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 vs 여단장 맞고소 과정 기획공작 ‘광개토 사업’ 노출…“군 출신과 공작통 상호 업무 이해도 떨어져”
‘광개토 사업’이라는 기획공작 암호명은 정보사 내부 암투 과정서 노출됐다. 국군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여단장이 초유의 맞고소전에 돌입했다. 정보사 수뇌부 간 법리적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과정에서 사실상 군사 기밀로 볼 수 있는 민감한 정보들이 흘러나온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암호명은 공작의 콘셉트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업 명칭으로 사업의 방향을 예측해볼 수 있는데 ‘광개토 사업’의 경우엔 만주 지역, 중국 동북부에서 이뤄질 수 있는 대북공작이 주요 콘셉트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저 사업이 실제로 추진 예정인 사업이라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외부로 유출돼선 안 될 정보”라고 했다.
정보사 기획공작 프로젝트 ‘광개토 사업’이 대외적으로 공개된 이면엔 정보사 수뇌부끼리 펼친 별들의 전쟁이 있었다. 8월 6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정보사령관 A 소장과 정보사 여단장 B 준장이 서로를 맞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둘은 ‘광개토 사업’에 관여하는 민간단체가 정보사 안가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다퉜다고 한다.
A 소장은 민간단체의 안가 활용이 직권남용 및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B 준장은 이 민간단체가 ‘광개토 사업’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령관을 설득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A 소장은 B 준장이 상관을 모독하는 언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B 준장은 A 소장이 자신을 향해 결재판을 던졌다며 반발했다.
B 준장 고소장에 따르면 정보사는 영외 안가에 군사정보발전연구소뿐 아니라 첩보동지회, 통일융합전략연구소 등 여러 민간단체를 유치해 공작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둘 사이 미묘한 관계도 재조명되고 있다. A 소장은 육군사관학교 50기이고, B 준장은 육사 47기다. B 준장 입장에선 세 기수 후배가 자신의 직속상관 겸 지휘관인 상황이다. 미묘한 관계 속에 있는 두 장성급 인사가 안가 활용과 관련해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안가는 정보기관에서 활용하는 비밀기지 개념으로 영외 사무실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사는 군 조직에 속해있으면서 정보기관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포지션을 갖는다. 임무 수행을 목적으로 군부대 밖에 여러 안가를 둬 정보수집 및 공작활동 거점으로 활용한다.
정보사 수뇌부 갈등에 불을 지핀 민간단체는 사단법인 군사정보발전연구소로 파악됐다. 취재에 따르면 이 단체 구성원 중 다수가 ‘정보사 OB’들이었다. 정보사령관 출신들을 비롯한 예비역 정보사 고위급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전직 정보당국자는 “OB들이 정보사 안가를 활용하는 일은 종종 있어왔던 일”이라면서 “그러나 OB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비밀 사안”이라고 했다. 그는 “OB들이 안가를 활용하려면 현직들과 합의가 돼야 하는데, 결국 OB들과 현직들 모두 육사 선후배 관계 또는 군 선후배 관계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직자 입장에선 OB들의 안가 활용을 거절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OB들의 안가 활용을 나쁘게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경험이 풍부한 OB들이 민간인이 된 뒤 획득한 정보를 교류하는 장으로 안가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순기능도 없지 않다. 정보사 입장에서도 OB들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풍부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1980~1990년대 같은 경우엔 군 출신으로 사회에 새롭게 진출할 여건이 됐지만, 요즘은 군에서 전역한 OB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정보사 OB들이 민간단체를 형성해 안가를 활동 기반으로 삼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공작 일선에서 활동했던 전직 군 관계자는 “광개토 사업이 어떤 종류의 기획공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보사 OB들이 대거 포함된 민간단체와 함께 어떤 공작을 할 수 있을지는 미스터리한 부분”이라며 “해당 민간단체 면면을 살펴보면 ‘공작통’이라고 할 수 있는 휴민트 계열 인사가 거의 없고, 일반 정보를 다뤘던 고위급 인사들이 많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이미 고위급 군 관계자로 파악되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획공작이든, 그냥 공작이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통해 은밀하게 접근해 목표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철칙”이라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올 정도 예비역 정보사 인사들이 대거 포진된 민간단체가 정보사와 기획공작을 함께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블랙요원으로 활동했던 전직 정보당국 인사는 “일반적인 시민단체가 정보사와 접점을 가지고 안가를 활용할 수는 없다. 정보사 자체가 워낙 베일에 가려져 접점이 없기 때문”이라며 “결국 정보사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안가의 존재를 알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정보사를 거쳐 온 OB들뿐일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안가 활용과 관련해 수뇌부가 충돌한 이면엔 상호 간 업무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보사령관은 전형적인 군인 출신들이 많이 온다. 휴민트 일선에서 활동하던 ‘공작통’들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요원에 가까운 특징을 지닌다. 군 내부적으로 ‘공작통’들이 진급할 수 있는 최대치는 통상 정보사 여단장으로 본다. 군인 입장에서는 원칙과 방침에 따라 안가를 군인이 아닌 사람이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신분 은폐, 보안 유지 등에 초점이 맞춰진 요원 입장에서는 안가에 군인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 A 소장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B 준장은 공작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또 다른 전직 정보당국자는 “OB들이 안가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정보사 내부 차원에서 전관예우 또는 관례로 여겨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정보사 수뇌부 간 갈등이 빚어지며 기획공작 프로젝트명이 공개된 점이다.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결국 이번 갈등에서 정보사령관과 여단장이 시비를 가리려면 광개토 사업이 어떤 사업인지까지 소명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OB들의 존재 역시 비밀사항 중 하나일 것이다. 극도로 예민한 사안들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이슈가 됐는데, 국가 안보상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전직 정보사 공작원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한 전직 공작원은 “OB들이 군을 나왔으면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면서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후배들이 피해를 본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공작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정보사 내부적으로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면서 “정보사 특성상 모든 사실관계를 열거해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