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편견 등에 두 번 울어…“먹고 살기 막막” 토로
▲ 하나원에서 한국에 대해 교육받는 탈북자 출신 교육생들. 사진공동취재단 |
김광혁 씨의 입북 이유에 대해 결핵을 앓고 있던 김 씨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지난 1월 탈북자 8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넘는 6 500여 명이 월평균 소득이 150만 원 이하라고 답했다. 심지어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 안 되는 이들도 2500여 명에 달했다. 기자와 만난 탈북자 A 씨(43)는 “남한에 와서 초기에 받는 정착금은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들에게 거의 쓰기 때문에 남는 돈이 없다”며 “나 같은 경우 브로커에게 쓴 돈이 1500만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재 탈북자 지원제도는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1인당 정착 기본금 600만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주고 주거지원금으로 1300만 원을 준다. 이밖에 지원은 취업과 관련한 지원금이 대부분이다. 취업을 준비할 경우 취업훈련장려금 120만 원, 취업에 성공할 경우 고용지원금으로 기업에 월급 절반을 지원해 주는 식이다. A 씨는 “취업훈련장려금은 직업훈련을 모두 이수해야 지급되기 때문에 사정이 생길 경우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훈련장려금은 직업훈련을 500시간 이수해야만 지급되어 혜택을 받는 탈북자 비율이 10명 당 2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2010년에 탈북한 A 씨는 북한에서 넉넉하게 사는 축에 속했다. A 씨가 탈북한 이유는 가정형편보다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발전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중국을 거쳐 어렵게 온 남한 사회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일단 취업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지게차 운전을 하는 업체에 가더라도 운전 실력과 관계없이 “말투가 왜 그러느냐”며 탈락시키기 일쑤였다. A 씨는 “탈북자 출신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며 “비정규직도 이렇게 취업하기 어려운데 정규직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취업이 어렵기는 대학을 졸업한 탈북자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을 졸업한 B 씨는 지금까지 30여 곳의 기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면접 때 받는 질문은 “거기(북한)보다 여기가 좋죠?”, “탈북자 출신인데 이곳을 지원한 이유는 무엇이냐” 등 실력과 관계없는 출신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B 씨는 “직무적성 시험은 거의 붙는데 면접에서는 항상 떨어지는 이유가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인 것 같다”면서 “출신보다는 실력에 더 비중을 두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취업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어도 탈북자를 보는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A 씨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군복을 만드는 한 업체였다. 아내와 함께 반나절이 걸리는 머나먼 길을 출퇴근했다. 하루 일당은 A 씨가 4만 5000원, 아내가 3만 5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을 하던 한국 청년들의 일당은 6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A 씨는 “일도 우리 부부가 오래하고 훨씬 많이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이라 무시하나 싶어 분통이 터져 일을 당장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후에 취업한 페인트칠 업체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방을 다니며 페인트를 칠하던 A 씨에게 사장은 자금 사정으로 임금을 못 준다며 버텼다. 임금을 달라고 따지는 A 씨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억울했던 A 씨는 변호사와 경찰서를 찾아다녔다. 경찰의 답변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근로감독관에 온갖 사정을 말하고 사건을 접수하니 한 달 후에 사장과 겨우 대면할 수 있었다. 당시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던 A 씨에게 사장은 40만 원을 들고 왔다. A 씨가 받아야 할 금액은 67만 원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친 A 씨는 40만 원을 받고 일을 마무리지었다.
A 씨는 현재 간암을 앓고 있다. 국정원에 있을 때 발병했던 B형 간염이 암으로 발전한 것이다. A 씨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병이 하나씩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은 있는 대로 하니 어쩔 수 없이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몸이 안 좋다보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치료비에 빚까지 진 A 씨의 가정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한 달 전부터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A 씨는 “탈북 여성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걸 창피하게만 생각했지 막상 내 일이 될 줄 알았겠느냐”며 “아내는 매일 울면서 다니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올해 들어 연이어 일어난 탈북자들의 재입북과 관련해서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0년에 탈북한 C 씨(여·22)는 “언론에 나왔던 대로 북한이 사주했다기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 같다”며 “기사를 보다가 ‘빨갱이는 돌아가라’, ‘배신자’ 같이 김광혁 씨 부부를 욕하는 댓글을 볼 때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탈북자 A 씨와 B 씨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 드는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향에 돌아가면 알고 지낸 이웃들이나 친척들이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A 씨는 “입북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이민가는 탈북자가 주변에 3명이나 된다”며 “캐나다로 이민 간 지인이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이민을 간 탈북자는 42명이지만 위장 망명이나 난민 신청을 통해 남한을 빠져나간 탈북자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숫자가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탈북자 시민단체 대표는 “탈북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하고 정부에서도 모든 탈북자를 세세히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탈북자들의 ‘탈출’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05년에 탈북한 D 씨(35)는 “어차피 북한에서 사나 남한에서 사나 어려운 것은 똑같으니 고향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탈북자가 많다”며 “입북을 선택하는 탈북자는 또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탈북자들은 이중에서도 자살률이 3배에 이른다”며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인턴기자 kulkin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