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 고위 관계자 “돈가방 전달자는 이시형 아닌 청와대 직원”
과연 이시형 씨가 직접 이상은 씨 집에 가서 6억 원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했을까. 지난해 5월 24일 시형 씨의 행적에 대해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가 본지에 전혀 다른 증언을 했다. 내곡동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시형 씨가 아닌 제3자가 청와대에 6억 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사정당국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돈 전달자는 청와대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는 특검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형 씨는 명의만 빌려줬을 뿐 부지 매입 등은 이 대통령 부부 주도 하에 이뤄졌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핵심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 일가를 정조준하고 있는 내곡동 특검의 또 다른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는 ‘6억 전달자’ 뇌관 속으로 들어가봤다.
이시형 씨.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내곡동 특검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돈을 받기 위해 이상은 회장 자택을 방문했다는 시형 씨의 2011년 5월 24일 행적을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의문점에서 시작됐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우선 시형 씨와 이 회장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재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나온 검찰 및 특검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시형 씨가 경북 경주 다스 본사에서 이 회장에게 6억 원에 대한 차용증을 써준 것은 2011년 5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그날 밤 서울 구의동에 위치한 아파트로 올라 와 평소 붙박이장에 보관하던 현금 6억 원을 세 개의 보자기에 나눠 싸놓고 새벽에 다시 경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24일 시형 씨가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청와대에 들러 가방 3개를 가지고 혼자 차를 몰아 이 회장 자택으로 가서 큰어머니로부터 그 돈을 받아갔다. 시형 씨는 만 원권 5억 원, 5만 원권 1억 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청와대로 가져가 김세욱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에게 건넸다. 시형 씨 측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5월 24일 날짜가 찍힌 KTX 기차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검 출범 초기부터 수사팀은 시형 씨가 6억 원을 빌려간 과정에 대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여러 각도로 확인 작업을 벌여왔다. 특검은 시형 씨가 실제로 이 회장 집에 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아파트의 CCTV 및 주차 기록 등을 확보해 살펴봤지만 시형 씨 방문 흔적을 찾지 못했다. 시형 씨가 24일에 이 회장 집을 찾아갔다는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특검팀 관계자는 “황태자(특검 내부에서 시형 씨를 빗대 부르는 호칭)의 5월 24일 동선을 파악하는 게 수사의 초점”이라면서 “만약 시형 씨가 이상은 회장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누가 돈을 받아갔는지를 추적하는 수사가 뒤따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검이 8일 이 회장 부인이자 시형 씨의 큰어머니인 박 아무개 씨를 상대로 공개적인 소환 요청을 한 것도 시형 씨의 5월 24일 행적을 찾아내기 위한 전초단계로 풀이된다. 이석수 특검보는 브리핑을 통해 “이상은 회장 부인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환 요청을 했는데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참고인이기 때문에 소환을 강제할 방법은 없지만 우리로서는 반드시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특검은 박 씨가 5월 24일 청담동의 한 중국집에서 김윤옥 여사의 최측근인 설 아무개 씨와 만난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앞서의 특검 관계자는 “박 씨가 시형 씨에게 돈을 건네기 전에 왜 김 여사 측근을 만났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면서 “김 여사가 돈을 받는 과정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시형 씨가 부지 매입을 위해 마련한 6억 원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일요신문>은 청와대로 돈을 가지고 온 인물이 시형 씨가 아닐 뿐 아니라 이 회장이 개인 돈이라고 주장했던 6억 원의 실체도 다시 파헤쳐야 한다는 내용의 증언들을 확보했다.
내곡동 부지 매입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정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시형 씨가 5월 24일 서울에 올라온 것은 맞지만 구의동 집을 방문하진 않았다. 강남 일대에서 지인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6억 원이 든 가방을 청와대로 전달한 장본인은 (청와대) 내부 직원이었던 것으로 안다. 현금 6억 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살펴보면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형 씨는 지난해 검찰 수사 당시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부지 매입에 대해 “아버지가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이다. 땅값도 몰랐다”는 취지로 해명했었다. 그런데 특검 수사가 시작되자 시형 씨는 말을 바꿨다. “검찰에 냈던 서면 진술서는 단 두 장뿐이라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내곡동 사저 부지의 실제 매입자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시형 씨가 부동산실명법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진술을 변경했을 것이란 반응이 우세하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은 명의 신탁자, 수탁자, 교사자까지 모두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아버지가 시킨대로 했다’라는 종전의 입장을 유지한다면 ‘이명박-이시형 부자’ 모두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시형 씨가 실매입자가 될 경우 이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1일 특검에 출두하는 이상은 다스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특검팀 관계자 역시 “현금 6억 원을 대통령 아들이 직접 운전을 해 배달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느냐”고 반문하면서 “제3자가 존재할 것이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5월 24일 시형 씨의 행적을 파악해야 하고, 또한 어떤 식으로든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시형 씨가 이 회장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현금 6억 원의 성격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6억 원을 실제로 이 회장이 건넨 것이 맞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명확히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검은 지난 10월 17일 이 회장 자택 압수수색 당시 시형 씨 큰어머니인 박 씨가 “(시형 씨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말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6억 원이 이 회장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8년 초 꾸려졌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이 ‘다스’의 100억 원대 비자금을 알고도 덮었다는 보도가 나와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당시 ‘이명박 특검팀’은 2003년부터 2008년 초까지의 다스 법인계좌 추적을 통해 130억~150억 원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이는 횡령과 탈세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특검은 추가 확인을 않은 채 수사를 끝냈다. 이 대통령에겐 당선 축하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2008년 특검 수사가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것은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다스 비자금 중 일부가 6억 원의 출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에서다. 특검팀 관계자는 “아직 그 부분까지는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도 “6억 원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