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진 보수 인상·블록딜 이력 두고 “최대주주 가치 제고 몰두하나” 비난…“투자자들 저항력 높여야”
두산그룹이 최근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또 다른 계열사 두산밥캣 지분(46.11%)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 분할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신설회사는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된 두산밥캣은 상장을 폐지할 예정이다.
양 사 합병으로 두산로보틱스가 얻는 이득은 두산밥캣 배당금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실적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한 적이 거의 없다. 2015년 설립 이후 지난해 IPO(기업공개)까지 16차례 유상증자로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배당금으로 주당 1600원을 지급했는데, 이 기준으로 보면 인적 분할과 합병으로 두산로보틱스는 배당금으로만 약 740억 원을 해마다 확보할 수 있다. 두산밥캣 배당금은 IPO 이후에도 흑자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 두산로보틱스에 쏠쏠한 자금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 소식은 곧바로 여론의 비난을 초래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연 매출 1000억 원이 안 되는 데다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반면 두산밥캣의 연 매출은 약 9조 원, 영업이익은 약 1조 원에 달한다.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되면 모회사 매출보다 자회사의 영업이익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그룹의 발표에 대해 “모두 지배주주의 관점”이라며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 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 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었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 7월 24일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두산에너빌리티와의 분할‧합병, 두산밥캣과의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주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구조 개편과 관련한 배경, 주주가치에 대한 결정 내용,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보완하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는 이유는 두산그룹의 이러한 행보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적이 좋았던 지난해 두산그룹은 임원진 보수는 늘렸지만, 배당 정책에는 소극적이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총 84억 81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전년 대비 30% 오른 금액이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두산에너빌리티 회장)도 (주)두산에서 전년(19억 7700만 원) 대비 47% 증가한 총 29억 1400만 원을 받았다. 박 부회장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도 약 25억 8000만 원을 받아 두 기업에서 약 54억 9400만 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반면 (주)두산은 배당금을 올해 2000원으로, 3년 연속 동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우선주를 제외하면 7년째 배당을 하지 않고 있다. 두산밥캣은 배당금을 1350원에서 1600원으로 올렸지만 배당 성향은 오히려 21%에서 17.3%로 감소했다. 스캇성철박 두산밥캣 대표이사의 지난해 보수 인상률(약 31%)과 비교하면 더욱 아쉬워 보인다.
두산그룹은 1년 사이 두 번의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을 진행한 이력도 있다. 2022년 8월 (주)두산이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약 4.5%를, 2023년 6월에는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의 지분 약 5%를 블록딜로 처분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원전 수혜주로 주목받아 주가가 오르던 시기였고, 두산밥캣은 호실적을 바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두 기업의 1주당 처분 가격은 각 2만 50원과 5만 5200원이다. 당시 최고가에 근접한 가격에 블록딜을 진행했다. 블록딜 이후 주가는 급락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꾸준히 하락해 (주)두산의 1주당 처분 가격 대비 40% 하락했다. 두산밥캣은 발표 당일 주가가 약 8% 하락했다.
(주)두산은 올해 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수혜주 중 하나로 떠올라 지난 7월 12일 26만 3500원까지 주가가 올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원전 수혜주로 부각되면서 주가가 장중 2만 5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두산밥캣 주가도 지난 5월 6만 2300원까지 오르며 최근 3년간 신고가에 근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지배구조 개편 방안 발표 이후 이들 회사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주)두산 주가는 최고가 대비 약 35% 하락,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주가도 각각 약 24%, 약 35% 하락했다.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두산로보틱스 주가도 개편안 발표 시점 대비 약 34% 하락했다.
상황이 두산에 불리해지자 다가오는 주주총회와 주식매수청구권 규모에 관심이 쏠린다. 분할‧합병은 주총 특별결의 안건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수 3분의 1 이상 찬성해야 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30.67%에 불과해 주총 통과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두산밥캣도 최대주주인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율이 46%에 그친다.
비록 주총에서 통과돼도 주식매수청구권이 기다리고 있다.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에 반대하는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회사에 매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상한을 6000억 원, 5000억 원, 1조 5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매수청구 규모에 따라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두산의 지금과 같은 선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고 정부도 법적으로 잘못은 없으니 강하게 비판하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이런 행태에 저항해 최대주주가 일반 주주들의 눈치를 보게끔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