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체납 독촉 ‘사고’ 치고 망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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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채권추심업체가 휴대폰 미납 요금을 추심하는 과정에서 전과 사실 등 개인정보를 여자친구에게 유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
지난 7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감동을 주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2010년 10월 전주교도소에 입감됐다 갓 출소한 박 아무개 씨가 집에 갈 차비가 없어 곤란한 사정에 빠졌는데 농협은행 직원인 김승은 씨가 박 씨의 사정을 듣고 선뜻 1만 2000원을 건네줘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다는 훈훈한 사연이었다.
박 씨의 글은 조회 수가 6만 7000건을 넘겼고 48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 씨 역시 김 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여유와 넉넉한 배려에 감동받았습니다”라며 “앞으로 어려운 사람 도우며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박 씨는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8월엔 지인의 소개로 A 씨도 만났다. 박 씨와 만남을 이어오던 A 씨는 아이를 갖게 됐고 둘은 결혼을 준비했다. 모든 일이 순탄히 흘러가는 듯 보였다.
A 씨 명의의 SK텔레콤 태블릿PC를 사용하던 박 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SK텔레콤 멤버십 카드를 만들었다. 그러던 지난 10월 A 씨는 F&U신용정보란 곳로부터 박 씨를 찾는 전화를 받게 된다.
F&U신용정보는 SK그룹 계열사로 SK텔레콤의 미납요금추심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은 박 씨의 기록을 보고 SK텔레콤이 F&U신용정보에 박 씨의 개인정보를 넘겨 A 씨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박 씨를 찾는 F&U신용정보 상담원에게 A 씨는 “박 씨는 나와 결혼할 사이이니 용건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상담원은 “박 씨가 2010년에 휴대폰 요금 40만 원을 체납했는데 납부하지 않으면 법적조치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A 씨에게 “박 씨가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말할 필요가 없는 박 씨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명백한 과실을 저지른 것이다.
박 씨의 전과 기록을 몰랐던 A 씨는 큰 충격에 빠졌다. 박 씨는 “범죄 사실 등 개인정보가 활용되고 있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것을 여자친구인 A 씨에게 발설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런 일이 벌어진 후에도 F&U신용정보의 독촉 전화는 계속됐다. 박 씨는 화가 났지만 참고 직접 전화를 받아 “지금은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구하고 사업을 시작하느라 여윳돈이 없으니 다음 달에 바로 납부하겠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는 문자와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이 날아왔다. A 씨는 결국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를 유산했다. A 씨의 부모님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박 씨는 파혼당했다.
결국 박 씨는 F&U신용정보에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사채도 이렇게까지 독촉하지 않는다”며 항의했다. 박 씨는 “상담사와 회사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 진심어린 사과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F&U신용정보 대구센터 책임자는 “정보통신망법 22조에 따라 개인정보를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지만 상담원의 실수로 박 씨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도의적으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필로 쓴 사과문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문은 2주가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박 씨의 항의가 계속되고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것처럼 보이자 F&U신용정보 대구센터 책임자는 “우리 회사에서는 고객들에게 돈을 줄 수 없다”며 “대신 상품권 1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박 씨는 “내가 바라는 건 진심어린 사과다”라며 “돈으로 보상을 하고 싶다면 하다못해 낙태를 할 때 든 병원비 58만 원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책임자는 “사정은 충분히 공감이 가고 미안하다”며 “개인적으로 줄 수 있는 돈이 30만 원인데 이것이라도 보내 주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책임자의 개인적인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그리고 30만 원은 그 다음날 바로 입금됐다.
그 후 SK텔레콤과 F&U신용정보로부터 사과가 없자 박 씨는 다시 SK텔레콤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SK텔레콤 측에서는 합의가 끝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박 씨가 받은 30만원을 합의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박 씨는 “30만 원이 합의금인 줄 알았다면 절대 안 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가 언론사에 연락을 하고 고소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F&U신용정보는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그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줬던 30만 원에 병원비 58만 원의 차액인 28만 원을 더 보내줄 테니 더 이상 이 사안에 대해 문제 삼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써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F&U신용정보는 “박 씨의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한 것은 상담원의 부정할 수 없는 실수이지만 합의나 보상에 관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해명했다.
박 씨가 접촉한 변호사 역시 “정보통신망 22조에 따라 개인정보가 활용된 것에 대해선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상담원이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함부로 발설한 것은 명백하니 민형사상의 처벌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SK텔레콤과 F&U신용정보에 대한 불만의 글들이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미납된 휴대폰 요금이 있으면 ‘1분 단위로 계속 전화를 해서 독촉을 한다’든지, ‘요금을 내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끊임없이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F&U신용정보의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금융감독원의 감시를 받는 합법적인 업체”라면서 “공영추심법을 준수해서 업무를 진행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