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암살 시도만 두 번째, 지지율 ‘안갯속’…경합주에선 해리스가 7곳 중 5곳 근소하게 앞서
이처럼 어느 한쪽으로 승부가 기울지 않는 경우에는 경합주에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현재 미 대선에서 경합주로 꼽히는 지역은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미시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7곳이다. 대선 때마다 승부처로 꼽히는 이들 지역의 민심은 올해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과연 오는 11월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2020년 바이든은 경합주 7곳 가운데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6곳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것도 네바다를 제외한 5곳은 2016년에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던 곳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득표율도 박빙이었다. 조지아, 애리조나, 위스콘신의 경우 각각 0.26%포인트(p), 0.3%p, 0.63%p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총 투표수 1억 5460만여 표 가운데 약 4만 3000여 표(전국 투표수의 0.03%)가 바이든의 승리를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올해 초만 해도 사뭇 달라진 듯했다. 요컨대 바이든이 후보에서 사퇴하기 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대부분의 격전지에서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가 다시 민주당 쪽으로 유리하게 바뀐 건 바이든이 물러나고 해리스가 후보로 낙점되면서였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그랬다. 바이든이 물러난 후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다시금 선거에 대한 열기가 치솟았다.
이와 관련, 마케트대 로스쿨의 찰스 프랭클린은 “민주당의 열기는 현재 공화당보다 약 9%p 앞서고 있으며, 이는 확실히 매우 높은 투표율로 이어질 듯하다”라고 점쳤다.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해리스 지지자의 72%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는 67%만이 열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지난 8월 열린 TV 대선 토론 후 민심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토론 전문가의 63%는 해리스가 이겼다고 답했으며, ‘워싱턴포스트’가 집계한 경합주 유권자들 역시 그랬다. 심지어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조차도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했다. ‘폭스뉴스’의 정치 분석가인 브릿 흄은 트럼프가 과거의 불만을 토로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전략은 “표를 얻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나쁜 밤을 보냈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보다 신중한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토론의 승리가 결정적일 수는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해리스가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유권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경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런 우려는 CNN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해리스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언급하거나,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은 탓에 토론 후 경제 분야와 관련된 신뢰도에서는 2%p 하락한 35%를 기록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한 경제 분야 신뢰도는 2%p 상승한 55%를 나타냈다.
이렇듯 아직은 어느 한쪽이 월등하게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접전을 벌일수록 경합주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두 후보는 토론회 직후 각각 경합주로 달려갔다. ‘새로운 전진(New Way Forward)’ 투어를 시작한 해리스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경합주 가운데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였다. 트럼프의 경우에는 2016년 대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지만, 4년 후에는 뼈아픈 패배를 맛봤던 애리조나와 미시간을 차례로 방문했다.
물론 경합주란 것은 매 선거 때마다 후보자와 정책에 따라, 그리고 인구 변화에 따라 바뀌곤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는 격전지로 간주됐던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는 지금은 공화당 지지 성향이 뚜렷하며, 2016년 트럼프가 승리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견고한 민주당 거점으로 여겨졌던 미시간은 지금은 피말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이 됐다. 그런가 하면 아칸소, 미주리,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는 지금은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지만, 2004년까지만 해도 격전지로 꼽혔다. 이는 인구 통계나 인구 패턴이 바뀌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올해 대선은 어떨까. 선거 전문가들이 꼽는 6개의 경합주는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19명), 위스콘신(10명), 미시간(15명), 조지아(16명), 애리조나(11명), 네바다(6명) 등이며, 이 밖에 해리스 선거 캠프가 꼽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노스캐롤라이나(16명)도 올해 선거에서는 경합주로 꼽히고 있다.
경합주 가운데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인구 1300만 명의 펜실베이니아다.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경합주로 꼽히고 있으며, 2020년 대선 때는 바이든이 8만 2000표 차이로 승리했다. 반면, 2016년 선거에서는 트럼프가 4만 5000표 미만의 표 차이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바 있다. 9월 초에 발표된 'CBS/유고브'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가 51% 대 45%로 6%p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4월 CBS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상대로 1%p, 7월 블룸버그뉴스/모닝 컨설팅 설문조사에서는 해리스를 상대로 4%p 앞섰다).
