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시청 처벌 규정 만들었지만 ‘플랫폼 규제 강화’ 필요성 제기…“학교 현장 AI 윤리교육 해야”
“전 남자친구에게 딥페이크 사진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변 여자들의 딥페이크 사진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헤어졌어요.”
온라인상에 딥페이크 피해를 입었다는 글이 쏟아져 나온다. 고소를 진행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가해자가 미성년자인데 처벌이 가능한지 등을 묻는 내용도 많다.
2019년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생겼다. 성착취물 등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 확대‧처벌 수위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2021년 12월부터 시행됐다. 허위영상물을 성범죄로 규정한 ‘딥페이크 방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도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발생했고, 기술 발전과 함께 딥페이크 범죄는 오히려 더 쉽고 교묘해졌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규정이 약하다는 점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처벌법은 유포 등을 할 목적으로 피해자 동의 없는 영상촬영물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거나, 피해자 의사에 반해 유포 등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어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기준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고은 법률사무소 진서 대표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실제 촬영물과 비교했을 때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처벌 관련 규정이 약하다”며 “실제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형을 하는 양형사유도 발견이 되고 있는데 허위 영상물이라는 특수성이 근거가 돼 감형하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반포 목적’이 없었다면 타인의 사진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가공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영상을 단순히 소지하고 시청한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닌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뒤늦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지난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딥페이크 성착취물인지 알면서도 이를 소지‧구입‧저장‧시청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성착취물을 이용한 아동‧청소년 대상 협박‧강요 범죄의 처벌 규정을 신설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도 이날 법사위를 통과했다. 다만 이번에도 성폭력처벌법 14조 2항의 ‘반포 목적’으로 한정한 내용은 삭제되지 않았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플랫폼을 사업자의 자율규제에만 맡길 게 아니라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국가가 나서 플랫폼 기업을 규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지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연 ‘딥페이크 성범죄영상물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서비스법’(DSA), 영국은 ‘온라인책임법’으로 이미 온라인 플랫폼에도 불법 콘텐츠 유통 관련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주 교수가 언급한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해외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 신고 시스템 구축 및 신속한 조치 의무를 부여했다. 테러 선동, 아동 성 착취물 같은 심각한 불법 콘텐츠에 대한 즉각적인 삭제 의무도 부과했다. 규정을 위반하면 연간 글로벌 매출의 최대 6%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문혜정 법률사무소 정 변호사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생산해 유통하고 이를 구매해 시청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플랫폼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플랫폼 자체를 규제하자는 것이 아닌 플랫폼에서 양산되는 성착취물 범죄를 규제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을 통한 강력한 처벌 등의 사후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인공지능(AI)‧디지털 시대에 AI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이를 윤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이 선행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민아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공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학교 내 성교육 예산은 삭감된 상황”이라며 “AI교과서 등 학교 내 디지털 활용은 강화되고 있으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나 성교육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문제다. 학생뿐 아니라 학교 현장의 모든 사람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