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지주·팬오션 실적 하락 속 인수 자금 조달 ‘물음표’…하림 “양사의 시너지로 해운업 불황 타개”
#세부 조건 협상 남아
지난 12월 18일 HMM 채권단인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HMM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팬오션(하림그룹)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세부 조건에 대한 논의를 거쳐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후 기업결합심사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거래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하림그룹은 채권단이 보유한 HMM 지분 57.9%를 약 6조 4000억 원에 인수한다. 팬오션은 최대 3조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팬오션 지분 54.72%를 보유한 하림지주도 증자에 참여할 전망이다. 또 하림그룹은 2조~3조 원가량의 인수금융을 조달하고 JKL파트너스가 5000억~7000억 원가량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팬오션의 현금성 자산과 선박유동화, 영구채 발행 등의 방법도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하림그룹은 본협상 때 주주 간 계약 수정 제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은 수정 제안을 통해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1조 6800억 원 영구채 전환 3년 유예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가능 △산은과 해진공의 사외이사 지명권 축소 △HMM 자사주 매입 가능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연합뉴스를 통해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는 말 그대로 ‘마크업(수정 제안)’ 조항에 불과하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나면 마크업에 대해 협의를 시작한다”며 “협상을 해서 받아주면 되는 것이나 매각 측이 안 받아줄 여지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연구원은 “아직 계약서가 날인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주주 간 계약 내용은 계속 협의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림그룹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협상에 이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산은과 해진공은 본협상 때 하림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협상이기 때문에 매각 측의 협상력이 세면 인수자 측의 마크업(수정제안)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림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은 하림도 수정 제안 요청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세부 조건 협의가 안 돼서 이제 와서 딜이 깨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 산은은 매각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아와서 되도록 매각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해진공 관계자는 “(세부 조건 등에 대해서는) 인수자 측과 얘기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계약 진행 중인 부분이라 답변을 구체적으로 드리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수정 제안 내용이 있었는지 등과 관련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했다.
#인수 자금은 충분한가
하림그룹은 HMM을 글로벌 5위 컨테이너선사로 키워낸다는 계획이다. HMM은 현재 컨테이너선 105척을 운영하고 있다.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8위 컨테이너선사다. 팬오션은 국내 1위 벌크선사다. 올해 상반기 기준 199척의 벌크선을 운영하고 있다.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으로 따지면 당장 순위 변동은 없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유류비 등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글로벌 화주 네트워크를 공유하며 영업 능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기호 HMM 육상노조위원장은 “시가총액이 2조 원에 불과한 팬오션이 3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지분율대로라면 하림지주는 1조 6000억 원을 조달해야 한다. 결국 하림지주 관련 계열사 자산을 매각하든지 차입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러면 그룹 전체가 흔들린다. 인수금융 규모도 상당하다”며 “국민 세금으로 일으킨 회사를 빚더미로 인수하겠다는 계획은 정상이 아니다. 인수 계획에 대한 근거를 밝히고 적절성을 검증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단체행동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또 하림그룹의 영구채 전환 유예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림은 인수 후 3년간 최대 2850억 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배당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HMM에는 10조 원가량의 현금 유보금이 있다. 하지만 하림그룹이 HMM 유보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HMM 육상노조는 유보금을 하림그룹이 인수에 따른 손실을 충당하는 데 쓰면 안 된다는 내용을 주주 간 계약에 명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하림지주나 팬오션 상황도 여의치가 않다. 하림지주의 올해 1~3분기 매출은 9조 1989억 원, 영업이익은 523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10조 4253억 원, 영업이익 8081억 원) 대비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35% 줄었다. 올해 1~3분기 팬오션도 3조 3328억 원, 영업이익 317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매출 4조 9996억 원, 영업이익 6324억 원) 대비 매출은 33%, 영업이익은 50% 줄었다.
#잘 운영할 수 있을까
특히 하림그룹이 HMM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잘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찍힌다. 전준우 성결대 물류학과 교수는 “글로벌 해운업체인 머스크나 MSC는 종합 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육상 물류 기업들도 인수하고 있다. 해운시장은 워낙 변동성이 심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며 “결국 장기적인 해운업 불황을 견디려면 자본이 있어야만 버틸 수 있다. 또 HMM은 글로벌 선사들에 비해 선대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컨테이너 선대 확충과 함께 친환경 대응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해운 경기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 해운·조선 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내년 컨테이너선 공급은 올해보다 8.2% 늘어난다. 하지만 수요 증가율은 1.4%에 그친다. 최근 컨테이너 운임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1000선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초 이 지표는 5000을 넘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HMM은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일본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ONE)만큼 성장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제조 수출국이면서 우리나라와 산업 특성이 비슷하게 형성돼 있다. 현금 능력이나 해운 역량에서 이들 회사와의 차이를 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하림그룹 입장에선 10년 이상의 장기전에 나서야 한다. 경쟁 선사들과 비교해 차별적으로 잘해야 하는데 HMM이 경쟁그룹 중에서는 사이즈가 작다. 갭을 줄이는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지는 명확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 측은 인수 자금 계획은 충실히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하림지주는 입장문을 통해 “HMM과 팬오션은 컨테이너-벌크-특수선으로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양사가 쌓아온 시장수급 및 가격변동에 대한 대응력이라면 어떠한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황도 충분히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