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자본잠식 상태 불구, 중기유통센터 4월 ‘판로지원’ 파트너로 선정…중기부 “특혜 있을 수 없다”
‘티메프 사태’에 대한 긴급 현안 질의가 국회에서 이뤄졌다. 7월 30일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국회에 출석해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자금 400억 원이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위시를 인수하는 데 쓰였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다만 이 자금들은 한 달 내에 상환됐고, 이번 티메프 미정산 사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금융감독원 의뢰로 티메프 사태에 대한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티몬과 위메프 내부 자금이 큐텐그룹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에 활용됐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정부 책임론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024년 4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중소기업유통센터가 큐텐그룹과 손을 맞잡고 소상공인 해외쇼핑몰 입점 지원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소상공인 해외쇼핑몰 입점 지원사업 파트너로 큐텐을 선정했다. 중국발 직구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이커머스 소상공인들의 새로운 활로 개척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이에 따라 동남아 시장에서 존재감을 자랑하던 큐텐을 사업 파트너로 낙점했다.
큐텐은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손잡고 국내 소상공인들이 큐텐 싱가포르 인기 카테고리 K브랜드 상설관 ‘K-Mall’에 입점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 파트너십이 체결된 뒤 국가 예산이 큐텐으로 흘러들어갔다. 7월 29일 기준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큐텐으로 지급된 예산은 3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티몬은 5억 8100만 원, 위메프는 6억 3500만 원을 받았다.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유통센터는 큐텐에 총 114억 원을 지급할 예정이었다. 중소기업유통센터 지원으로 ‘K-Mall’에 입점한 소상공인 사업자는 2400여 개이고, 정산대금 규모는 40억 원가량이다.
문제 소지가 있는 부분은 판로지원 사업 선정 과정이다.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 자회사들이 자본잠식 상태였음에도, 높은 점수를 획득하며 판로지원 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 공공기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방치하다가 애꿎은 소상공인과 소비자만 피해를 봤다”면서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최근까지 문제 업체와 판로진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 것은 무능함을 넘어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업계에선 공공사업에 진출한 큐텐 행보를 두고 ‘정치적 뒷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혹이 나왔다고 한다. 한 대기업 대관 관계자는 “공공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면 대부분 ‘공정한 공모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 나오지만, 공모 절차 이전에 합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마쳐놓고 공모에 돌입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큐텐을 파트너사로 선정한 사업은 규모만 연 100억 원이 넘는다. 공공사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선 ‘신용 보증’ 의미를 지니는데, 정부에서 파트너로 선정한 기업이 1조 원대 미정산 사태에 직면했다. 큐텐 자회사들의 감사보고서만 봤어도 고개를 갸웃해야 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큐텐이 몰락하기 100일 전에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었다. 어떤 ‘관계’가 큐텐을 공공사업으로 이끌었는지가 밝혀지면 전혀 다른 국면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본다.”
한 정치권 관계자도 “과거 여러 사례들을 돌아보더라도 공공사업은 그 장벽이 상당히 높다”면서 “하다못해 서울역에 점포를 내려 해도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사업과 관련해 큐텐을 밀어주려 했던 움직임과 정황이 포착되고, 사건 파급력이 커진다면 정치권부터 행정부처, 산하 공공기관까지 ‘큐텐 살생부’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똥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도 튀었다. 7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오영주 중기부 장관을 향해 ‘티메프 사태’ 질의가 이어졌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3년 위메프, 2022년 티몬 감사보고서를 확인했다면 티메프 사태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 장관은 “여러 보고서를 면밀히 챙기지 못한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감사보고서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선 “장관직(을 맡기) 전이라 몰랐다”고 했다. 오 장관은 2023년 12월 4일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고, 12월 29일 중기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오 장관은 외교관 출신으로 중기부 장관에 임명됐다. 1964년생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제22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 차석대사, 강경화 외교부 장관 특별보좌관, 외교부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등 굵직한 이력을 거쳤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으로 위촉됐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엔 주 베트남 한국대사관 대사로 취임했다. 2023년 7월 외교부 제2차관으로 영전한 뒤 2023년 12월 중기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외교관 출신 중기부 장관을 파격 발탁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전문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부처를 이끌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를 강조했다. 오 장관이 베트남 내 중소기업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베트남 국빈 방문을 했을 당시 베트남 기업 관련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 것이 강한 인상을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 베트남 한국대사를 중기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과 관련해 중소기업 진흥 로드맵 방점이 동남아 진출에 찍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큐텐과 정부의 파트너십은 2020년경부터 논의돼 왔다”면서도 “오 장관을 발탁한 부분이 이런 파트너십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7월 30일 국회에서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오 장관을 향해 “2019년부터 구영배 큐텐 대표가 이끄는 자회사들을 둘러싼 자본잠식 문제가 감지됐는데 (중소기업유통센터 수행사 선정에)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오 장관은 “이커머스 사업에는 특혜가 있을 수 없다”면서 “외부 선정위원을 통해서 수행사를 선정하는 구조를 중소기업유통센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답했다.
