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대 논란’ 모든 이슈 빨아들여, 여권 내부 불협화음 재확인…친윤계 또다시 비대위 카드 꺼내나
만찬이 끝난 뒤 친윤계는 한 대표를 향한 공세의 수위를 더욱 높이는 듯한 스탠스다. 당내 세력기반이 없는 한 대표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기를 채운 당대표가 존재하지 않은 채 수년간 비대위 체제를 반복해온 국민의힘이 이번 지도부에서도 똑같은 경로를 탈 수 있다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었다.
#블랙홀 된 ‘독대 논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남이 9월 24일로 확정되자 여권에선 ‘원팀’을 통해 국정의 새 돌파구를 마련해야한다는 기대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 대표 측에서 대통령 독대를 요청했다는 말이 나오자 그 속내 및 과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친윤 일각에선 만찬을 취소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불거졌다.
친윤계는 한 대표 측이 독대 요청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을 두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한 대표가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면서 자기 정치에 나섰다는 것인데, 만찬을 앞두고 부적절했다며 들끓었다.
대표적 친윤계 김기현 전 대표는 “대통령의 ‘역대급’ 체코 세일즈 순방 효과를 극대화하기는커녕 내부 문제로 스스로 덮어버리는 여당의 현주소를 직시해야 한다”며 “여당은 윤석열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며, 차기 대권을 위한 내부 분열은 용인될 수 없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쓸데없는 독대 논란을 만들어 빛나는 국정 성과까지 덮어버리고 있다는 질타였다.
권영세 의원도 9월 24일 YTN라디오 배승희의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독대 얘기를 나오게 한 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꼬집었다. 권 의원은 또 “대통령께서 체코 방문하고 와서 체코에서 원전 수주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성과도 있고 얘깃거리들이 많지 않나. 그건 어디로 다 없어져버리고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의 견해 차이, 갈등 이런 부분만 부각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한 대표에 대해 줄곧 각을 세워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9월 23일 페이스북에서 “독대는 그렇게 떠벌리고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독대가 아니라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하다”고 한 대표를 직격했다. 그는 또 “당 장악력이 있어야 믿고 독대하지 당 장악력도 없으면서 독대해서 주가나 올리려고 하는 시도는 측은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전 청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한 대표를 겨냥해 “여러 종류의 정치인들을 봤지만, 저렇게 얄팍하게 언론 플레이로 자기 정치하는 사람은 정말 처음 본다”고 쏘아붙였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독대 신청이 언론을 통해 먼저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을 압박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한 정무라인 관계자는 “정말 독대를 원했다면 대통령실에 미리 타진하고, 조율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도 언론을 보고 알았다”면서 “정말 독대를 원한 것인지, 아니면 보여주기식이었는지 한 대표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독대 요청이 뭐가 나쁘냐는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친윤계 주장에 적극 반박했다. 그는 9월 2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당 대표가 대통령 독대 요청을 한 게 보도되면 안 되는 사실인가. 그게 특별히 (대통령에 대한) 흠집내기나 모욕주기로 느껴지나”라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은 9월 24일 독대를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고 90분간의 합동 만찬으로 여권 지도부 회동은 끝이 났다. 그러나 독대를 주장해온 한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대표는 만찬 직후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재요청했다. 한 대표는 만찬 다음날일 9월 25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서도 독대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독대를 또다시 요청한 데 대해 대통령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만찬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직접 독대를 요청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하지 않고 또다시 간접적으로 얘기한 뒤 언론에 알리는 식의 행동을 계속 보이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9월 24일 만찬에 동석했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한동훈 대표께서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발언을 하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한 대표 스스로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본다”면서 “(독대 요청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짐작이 가고, 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닫고 있다는 비판 소지를 공개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자꾸 어려운 국면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라고 한 대표를 비판했다.
#점점 멀어지는 윤과 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라면서 한 대표를 끔찍이 챙겼던 윤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독대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이제는 둘의 관계가 더 이상 돌리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는 게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 친윤 핵심 인사는 “이제 한 대표는 ‘친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전당대회 과정부터 지금까지 한 대표의 언행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친윤 의원들이 상당히 많다”고 귀띔했다.
