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공략 넘어 대세로…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키치! 티니핑’ 어린이 팬덤 전폭 지지
어른들에겐 이름도 낯선 국산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이 8월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유아용 애니메이션 정도로 여겼지만 정작 개봉 이후 성과는 눈부시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주연한 한국영화들을 가뿐하게 뛰어넘으면서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8월 15일에 손익분기점인 50만 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했다.
#‘사랑의 하츄핑’ 대체 뭐길래
‘하츄핑’은 2030세대에는 낯설지만, 어린이 관객에는 ‘유통령’으로 불리는 인기 캐릭터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키치! 티니핑’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중 하나로, ‘사랑의 하츄핑’은 TV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첫 극장판이다. 이번 영화는 2020년 첫 방송해 4년 동안 이어온 시리즈로 어린이 팬덤을 다진 이야기를 확장해 주인공 로미 공주와 하츄핑의 첫 만남과 이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사랑의 하츄핑’이 여름 빅시즌으로 꼽히는 8월에 개봉을 확정할 때만 해도 돌풍을 예상한 사람들은 드물었다. 개봉 직전인 7월 30일 조정석이 주연한 코미디 영화 ‘파일럿’이 공개됐고, 8월 7일에는 전도연과 임지연이 주연한 ‘리볼버’가 개봉을 확정 지은 상태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사랑의 하츄핑’은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 관객 등 가족 단위를 공략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를 뛰어넘고 있다.
개봉 당일 ‘리볼버’를 따돌리고 ‘파일럿’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하면서 이변을 알린 ‘사랑의 하츄핑’은 첫 주말인 9~11일 26만 4045명을 관객을 동원했다. 주말 스코어 역시 ‘파일럿’에 이은 2위다. 같은 기간 경쟁작들은 줄줄이 따돌렸고 개봉 2주차에도 관객 동원은 계속되면서 15일까지 54만 5886명을 기록했다. 근래 개봉작들이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꼽히는 손익분기점을 가뿐하게 넘기고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한 ‘리볼버’가 이날까지 23만 2243명을 동원한 성적과 비교하면 전도연을 가볍게 누른 하츄핑의 저력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왜 이렇게 인기일까
‘사랑의 하츄핑’의 기세가 처음 확인된 순간은 개봉을 앞두고 ‘암표 전쟁’이 벌어지면서다.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성우들의 무대인사가 이뤄지는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지역의 상영 회차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면서 웃돈이 붙은 암표가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불법으로 거래되자 배급사 쇼박스가 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거래에 동참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추가로 무대 인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히고서야 암표 거래는 잠잠해졌다.
인기 아이돌 스타나 막강한 팬덤을 보유한 극소수 배우들의 무대인사 티켓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들이 참여하는 무대인사 티켓이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기는 처음이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부모 관객들이 대거 예매 전쟁에 나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때부터 영화계에서도 ‘사랑의 하츄핑’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하츄핑’의 인기는 TV 시리즈로 방송하면서 형성한 어린이 팬덤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비롯된다. 영화가 내세운 주인공 하츄핑은 원작 ‘캐치! 티니핑’ 시리즈에 등장하는 새콤핑, 달콤핑, 행운핑, 무거핑 등 여러 요정 종족 중 하나다. 첫 극장판 영화로 주목받은 이번 작품에는 하츄핑을 전면에 내세워 TV 시리즈에서는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개봉 직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진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로미 공주와 하츄핑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어린이 관객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는 리뷰가 SNS로 확산하면서 ‘어린이 오열’ 작품으로 입소문을 얻었다. 한 명이 울면 옆에서도 우는 동반 효과로 극장 전체를 울음소리가 채웠다는 체험글까지 주목받았다.
어린이 관객을 주요 타깃으로 하지만 함께 극장을 찾아 작품을 보는 부모 세대의 눈높이까지 맞춰 스토리를 구성한 제작진의 의도는 작품의 인기를 높인 결정적인 원동력이다. ‘키치! 티니핑’부터 이번 ‘사랑의 하츄핑’까지 제작과 연출을 맡은 김수훈 총감독은 “가족물을 표방해 어린이 관객과 부모 모두 만족하는 작품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상영시간은 86분이다. 부모들이 함께 이야기를 보고 공감해 몰입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상영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스토리 역시 TV 시리즈보다 수위를 높였다. 로미가 하츄핑을 구하는 상황이 어린이 관객의 눈에는 다소 무섭게 그려진다는 반응이 있지만, 이런 구조도 계산된 설정이다. 어린이 관객은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기에 다소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게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무섭다’ ‘울었다’는 반응은 ‘사랑의 하츄핑’이 원작인 TV 시리즈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뮤지컬 형식으로 완성된 ‘사랑의 하츄핑’에 삽입된 노래들 역시 작품의 인기를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작품에 삽입된 발라드와 왈츠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는 세대를 불문하고 듣는 순간 공감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츄핑’이 가족 단위 관객을 공략하면서 부모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걸그룹 에스파의 윈터가 부른 주제곡 ‘처음 본 순간’ 역시 작품에 절묘하게 녹아들면서 화제를 더했다.
#‘등골핑’ 오명에도…향후 뮤지컬까지 공개
사실 어린 자녀들로 인해 ‘키치! 티니핑’과 ‘하츄핑’ 등을 익히 알고 있던 부모 세대 관객에게 이번 영화는 그리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그렇듯 단순히 TV 시리즈로 머물지 않고 관련한 각종 굿즈가 제작돼 판매되고 있어서다. 옷부터 인형, 식품까지 ‘티니핑’ 관련 상품은 어린이들의 ‘필수템’으로 통하면서 이를 구매해야 하는 부모들의 부담이 커질 대로 커졌다.
때문에 ‘하츄핑’은 부모의 지갑을 파산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파산핑’, 부모 등골 휘게 한다는 뜻의 ‘등골핑’으로도 불린다. 당분간 자녀를 위해 지갑은 더 열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극장판인 ‘사랑의 하츄핑’을 넘어 뮤지컬까지 나올 예정이다. 현재 제작이 진행 중으로 곧 관객을 찾아온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