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국내 소송 승리, 현대차 해외 소송 진행…상표권 등 기업 무형자산 관리 목소리 높아
HD현대와 현대테크놀로지의 법적 다툼은 2020년 6월 시작됐다. HD현대는 당시 현대테크놀로지가 보유한 ‘물방울현대’ 상표권 등록을 무효화하기 위해 특허심판원에 등록취소심판을 청구했다. ‘물방울현대’는 영문 HYUNDAI의 H자에 물방울처럼 동그라미 3개가 디자인된 상표다. HD현대는 현대테크놀로지가 ‘물방울현대’ 상표를 3년 넘게 사용한 적 없어 상표권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대테크놀로지의 중앙처리장치(프로세서), 전자신호송신기, 비의료용 X-선방호장치 등 판매상품에 해당 상표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상표법에 따라 상표 소유자가 3년 이상 국내에서 등록상표를 사용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상표 등록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2022년 8월 특허심판원은 현대테크놀로지의 ‘물방울현대’ 상표가 현대테크놀로지에서 사용하던 ‘HYUNDAI’ 상표와 같은 상표라며, HD현대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HD현대는 특허심판원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특허법원은 올해 1월 ‘물방울현대’ 상표의 H와 ‘HYUNDAI’ 상표의 H가 엄연히 다르다며 HD현대 주장을 인정했다. 이로써 현대테크놀로지의 ‘물방울현대’ 상표의 국내 등록은 취소됐다.
양측의 법적 다툼은 비슷한 기간 또 있었다. 현대테크놀로지는 2020년 10월 HD현대를 상대로 ‘현대커넥트’ 상표등록무효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커넥트’ 상표등록을 무효로 본 특허청의 심결(행정기관의 심판에서 심리의 결정)을 뒤집겠다는 의도였다. ‘현대커넥트’는 HD현대그룹의 건설기계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에서 ‘종합관리 솔루션명’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 2019년 7월 국내의 한 네이밍 개발 회사에서 현대커넥트 BI(브랜드 로고)를 개발한 바 있다. 현대테크놀로지는 지난해 7월 특허법원에서 패소해 같은 달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기각되며 ‘현대커넥트’ 상표 등록도 무효가 됐다.
이로써 ‘현대’ 관련 상표권을 두고 현대가와 현대테크놀로지 간 법적 다툼이 끝났나 싶었지만, 취재 결과 해외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소송을 제기한 쪽은 HD현대가 아닌 현대차다. 미국 연방법원 기록에 따르면 현대차와 현대차 미국법인은 지난해 3월 현대테크놀로지를 상대로 상표등록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HYUNDAI가 붙은 현대테크놀로지의 전자기기가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테크놀로지 제품과 관련해선 현대차와 현대차 미국법인이 상표등록말소 소송과 상표사용금지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범현대가의 상표권 관리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 관련 상표권을 외국기업이 사용하기까지 범현대가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가에서 상표권 정리가 안 된 걸 일찍 파악했어야 하는데 놓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한글 ‘현대’, 영문 ‘HYUNDAI’, 한자 ‘現代’ 등 상표권은 HD현대와 현대차 등에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테크놀로지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판매 중인 전자기기 제품마다 ‘HYUNDAI’ 상표가 찍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해외 소송 결과가 나오지 않은 터라 상표 사용을 막을 방법이 없다.
‘HYUNDAI’ 상표권 분쟁 발발은 현대그룹 해체 이후 벌어졌다. 2000년 현대그룹이 해체한 뒤 회사가 찢어지면서 현대전자 디스플레이부문이 현대이미지퀘스트라는 회사로 분사했는데 IT사업, 바이오사업에 진출하면서 사명을 현대IBT, 현대바이오사이언스로 변경했다. 이후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2019년 현대테크놀로지에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전자표시판 △초음파응용탐지기 △디스켓 △외장형하드 디스크 등 전자제품 관련 사업권과 상표 등을 넘겼다. ‘일요신문i’가 입수한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현대테크놀로지 간 사업권 양도 문서에는 ‘Assignment of the entire interest and the goodwill’(지분 전부와 영업권 양도)와 함께 ‘HYUNDAI’ 상표도 넘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 특허청에 따르면 현대테크놀로지는 2020년 7월 22일 ‘HYUNDAI’로 신규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 HD현대가 국내에서 ‘물방울현대’ 상표권 등록 무효화를 위해 등록취소심판을 청구한 지 한 달 만의 일이다. 상표 등록 관련, ‘일요신문i’는 현대테크놀로지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HD현대 관계자는 “현대테크놀로지가 보유한 ‘HYUNDAI’ 상표를 현대차와 공동으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어떤 공동 대응을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범현대가가 ‘HYUNDAI’ 상표를 지키기 위해선 소송에서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토지 등 유형자산뿐 아니라 상표권과 같은 무형자산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 오늘날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무형자산을 꼭 챙겨야 한다”며 “현대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현대’ 글자가 붙으면 값어치가 달라진다. 이곳저곳에서 현대 상표를 사용하면 훗날 현대에서 신기술·제품을 수출할 때 비용, 기업 신뢰 등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표권은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며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브랜드 보호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테크놀로지 상표권 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인 결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