정말 친한 관계라면 격식이 사라지고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아야 하지만 윤 대통령은 9월 24일 만찬에서 한 대표를 깍듯이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른바 ‘결정적 장면’은 만들어주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분수정원으로 초청해 약 90분간 만찬을 함께하면서도 일행 중 한 명으로 대했을 뿐 예전의 살가운 관계는 보여주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만찬장에서 술 대신 오미자차로 건배했다. 윤 대통령이 술을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배려해 만찬주 대신 오미자차를 준비하게 했다고 한다. 만찬장에 참석자들이 모두 착석한 이후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메뉴를 소개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 대표를 가장 예우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만찬이 끝날 무렵 윤 대통령은 “커피 한 잔씩 하자”며 “우리 한 대표는 뭐 드실래요?”라고 묻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아이스라테를 주문하자 한 대표는 “대통령님 감기 기운 있으신데 차가운 것 드셔도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고, 윤 대통령은 웃으며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친윤계 인사들은 윤 대통령이 더 이상 한 대표를 애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과 오래 알고 지낸 한 법조인은 “공식석상에서 한 대표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자기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한 대표도 과거 윤 대통령이 대하는 것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독대가 이뤄지지 않았고 독대 재요청까지 한 상황에서 한 대표는 일단 계속적 강공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낮은 모습을 보이며 상황 관리를 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9월 25일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만찬의 성과는 저녁을 먹은 것이다. 소통의 과정으로 길게 봐주면 어떨까 싶다”라며 “현안 관련 이야기가 나올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독대 요청을 둘러싼 당정 갈등 우려에 대해선 “정치는 민생을 위해 대화하고 좋은 해답을 찾는 것이고, 그 과정”이라며 “그렇게 해석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어제 독대 요청 이후 (대통령실의) 응답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조금 기다려보시죠”라며 “대통령실에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으려는 생각은 아마 저랑 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실이 대화와 소통에 인색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보수 지지층에서는 한 대표가 불화를 자꾸만 만들어낸다는 비판이 주류”라며 “한 대표가 독대 신청을 다시 걸어놓고 한발 물러나 여론 동향을 살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친한계로 꼽히는 한 의원은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하는 걸 두고 왜 이리 색안경을 끼고 보는지 모르겠다. 한 대표는 과거 검사 후배가 아닌, 집권당 대표다. 지금 야당으로부터 강하게 공격받고 있는 윤 대통령이 여당의 대표를 그렇게까지 낮춰보면 어떡하느냐”면서 “한 대표에게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판하는데, 정치인이 그럼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여당, 또 비대위 갈까
친윤 진영에서는 한 대표가 해결사가 아닌, 갈등 조성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불안 심리가 크다. 물밑에서 소리 없이 해결해나갈 수 있는 것도 일단 외부로 발설한 뒤 시끄럽게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여당 대표의 행동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정치인은 담판의 대가여야 하고 고도의 물밑 협상술을 통해 세력을 만들어내면서 체급을 키워간다”며 “한동훈 대표는 이런 훈련 과정 없이 정당의 지도부로 들어오다 보니 이런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고 그냥 소리만 지르는 형국”이라고 아쉬워했다. 한 대표의 정치 경력 부족이 최근 나타난 일련의 현상들과 맞닿아 있다는 취지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연전연패하던 현재 여당은 21대 총선 참패 직후인 2020년 9월 간판(옛 당명 미래통합당)을 국민의힘으로 바꾼 이래 지도부가 툭하면 나가고 비대위 체제로 꾸려졌다. 정치판은 관성이 무섭게 작용하는 곳인데, 최근 윤·한 갈등이 계속되면서 이 그림자가 또다시 여당을 휘감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불명예스러운 의혹이 제기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뒤 당을 아예 떠났다. 이 대표는 그래도 1년 넘게 재임했지만 그 뒤의 김기현 대표는 정치 경험이 많은 다선 의원인데도 불구, 불과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9월 24일 만찬 전 친윤계에선 공공연히 비대위 체제가 언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알려진 직후다. 한 대표를 이준석 전 대표와 비교하면서 ‘해당행위’가 계속돼 당을 어려움에 빠트리면 실력행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들을 친윤 핵심 의원들이 주고받았다고 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없으면 여당이 아닌데 정치 경험이 없는 한 대표는 이러한 기본적 사실도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대통령실과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다”며 “이 정부의 실패는 바로 한 대표의 암울한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