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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제도’는 회사의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사진과는 별도로 외부의 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것을 뜻한다. 대주주와 관련이 없는 전문가 집단이 이사회에 참가해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독하고 조언하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파악한 5대 재벌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들은 총 123명이다. 이 중 38%에 이르는 47명이 현직 대학 교수들이다. 대부분 각 기업의 전문분야에 부합하는 전공을 갖고 있는 인사들로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취지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5대 재벌 사외이사 123명 중 교수들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사들이 전직 검찰·법원 인사들이란 점이 눈에 띈다. 판·검사 출신 인사들만 17명에 이른다. 이들 뒤를 잇는 그룹이 정·관계 출신 인사들로 16명에 이른다. 사외이사들 123명 중 27%에 해당하는 33명이 법조계와 정·관계 출신인 셈이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5대 재벌이 거느리고 있는 사외이사들은 이미 각계에서 경력과 인맥을 인정받는 인사들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상장사 협의회가 조사한 2006년 사외이사 현황에 따르면 비상근임에도 이들이 매년 기업으로부터 받는 보수는 수천만 원에서 1억 원대 사이로 알려진다. 50대 기업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4000만 원 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기업에선 차량이나 개인비서 등을 제공하기도 하며 필요할 경우 막대한 활동비를 지급한다는 얘기도 있다.
재벌그룹들은 사법당국 경제부처 정치권 등과 항상 긴장국면을 연출해왔다. 사외이사 제도가 재벌들에게 외부 전문가의 식견을 얻어내는 차원을 넘어 법조계와 정부부처에 대한 로비와 동향 파악 등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돼 왔다는 것은 이미 재계에서 공공연한 이야기다. 관계 출신 중에서도 유독 기업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법조계 출신이나 공정위, 금감원 등 소위 감독기관 출신 전직 ‘고관대작’이 더욱 대접받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재벌그룹이 거느린 사외이사진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1. 법조인 출신
삼성
5대 그룹 핵심 계열사에 소속된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들 17명은 하나같이 서울대 출신이다. 이들은 검찰·법원 조직 내에서 엘리트 군으로 분류되다가 변호사로 직종 전환을 하면서 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았다.
삼성그룹은 이미 초호화 법무실을 거느리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들은 별도로 법조 출신 사외이사까지 거느리고 있다. 국내 법인 중 가장 높은 수익과 매출을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두 명의 법조 출신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정귀호 변호사는 37년간 법원에 몸 담은 법조계 원로다. 지난 2003년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직을 맡은 정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법률고문 등을 지냈다.
윤동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기(사시 12회)로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부산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쳐 법무부 보호국 국장을 역임했다. 그밖에 삼성테크윈은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를, 삼성중공업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의 고중석 변호사를 각각 사외이사진에 포함하고 있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으로 지난 2003년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검찰 소환 시기가 자꾸 미뤄지는 것이나 1월로 예정됐던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 연기를 두고 삼성의 대 법조계 로비에 대한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들 사외이사들은 현재 에버랜드 사건 재판장인 조희대 부장판사(사시 23회)나 에버랜드 담당검사인 이원석 검사(사시 37회)와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이들 현직 판·검사들의 사시 선배들이다.
현대차
현대자동차 사외이사인 김광년 법무법인 삼한 대표변호사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위원,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등을 역임했다. 기아자동차엔 신건수 법무법인 케이씨엘 강남사무소 대표변호사가 있다. 사시 17회인 신 변호사는 대검 공안과장과 서울고검 공안부장 형사부장 등을 거쳤다.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다. 우 변호사는 조세법 전문가로 유명하며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산업개발 하이닉스 반도체 등 범 현대가 기업들의 사외이사를 거쳤다.
현대오토넷 사외이사인 한상호 변호사와 이정수 변호사는 모두 김&장 법률사무소 소속으로 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이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이다. 김&장은 현대차 비자금 사건 당시 정몽구 회장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법조 출신 사외이사진도 제법 화려하지만 삼성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다는 평이다. 정몽구 회장은 얼마 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현대차 법무 진용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마저 나돌게 됐다.
