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진화 신기술은 효과 검증 필요…“국내 소방산업 영세해 경쟁력 끌어올려야”
정부는 지난 9월 6일 △전기차 배터리 관리 강화 △지하주차장 등 안전관리 강화 △화재 대응능력 강화 및 중장기적 대응 방안 마련 등을 골자로 하는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축 건물의 지하주차장에는 화재 발생 시 감지·작동이 빠른 습식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동파 우려가 있는 건물에는 성능이 개선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설치를 허용한다.
전국 모든 소방관서에 전기차 화재 진압장비를 확대 보급한다는 대응 방안도 마련했다. 이동식 수조를 297개에서 397대, 방사 장치를 1835개에서 2116개, 질식소화 덮개를 875개에서 1131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지하주차장 진입이 가능한 무인 소형소방차를 연내 개발해 내년부터 보급할 방침이다.
정부 발표 전후로 소방기자재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소방기구 제조 및 소방설비 시공업체 파라텍, 한글과컴퓨터의 방위·안전장비 자회사 한컴라이프케어, 지능형 열화상 솔루션 기업 LK삼양 등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화재에 대응한 신기술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기술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스프링클러만 잘 작동해도 전기차 화재를 초기에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기 때문에 소방 장비·시설에 대한 수요가 확연히 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위험성과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스프링클러만으로 전기차 화재 조기 진압이 가능하며, 소화 수조 등 새로운 소방 장비의 효과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요가 급격히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화재 관련된 신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소방산업의 빈약한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당국은 2023년 6월 ‘국가 소방산업 진흥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내수시장 활성화, 해외시장 진출 규모 확대, 신산업 육성이 골자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국내 매출액은 9165억 원, 수출액은 1375억 원씩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2022년 기준 국내 소방산업 무역 규모는 3억 3000만 달러(수출 1억 6400만 달러, 수입 1억 6600만 달러) 수준이다. 이는 전년 대비 14.8% 증가한 수치다.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 경쟁력은 높지 않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판단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가 낮고, 중국에 비해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이명호 소방청 소방산업계장은 지난 4월 개최된 ‘2024 국가 소방산업 진흥계획 설명회’에서 “소방기업의 90% 이상이 연 매출 50억 원 미만인 영세기업이기 때문에 연구개발과 판로 확대 등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열악한 소방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 발표한 2023 소방산업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연구개발을 진행하지 않은 기업 비율은 89.8%에 달했다. 해외 진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기업 비율은 1.6%에 그쳤다. 방염용품 제조업과 소방제조업 기업체를 대상으로 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 인증을 취득한 업체 비율은 1.1%(방염업 0.2%, 소방제조업 1.9%)인 것으로 밝혀졌다.
함승희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소방 신기술은 연구 단계이기 때문에 산업 발전에 기여할 정도로 성숙도가 오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소방업계 중 미국 소재 세계 최대 규모 재해보험사 FM글로벌의 FM인증이나 미국 공식 인증기관 UL의 UL인증 등 해외 인증을 받은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