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판결시 ‘카뱅’ 경영권 장담 못해, 계열사 정리 등 차질 우려…카카오 “경영 공백 최소화 위해 최선”
#김범수 위원장, 시세조종 관여했나
지난 7월 23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 주가를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시세조종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적인 지시·승인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혐의를 부인해 왔으나 재판부는 증거 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결정을 내렸다.
당장 주목받는 건 카카오뱅크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10% 넘게 보유하려면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경영진이 처벌을 받을 경우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도 벌금형 이상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카카오뱅크 주주 구성현황에 따르면 카카오(27.16%), 한국투자증권(27.16%), 국민연금공단(5.76%), 국민은행(4.88%), 서울보증보험(3.2%) 등이 카카오뱅크 주요 주주다. 법원에서 카카오 법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한국투자증권과 1주 차이로 최대주주를 유지하고 있던 카카오뱅크는 지분 17.17%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경영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3년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시장 점유율은 3.6%로 각각 1.8%와 1.5%인 토스뱅크과 케이뱅크의 두 배에 달한다. 카카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가 된 이후 지분법이익은 꾸준히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도 연동돼 있고 은행을 통해 보험, 증권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확장이 막히는 셈”이라며 “뿐만 아니라 은행은 ‘돈통’이나 다름없어서 은행이 창출해내는 사업의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그 유·무형의 기회를 전부 잃을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타격이 큰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경영권까지 잃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우선 2대 주주인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톡 시스템과 연계된 카카오뱅크를 직접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카카오가 보유한 17%가량의 지분을 판다고 해도 일반 기업의 경우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 원칙에 따라 카카오뱅크 지분을 10% 미만으로만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가져갈 확률은 낮다.
그나마 인수 여력이 있고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곳들로 시중은행이 지목되지만 시중은행이 거액을 들여 경영권을 인수할 만큼 카카오뱅크의 매력도가 높지는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저희도 원점에서 검토는 하겠지만 카카오뱅크가 출범 초기만큼 혁신성이 큰 것도 아니고 예전과 달리 시중은행들도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큰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시중은행보다 마진이 낮고 자유도가 더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영권 인수보다는 협업을 위한 대상으로서 지분 투자 정도만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실 지분을 받아줄 만한 데가 마땅치가 않은 것이 더 문제다. 팔긴 팔아야겠지만 시가총액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야 지분을 팔 수 있다”며 “다만 카카오 측에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략을 세울 수도 있고 사모펀드가 블록딜(일괄매각)을 생각하고 지분을 받아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과 미래 사업 전략에도 적신호
카카오의 계열사 정리 등 구조조정도 갈피를 잡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게임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카카오VX 등 대부분의 자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김범수 위원장의 사법 리스크를 비롯해 그간 카카오의 문어발 경영과 쪼개기 상장 이슈 등으로 여론이 악화한 탓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과 카카오뱅크, 일본의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픽코마 등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자산을 제외하고 전부 매각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 투자활동이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정현 교수는 “매각 계획은 기회가 왔을 때 굉장히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부재하기 때문에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래 카카오의 경쟁력에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카오가 총수의 부재로 선제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카카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올해 3월 부임한 정신아 대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신규 사업에 집중한 커리어 루트를 밟았기 때문에 김범수 위원장이 뒤에서 받쳐주는 모양새였다”며 “그런데 이제는 김 위원장이 바로 지원사격 해주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대규모 투자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정신아 대표의 신사업과 AI(인공지능) 쪽은 큰 차질이 빚어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그룹도 한때 총수가 구속된 적이 있지만 삼성은 대규모 장치산업들을 영위하면서 장기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신규 기술에 탄력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IT(정보통신)산업에서 총수가 부재하다는 건 카카오의 미래 전망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창업주가 사라진 상황에서 다른 임원들이 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카카오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 안타까우나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