SK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를 겪은 SK그룹도 화려한 법조 출신 사외이사 진용을 구축해놓았다. 지주회사인 SK(주) 소속 사외이사인 한영석 법무법인 우일 대표변호사는 최태원 SK 회장의 장인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기에 법무부 차관, 서울고검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제일제당 사외이사를 거쳐 지난 2000년부터 SK 사외이사진에 합류했다.
SKC엔 서석호 서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있다. SK케미칼에는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이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윤 부회장을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서울고법 판사를 역임한 강보현 법무법인 화백 변호사도 SK케미칼 사외이사다. SK C&C 사외이사인 이종욱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LG
3대 재벌과 비교해 LG의 법조 출신 사외이사진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LG석유화학 사외이사로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수원지검 검사장 등을 거친 이기배 변호사가 유일하다. 지난해 구본무 회장이 공동대표이사로 있는 서브원의 임원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던 바 있다. 외환은행이 LG-CNS와 장비 거래를 했던 것을 두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물증을 LG로부터 확보하려는 수사당국의 의도로 풀이되기도 했다. 이는 LG가 다른 재벌에 비해 검찰·법원 라인에 대한 정보망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롯데
롯데그룹에선 롯데카드에 있는 서울지검 검사 출신 방현 변호사가 눈에 띈다. 지난해 상장을 해 관심을 끌었던 롯데쇼핑엔 부산지검 검사 출신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법률고문 경쟁정책자문위원 분쟁조정위원 등을 거친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있다.
2. 정부 관료 출신
삼성
삼성그룹은 정부 관료 출신들 중 국세청 출신 인사들 영입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황재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서상주 전 대구지방 국세청장은 삼성물산 사외이사로, 박석환 전 중부지방 국세청장은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각각 재직 중이다. 제일기획 사외이사인 서승일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재경부 국장과 대통령비서실 조세금융비서관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현대차
정부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던 현대차는 지난해 3월 조학국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해 ‘관료 출신 사외이사 1호’ 탄생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공정위로부터 납품단가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를 받던 현대차가 차기 공정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조 전 부위원장을 영입하자 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빗발쳤고 결국 조 전 부위원장이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된 바 있다.
SK
SK그룹은 법조 출신 사외이사진과 마찬가지로 노태우 정권 당시 관료로 이름을 날린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1988년 12월에서 1990년 3월까지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조순 전 서울시장이 2004년부터SK(주)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SK C&C 사외이사인 이석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정통부장관과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금감위 기획행정실장을 거쳐 예금보험공사 부사장을 지낸 김석원 사외이사도 눈에 띈다.
LG
LG그룹의 사외이사진 리스트엔 유독 DJ정권 실세 인사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DJ정권에서 초대 기획예산처장관과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진념 전 부총리가 2004부터 LG전자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DJ정권 시절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이헌재 사단의 시니어급 멤버인 오호수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도 LG화학 사외이사진에 포함돼 있다. LG데이콤엔 DJ정권 시절 산업자원부 정책자원실장을 지낸 서사현 중소기업유통센터 대표가 사외이사로 올라있다.
LG그룹은 과학기술 분야 관료 출신 영입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주)LG 사외이사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13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거쳐 경실련 고문 등을 역임했다. 16대 은행감독원장과 17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용진 안건회계법인 고문도 (주)LG 사외이사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LG텔레콤은 현 정부 출신 관료 수혈을 통해 외연 확대를 노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LG텔레콤 사외이사인 이동걸 전 금감위 부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원회 위원을 거쳐 금감위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LG텔레콤 사외이사인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밖에 LG생명과학엔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 출신인 이영순 전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이 사외이사로 있다.
롯데
한편 다른 재벌그룹과는 대조적으로 롯데그룹에선 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강윤구 롯데쇼핑 사외이사가 유일한 관료 출신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