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빨래 해준 은범이형 고맙고 죄송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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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표 메이저리거 추신수(오른쪽)는 포스팅 대박을 터뜨리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류현진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류현진(류): 나보다는 요즘 신수 형의 트레이드 문제가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진짜 다른 팀으로 가는 거예요?
추신수(추):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미국 메이저리그 단장들과 연일 미팅을 갖고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들었어. 그런데 막상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까 현진이랑 같은 팀에서 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것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팀에서 뛴다면 최상의 시나리오 같은데.
류: 진짜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 형이랑 같은 팀에서 뛴다면 걱정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요. 형이 알아서 다 도와줄 거니까(웃음).
추: 넌, 진짜 ‘연구 대상’이야. 그 능글거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냐? 나한테 찾아온 후배가 내 용품들을 말도 안 하고 그냥 가져가는 놈은 너밖에 없었다.
류: 하하, 사실 지금 신고 있는 이 신발도 신수 형 거예요. 형 발 사이즈가 나랑 똑같아요. 형의 방으로 놀러갔다가 신발이 예뻐서 그냥 신고 나왔어요.
추: 현진이의 이런 성격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덤덤함, 별로 걱정하지 않는 태평함,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 등등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 난 너무 예민해서 문제인데, 현진이 성격은 정말 내가 뺏을 수만 있다면 뺏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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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추: 네 말대로라면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에서 류현진의 인생이 결정난 셈이네. 그때 대표팀 생활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 우리가 너한테는 빨래도 안 시켰잖아. 금메달 따려면 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국보급 투수를 잘 모셔야 한다며 빨래는 죄다 송은범을 시켰는데, 결국 네가 빨래 안 한 대가를 금메달로 보상해줬지.
류: 정말 짜릿했어요. 은범이 형한테는 미안하면서 고마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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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류현진(왼쪽)과 추신수(오른쪽). 연합뉴스 |
류: 저도 그런 점에서 어깨가 무거워요. 아직 가게 될지, 어떨지 결정나진 않았지만 한국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타이틀이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는 건 사실이에요.
추: 내가 2001년 시애틀 루키리그에 합류했을 때 요즘 말로 ‘멘붕’ 상태였었어. 한국 고교야구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던 내가 트리플도 아닌 루키리그였는데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수두룩 빽빽’이더라고. 아,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었지. 하지만 현진이는 이미 국제대회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거고.
류: 그래도 걱정은 돼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선수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부분에서요. 한화에 있을 때 외국인선수들을 대하며 느꼈던 감정을 반대로 제가 그들 입장이 되는 거잖아요. 잘 어울릴 자신도 있고, 제가 먼저 다가가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문제는 말(언어)이 안 된다는 거죠(웃음).
추: 나도 처음에 미국 갔을 때는 영어 A, B, C밖에 몰랐어. 넌 외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며?
류: 형, 그게 순전 ‘콩글리쉬’였어요. 제가 미국 가서 그런 언어를 구사하면 미국 애들이 날 완전 이상한 놈으로 보지 않겠어요?
추: 처음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지.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될 거야. 한국에선 최고의 투수였지만, 거기선 3, 4선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잘났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든지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해. 그러면서 실력 발휘를 해야지.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선수들은 류현진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든.
류: 근데 미국은 장거리 이동이 많잖아요. 시차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아요?
추: 많이 힘들지. 어떨 때는 새벽에 도착해서 3시간 자고 야구장으로 출근한 적도 있으니까. 무승부가 계속 될 때는 새벽까지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어. 시차에다 이동에 따른 체력소모 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부분이야. 그래도 선발투수는 나아. 로테이션이 있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포스팅 입찰이 성사됐다고 해도 연봉 또한 중요한 부분인데, 현진이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
류: 가고 싶다고 해서 적은 연봉을 받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연봉이 적은 선수는 구단에서도 쉽게 대하잖아요. 비싼 돈을 준 선수한테는 그 이상의 신경을 써주고 대우를 해준다고 믿어요. 만약 3, 4선발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면 그에 준하는 몸값은 받고 싶어요.
추: 그건 현진이 생각이 맞아.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현진아, 미국 오게 되면 각 지역별로 한국 음식점, 맛집 등은 형이 죄다 꿰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라. 리스트 넘겨줄 테니까.
류: 형, 저는 이런 꿈이 있어요. 형의 목표가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하는 거잖아요. 난 형과 미국에서 같이 은퇴하고 싶어요. 형이랑 다섯 살 차이 나니까 형은 45세에, 난 40세에 은퇴하면 동시에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팀에서 한낱 한시에 은퇴를 한다면 굉장한 이슈가 되겠죠?
추: 뭐? 45세? 어휴, 내가 그때까지 뛸 수 있겠나. 하여튼 현진아, 우리 기도하는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기다려보자. 형이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류: 형, 그 말씀 꼭 지키셔야 해요. 형, 사랑합니다. 하하.
부산=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