이처럼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데 대해 미시간대학의 니콜라스 발렌티노 교수는 “이제는 투표율 게임이다”라고 분석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이번 선거는 지난 두 번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10만 표 미만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펜실베이니아에는 백인, 대졸 이하 남성, 대도시 교외에 거주하는 여성 등 양당이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이 아주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 펜실베이니아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했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줄곧 민주당에만 표를 던져왔을 정도였다.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였다. 당시 깜짝 등장한 트럼프 후보의 포퓰리즘 메시지가 고졸의 백인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펜실베이니아 유권자 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큰 집단이며,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가 지역민들 사이에서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잡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민들에게 생활비 부담은 현재 가장 큰 골칫거리다. 시장 조사업체인 ‘데이타셈블리’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식료품 가격이 그 어느 주보다 빠르게 상승했으며,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이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6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조지아는 2020년 불과 1만 3000표 차이로 바이든에게 승리를 안겨준 초박빙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였던 지역인 만큼 당시 결과는 공화당에게는 충격을, 그리고 1992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승리한 민주당에게는 환호를 안겨주었다.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과 조지아주립대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18일(현지시각) 기준, 47% 대 44%로 트럼프가 3%p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바이든 후보 상대로는 51% 대 46%).
현재 조지아 인구의 3분의 1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이는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에 속한다. 이들이야말로 2020년 선거 판세를 뒤집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에 해리스 캠프는 현재 바이든 정부에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는 이 집단의 표심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블루월’ 가운데 하나인 미시간은 2020년 대선 당시 15만 표 차이로 바이든이 비교적 손쉽게 승리한 곳이었다. 퀴니팩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 해리스가 5%p의 지지율 차이로 앞서고 있다. 다만 2016년에는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던 트럼프가 극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었다.
미시간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특히 공략해야 할 유권자 집단은 아랍계 미국인이다. 아랍계 미국인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2020년에는 바이든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바이든 정부의 가자지구 전쟁 대응 방식에 가장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민심을 쉽사리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지난 2월 미시간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10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무소속’을 선택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트럼프는 미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해 중동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0년 바이든이 1만 표 차이로 진땀승을 거둔 애리조나는 어떨까. 사실 애리조나는 전통적으로 친공화당 성향이 뚜렷한 지역이다. 이런 까닭에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바이든이 승리한 것은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었다. CNN/SSRS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지지율면에서는 트럼프가 49% 대 44%로 5%p 앞서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변수는 남아있다. 유권자의 14%가 11월 이전에 마음이 바뀔 수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의 핵심은 이민자 문제다. 수백 마일에 걸쳐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까닭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경제, 낙태와 더불어 이민자 이슈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의 경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작전’을 실시하겠노라고 공언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지역’으로 꼽히는 위스콘신은 2020년 대선에서는 바이든을 선택했다. 불과 2만 1000표 차이의 승리였다. 이번 세기 들어 거의 모든 선거에서 이곳에서의 승패는 1%p 미만의 차이로 결정되었다. 사정이 이러니 해리스와 트럼프 모두 이곳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령 '어게인 2016년'을 외치고 있는 트럼프는 이곳을 가리켜 “정말 중요한 주”라고 언급하면서 “위스콘신에서 승리하면 전체 선거에서도 승리한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여름 공화당 전당대회를 밀워키에서 열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해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위스콘신이 민주당의 ‘블루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해리스는 시카고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지명됐을 당시 밀워키에서 유세를 하던 중 화상 연결로 등장하기도 했다.
퀴니팩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해리스는 48% 대 47%로 트럼프에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으며, CBS/유고브 여론조사에서는 51% 대 49%로 2%p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유권자들의 약 5%는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선거인단 수는 여섯 명으로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서부에서 승패를 가늠할 중요한 지역으로 꼽히는 네바다에서는 현재 해리스가 48% 대 47%로 1%p 차이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응답자의 무려 13%가 현재 선호하는 후보가 확실히 없다고 답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언제든 민심은 뒤집힐 수 있다.
네바다 유권자의 약 40%는 라틴계이며, 이 밖에 흑인, 아시아계, 태평양섬 주민들도 많다. 이런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경제 문제다. 네바다는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 경제가 강력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다른 지역보다 회복세가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현재 네바다의 실업률(5.1%)은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DC에 이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른 높은 생활비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된다면 국경 지역의 세금을 대폭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자 2020년에도 역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던 노스캐롤라이나는 현재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후부터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8월 말 ‘블룸버그/모닝 컨설턴트’ 여론조사에서는 49% 대 47%로 오히려 해리스가 트럼프를 2%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7월 트럼프가 2%p 차이로 앞서고 있던 것을 뒤집은 수치였다.
지난 7월 트럼프가 암살 시도 이후 처음으로 야외 유세 장소로 선택한 곳이 노스캐롤라이나라는 점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유세장에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이곳은 승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밤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인 로이 쿠퍼에게 연설 기회를 주면서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이처럼 박빙이 된 이유는 지난 10년간 인구 분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하이테크 및 생명과학산업이 발달하면서 고학력자 유색 인종들이 대거 유입됐고, 이런 변화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이 ‘보라색’ 주(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바뀌는 경합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