중기부와 중소기업유통센터가 큐텐과 관련한 특혜 의혹을 부인하는 가운데, 이제 시선은 큐텐의 수장 구영배 대표에 쏠린다. 구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티메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구 대표 플랜은 티몬과 위메프를 정상화시킨 뒤 미정산 사태 피해를 책임지겠다는 취지였다. 그의 플랜은 현안질의 현장에서 설득력을 어필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구 대표는 “그룹이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 원인데 바로 이 부분(티메프 사태 해결)으로 다 투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면서 “큐텐 지분 38%를 갖고 있다.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고 밝혔다.
큐텐 자회사의 매각 추진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를 둘러싼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판매대금 유용 논란 중심에 있는 자회사 위시는 매각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운영하는 유통지원 포털사이트 ‘판판대로’는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큐텐 계열사 관련 사업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사업 신청 불가 채널은 큐텐, 티몬, 위메프, AK몰, 인터파크커머스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그동안 큐텐과 함께 진행한 협력사업 홍보자료 등을 삭제한 상태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누구? 'K커머스 대부' 무리한 벌크업 탈났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한국 이커머스계 대부로 불린다. 2003년 G마켓이 인터파크에서 분사하면서 법인 대표를 맡았다. G마켓을 성공적으로 키웠다. 2009년엔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했다. 구 대표는 ‘화려한 엑시트(투자회수)’를 완성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할 당시 내건 조건이 있었다. 구 대표가 향후 10년 동안 한국 내 이커머스 동종업계 창업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한국 시장 내 비경쟁 조항’이었다. 이베이 측은 구 대표가 한국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또 다른 플랫폼을 창업할 경우 G마켓을 인수하는 의미가 상당히 희석될 것으로 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 대표는 글로벌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G마켓을 매각하면서 수령한 천문학적 규모 현금을 싱가포르 현지 법인에 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법인이 바로 2024년 7월 일어난 ‘티메프 사태’ 중심에 있는 큐텐이다. 큐텐은 2010년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구영배 대표와 이베이의 공동 벤처 형식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큐텐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시장, 일본 시장 등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기업을 점차 성장시켜나갔다. 2021년 ‘한국 시장 내 비경쟁 조항’이 만료된 뒤 구영배 큐텐 대표는 공격적으로 한국 이커머스 기업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여전히 한국 시장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면서 “아시아 전체 시장을 통틀어 구매력과 인프라, 물류 시스템 등이 이커머스에 최적화돼 있는 시장이 한국이었기 때문에 비경쟁 조항이 만료되자마자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21년엔 G마켓을 구 대표로부터 인수한 이베이가 이베이코리아를 신세계그룹에 팔았다”면서 “비경쟁 조항이 만료됐을뿐 아니라, 더 이상 이베이와 경쟁할 상황이 아니게 됐고, 구 대표가 본격적으로 한국 이커머스 업계로 컴백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구 대표는 공격적으로 한국 유수의 이커머스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커머스 업계 초창기 쿠팡과 ‘소셜커머스 삼국지’ 주축으로 활동했던 티몬과 위메프를 연이어 인수했다.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했고, AK몰까지 인수했다. 2023년 하반기엔 SK스퀘어와 11번가를 공동경영하는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4년 큐텐은 한때 ‘아마존 대항마’로도 꼽히던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 방점을 찍었다. 이커머스 플랫폼 관계자는 “큐텐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목표는 동남아, 아시아 시장과 연계한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을 완성이었다. 쿠팡이 선두주자인 한국 시장에서 알리바바,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갖추며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려고 했던 전략을 펼친 것으로 본다. 두 번째 목표는 큐텐 자회사인 큐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이었다. 큐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해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받으며 실적을 강화하는 게 구 대표의 큰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을 향한 급속 행보는 오히려 기업의 몰락을 가속화한 패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 아마존 등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대항마를 꿈꾸던 큐텐은 무리한 몸집 불리기 부작용으로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여기다 검찰 등 사정당국이 큐텐그룹에서 사라진 미정산 대금 1조 원 미스터리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구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점차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