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서 딸 재산 증식 과정 등 도마 위…37억 상당 비상장주식 기부했지만 ‘엘리트주의’ 비판 여론 확산
국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보류된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사법연수원 26기)가 청문회 도중에 한 발언이다. 20대인 이숙연 후보자의 딸이 아버지 돈으로 한 화장품 연구개발(R&D) 기업의 비상장주식을 600만 원에 산 후 6년 뒤 아버지에게 3억 8500여만 원에 되팔아 63배의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돌반지 대신 주식을 사준다”고 해명했다가 사과를 했다.
곧바로 가족이 보유한 37억 원 상당의 비상장주식을 모두 기부하는 등 대처에 나섰지만 법원 안팎은 물론 국회 내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 후보자는 비서울대(고려대) 출신의 여성으로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데 이 때문에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 적극적으로 구제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산 논란 탓 홀로 보고서 채택 못 돼
국회 대법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3명의 대법관 후보자 중 2명의 인사청문보고서만 채택했다. 인사청문특위는 7월 26일 노경필(60·23기), 박영재(55·22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여야 합의로 채택했지만 이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는 채택을 보류했다.
그러자 이숙연 후보자는 채택 보류 하루 만에 가족이 보유한 비상장주식을 모두 기부키로 했다. 이 후보자와 남편 조형섭 제주반도체 대표는 27일 서울 서초구 청소년행복재단을 찾아 조 대표(1456주)와 딸 조 아무개 씨(400주)가 보유한 화장품 연구개발(R&D) 기업의 비상장 주식(17억 9700만 원 상당)을 기부했다. 조 대표는 26일에도 19억 원 상당의 A 사 주식 2000주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앙회와 제주 모금회에 기탁한 바 있다. 이틀에 걸쳐 37억 원어치 주식을 기부한 것이다.
2022년에는 이 후보자의 딸 조 씨가 아버지에게 구매 자금을 대부분 지원받아 7억 원대 서울 용산구 재개발지역 빌라를 갭투자 방식으로 매입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 남편인 조 대표의 친형이 한때 대표를 맡았던 금남고속의 비상장 주식을 딸과 아들이 각각 8세, 6세이던 2006년 취득한 뒤 지난해 처분해 수천만 원을 번 사실, 이 후보자 부부가 시세차익으로 수십억 원을 번 사실도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의원들의 질의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는 아니었다”며 “요즘 아이 돌 때 금반지가 아니라 주식을 사준다. 아이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고 저희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이 다 비난받아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다”고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후 “자녀들 이야기에 평정심을 잃었다”며 “세금을 다 내고 위법이 없다고 해도 고위공직 후보자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법원 내에서도 ‘좋지 못한 시선’ 확산
법원 안팎에서도 이 후보자를 향한 좋지 않은 시선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청문회를 보면서 자녀의 갭투자를 위해 증여를 한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며 “배우자의 투자 활동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 후보자도 본인 명의로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을 취득해 배당을 받았다는 사실에 ‘판사의 올바른 모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이 되고 싶은 명예욕도 있고, 금전적인 욕심도 놓칠 수 없다면 보통의 판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이 된다”며 “돌반지 대신 주식을 주는 세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강남 엘리트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얘기를 당연하게 해명이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고 지적했다.
여론도 부정적이다. 바른교육학부모전국연합이 여론조사 공정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에게 7월 29일과 30일 휴대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해 국민 3명 중 2명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론조사 결과 이숙연 대법관의 후보자 임명에 ‘반대한다’는 국민이 67.9%로 ‘찬성한다’는 18.2%, ‘잘 모르겠다’는 13.9%였다.
#대통령실과 민주당 기류 다를 수도
법조계에서는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실과 국회 제1당인 민주당의 기류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숙연 후보자는 다른 대법관 후보자들에 비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지난해 젠더법연구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 후보자는 젠더법 전문가로 꼽히는 신숙희 대법관만큼 젠더 이슈에서 뚜렷한 주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동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연구와 교육 활동, 법원 내 성인지 감수성 제고와 성평등 문화 정착에도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정희 여성 대법관 몫으로 지명된 이 후보자는 비서울대(고려대), 여성, 젠더법 전문가로 민주당에서 가장 선호하는 후보군이었는데 재산 증식 문제로 발목이 잡히면서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 오히려 이 후보자를 구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자가 진보 성향의 젠더법학회 회장을 맡았던 점을 거론하면서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입장인가?’라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동성애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신앙적인 부분에서 고민하는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진보 성향의 법원 내 단체로 꼽혔는데, 최근에는 젠더법연구회가 오히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며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부분에 대해서 여당도 향후 재판 판결을 우려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