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도운 지인들 행적도 수상…보이스 피싱·자금세탁 등 조직범죄 가능성 염두에 두고 수사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부유층 도련님도 아니었다. 사고를 낸 마세라티는 서울 소재 법인 명의 등록 차량이었다. 지인에게 마세라티 차량을 빌려 타고 다니다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김 아무개 씨(32)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씨는 9월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에서 입국한 뒤 치과 치료 등을 위해 서울에 머물다 21일 늦은 오후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 도착해 지인에게 마세라티 차량을 건네받은 김 씨는 지인 A 씨(32), B 씨(30) 등과 함께 24일 새벽 2시부터 1시간가량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후 광주 북구 신안동 노래방으로 이동했는데 일행 A 씨는 벤츠 승용차를, 김 씨는 마세라티 승용차를 운전했는데 일행 B 씨가 동승했다.
오전 3시 11분께 김 씨가 운전하던 마세라티 승용차가 광주 서구 화정동 한 도로에서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23)가 크게 다쳤고, 뒷좌석에 탄 운전자의 연인(28)은 사망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A 씨가 급히 현장으로 돌아와 벤츠 승용차에 김 씨와 B 씨를 태워 사고 현장을 떠났다. 사고 수습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였다. 먼저 상무지구 호텔에 도착해 김 씨 짐을 챙긴 이들은 대전으로 이동했다. 김 씨는 대전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오전에 출발하는 9시 30분 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급히 움직였지만 김 씨는 스스로 항공권을 취소했다. 김 씨는 다시 태국행 항공권을 구입해 이날 오후에 다시 인천국제공항을 찾았지만 또 다시 취소했다. 이미 자신에게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졌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국행을 포기한 김 씨는 24일 오후 서울로 이동해 고교 동창인 C 씨(32)를 만난다. C 씨는 김 씨가 부탁한 대포폰까지 제공하며 도피를 도왔다. 이후 서울에서 모텔 등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 씨는 9월 26일 오후 9시 50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도로에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동행 중이던 C 씨도 함께 체포됐다.
경찰은 김 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C 씨에게는 범인도피 혐의를 적용해 구속 입건했고 당일 함께 술을 마신 뒤 도주를 도운 A 씨와 B 씨도 범인도피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상한 점은 김 씨와 도피를 도운 지인의 행보다. 9월 30일 ‘뺑소니 사망사고 마세라티 운전자 검거’ 관련 브리핑을 가진 광주 서부경찰서는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 사건과는 별개로 보이스피싱·자금 세탁 범죄 조직 연루 의혹 등 범죄 가능성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김 씨의 국내 주소지는 광주의 한 행정복지센터였다. 경찰 확인 결과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거주인의 거주 사실을 장기간 확인하지 못하면 거주불명자로 등록한다. 거주불명자는 행정상 관리 주소가 동 행정복지센터가 된다. 김 씨가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있었다는 의미다. 추가로 김 씨가 과거 주민등록이 말소돼 예명을 쓰며 신분을 숨긴 사실도 파악됐다.
잦은 해외 장기 체류도 눈길을 끈다. 출입국 기록을 보면 김 씨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태국과 캄보디아 등에 네 차례 방문해 장기체류했다. 앞선 세차례는 2~3개월가량 장기 체류했고, 최근에는 9개월 동안 태국에 체류했다. 김 씨는 사건 발생 3일 전인 9월 19일 태국에서 한국에 입국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태국 방문에 대해 “여행사 관련 일 때문에 태국을 방문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태국 등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데다 급여지급 내역 등도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자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밝혔다.
김 씨의 도주를 도운 C 씨와 A 씨, B씨 등도 모두 ‘무직’이라고 주장했다. 벤츠와 마세라티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무직자인 셈이다. 그런데 지인들 가운데 일부가 과거 전화금융사기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전력이 확인됐다. 또 지인들도 김 씨처럼 태국과 캄보디아 등을 수시로 오간 출입국 기록도 확인됐다. 이들이 수차례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된 전력도 확인됐는데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선 휴대전화가 수사의 실마리가 되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경찰이 압수한 김 씨의 휴대폰 2대 모두 아이폰이었다. 김 씨는 아이폰 비밀번호를 경찰에 알려주지 않고 있다. 역시 구속된 C 씨에게서 압수한 휴대전화는 유심이 없는 자급제 단말기였다. 이에 경찰이 원래 쓰던 휴대전화의 행방을 물었지만 C 씨는 “버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김 씨에게 마세라티를 빌려준 최 아무개 씨(34)는 이미 태국으로 출국했다. 최 씨는 9월 21일 오후 광주에서 김 씨를 만나 마세라티를 빌려줬다. 해당 마세라티는 서울 소재 법인 명의로 등록된 차량인데 최 씨가 과거 이 차량의 개인 보험자였다. 최 씨는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가 벌어진 24일 오후 9시 태국으로 출국했다. 이날 김 씨는 두 번이나 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가 출국을 포기했지만 최 씨는 무난히 출국했다. 경찰이 김 씨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명령을 내린 것은 25일 저녁으로 알려졌다. 자칫 김 씨가 출국을 강행했다면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져들었을 수 있다.
최 씨가 왜 서울 소재 법인 명의로 등록된 마세라티의 과거 개인 보험자였으며, 왜 이를 자신이 사용하다 김 씨에게 빌려줬는지 등도 의문으로 남는다. 게다가 고가의 마세라티 승용차지만 블랙박스도 없었다. 해당 법인은 “되돌려 받지 못한 차량”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현재 경찰은 이 서울 소재 법인도 범죄 연루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찰은 이들이 조폭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찰 관리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 기반을 두고 보이스 피싱이나 자금세탁 등을 하는 조직이 연루된 사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김 씨는 경찰에 검거된 뒤 서울의 한 법무법인을 선임해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