 공약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컨설턴트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는 “차별화된 공약이 없는 만큼 우선 포퓰리즘적 자세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 정책실현에 소요되는 예산을 확실히 따지고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박정환 인턴기자
‘한 방 공약’이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반응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의 장은숙 회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행복한 학교’ 공약은 이상적인 측면이 강하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나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반값등록금, 자사고 정책 검토 등은 그동안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오던 부분”이라면서 “한 번에 분위기를 역전시킬 만한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환경, 대학입시, 장애인인권,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녹색연합 윤기돈 차장은 “야권 후보들의 4대강 관련이나 탈핵, 신규 원전 건설 금지 등의 공약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새롭다고 볼 수는 없다. 환경정책에서 파급력 있는 공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정책을 펴도 예산과 거기에 얽혀있는 이해단체들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로선 모든 공사에 있어 환경평가를 최우선으로 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하면 가장 좋은 공약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컨설턴트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는 “차별화된 공약이 없는 만큼 우선 포퓰리즘적 자세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 정책실현에 소요되는 예산을 확실히 따지고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박정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