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일가 영풍과 손잡은 MBK 공개 매수 시도…최씨 일가의 고려아연 더 높은 가격에 자사주 매입
고려아연의 경영권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당초 경영권 다툼은 동업관계였던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사이에서 벌어졌다.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에 영향력이 있는 장씨는 2대주주 그룹인 최씨 측에 경영을 맡겨왔다. 양측의 갈등 조짐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을 잡으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고려아연은 최근 몇 년 새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교환하는 방식으로 한화·현대차 등 투자자를 유치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렇게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한 투자자들을 최씨 일가의 우호지분으로 분류했다. 최씨 일가의 지분율(우호지분 포함)이 장씨 일가의 그것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왔다.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자 장씨 일가는 최씨 일가와 결별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사모펀드를 활용한 M&A(기업인수합병) 경험이 풍부한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연합 체제를 구축했다.
MBK는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공개매수하기로 했다. 주당 75만 원에 144만 5036~302만 4881주를 매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MBK는 6.98~14.61%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주당 공개 매수가는 당초 발표한 66만 원에서 올린 것이다. MBK·영풍 연합의 공개매수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공개 매수를 통해 맞불을 놓았다. MBK·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지난 2일 이를 기각했다.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고려아연은 MBK 측보다 높은 공개 매수가를 제시하며 행동에 나섰다. 주당 83만 원으로, 이는 MBK·영풍이 제시한 공개 매수가보다 8만 원 높은 가격이다. 투입 자금만 2조 7000억 원 규모인데, 고려아연은 단기 차입을 통해 공개 매수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투자업계에서 차입을 하면서까지 너무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매입하면 배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고려아연은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MBK·영풍 연합을 와해하려고 고평가 논란이 나올 만큼 높은 공개 매수가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베인캐피탈도 공동 매수자로 참여해 4300억 원 규모의 고려아연 자사주를 매수하기로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고려아연은 총 3조 1000억 원 수준의 자사주 공개 매입을 위한 자금을 확보했다.
MBK 측은 오는 4일까지 청약을 받고 있는데 만약 공개 매수 청약 주식 수가 144만 5036주 이상이 안 되면 공개 매수는 무산된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계획 발표로 MBK 측은 공개 매수 성립을 위한 최소 물량을 채우기가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당 83만 원에 매각할 수 있는 주식을 75만 원에 매각할 주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MBK 측 공개매수가 무산되면 MBK·영풍 연합이 흔들릴 수 있다.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것은 MBK 측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MBK 측은 공개매수를 추진하는 한편 장씨 측이 가지고 있던 고려아연 지분을 상당 부분 넘겨받는 경영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MBK·영풍 연합이 탄생한 배경이다.
계약 내용을 살펴보면 MBK는 장형진 영풍 회장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3.49%)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25.4%) 가운데 ‘50%+1주’를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받았다. 콜옵션을 사용하려면 MBK가 추진 중인 공개 매수가 완료되거나 고려아연 이사회에 양측이 지명한 이사를 전체 이사 가운데 과반을 합류시킨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사회의 지지 없이 적대적 M&A를 하기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개 매수가 무산되면 자연스럽게 MBK·영풍 연합의 과반 이사 진입은 기약할 수 없다. MBK·영풍 연합의 계약 조건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MBK·영풍 연합은 이 때문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에 대해 배임이라며 다시 한 번 법원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의 이사진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고가에 매입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법원이 MBK·영풍 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고가에 매수했다는 점을 입증하려면 기준이 되는 주당 실제 가치를 산출해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최씨 일가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최씨 일가 지분은 현재 15.64%가량이다. 고려아연이 예정대로 자사주 공개 매수 후 소각을 마무리하면 320만 주의 유통주식 물량이 감소하는데, 그러면 최씨 일가 지분율은 18.5%까지 오른다. 문제는 경영권 경쟁 관계에 있는 장씨 일가 측 지분율도 기존 33.13%에서 39.2%로 오른다는 것이다. 다만 최씨 일가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현대차 등의 지분율도 같이 오르기 때문에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