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의혹 관련자 잇단 불출석, 동행명령엔 연락두절…민주당 의석 수 앞세워 증인 채택 비판도
#논란의 인물들 잇따라 불출석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5조는 증인 출석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에 따르면 상임위 위원은 신청 이유, 국감과 관련성 등을 기재한 신청서를 제출한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증인·감정인·참고인 출석 요구를 하면 위원장이 당사자에게 출석 요구서를 발부한다. 요구서는 출석 요구일 7일 전 송달돼야 한다.
증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출석 요구일 3일 전까지 위원장에게 사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는 불출석, 출석요구서 고의 회피, 서류 제출 요구 거부,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 거부 등을 한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명태균 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8일 행정안전위원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두 사람은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들이다. 2022년 보궐선거 때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 부부가 김 전 의원 공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22대 총선 때는 공천배제 소식을 접한 김건희 여사가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김 전 의원 사이에 명태균 씨가 중간다리 역할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명 씨는 검찰이, 김 전 의원은 공수처가 사건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불출석하겠다고 했다.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명 씨와 김 전 의원을 수사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두 사람과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고발 사건을 수사4부에 배당했다.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를 운영한 명 씨가 윤 대통령에게 3억 7000만 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10월 10일 행안위는 명 씨와 김 전 의원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동행명령 안건은 재적위원 22명 중 출석 21명, 찬성 14표, 반대 7표로 가결됐다. 야당 의원 전원이 찬성했고 여당 의원 전원이 반대했다. 국회 관계자들은 명 씨와 김 전 의원 거주지 등으로 찾아가 동행명령장을 송달할 예정이다. 여당 간사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불출석한 증인이 5명인데, 거주지가 경남이라 물리적으로 오늘 내 동행명령이 어려운 이들 2명에 대해서만 꼭 집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나”라고 지적했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이유로 행안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김 전 행정관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공격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야당은 김 전 행정관의 SGI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 임명에 특혜가 있었다고 의심한다. 김 전 행정관은 10월 7일 상근감사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부부가 김 전 행정관과 일면식도 없다는 입장이다.
김 전 행정관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형사소송법 제148조를 불출석 근거로 제시했다.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형사소송법 제148조에 해당하는 경우 선서 또는 감정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형사소송법 제148조에는 본인이나 친족이 형사소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으면 증언을 거부할 수는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국감에 불출석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지용 국민학원 이사장은 3년 연속 불출석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김 이사장이 불출석 사유서에 해외 출장을 사유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10월 6~27일까지 미국에서 체류하며 글로벌캠퍼스 설립 가능성 등을 논의한다. 지난 국감 때도 ‘글로벌 캠퍼스 구축’과 ‘해외 교육사업 모색’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장윤금 전 숙명여대 총장과 설민신 국립한경대 교수도 각각 해외 출국과 가정사 등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 모두 3년째 국감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법사위는 김영철 북부지검 차장검사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김 차장검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김 여사 관련 사건을 담당했다. 김 차장검사가 부장검사로 재직하던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관련 사건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민주당은 봐주기 수사인지 규명해야 한다며 김 차장검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김 차장검사는 국정농단 수사 때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에게 허위진술을 교사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본인은 탄핵 심판 중으로 직무 정지상태여서 10월 7일 국정감사 출석이 어려우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10월 7일 과방위 국감장에서는 이 위원장 불출석을 두고 여야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야당 의원들은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국회 모독죄를 적용하겠다고 경고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 위원장에 대해 면박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며 반발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감장에 출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노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과정에서 나온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다. 노 관장은 휴대전화를 꺼두는 등 국회 연락을 피하거나 우편으로 보낸 출석 요구서를 반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출석 사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노 관장 동생 노재현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도 같은 이유로 불출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9월 30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전날인 29일 장 고문은 일본으로 출국했다. 국회는 영풍그룹의 환경오염 물질 배출, 산업재해 등을 질의한다는 계획이었다. 10월 4일 장 고문은 국회에 지병 악화 등의 이유가 담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장 고문이 국감을 회피할 목적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고 지적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놓고 해외 출장을 갔다. 경영권이 없다면서 기업을 위해 해당 업무를 꼭 해야 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증인 채택을 두고 거대 양당이 힘겨루기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전방위적인 증인 채택에 대해 과도한 출석 요구라고 반발한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증인을 선택적으로 채택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은 김종기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장과 수사팀 실무자를 증인 명단에 올렸다. 이상식 민주당 의원은 22대 총선 때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용인동부경찰서가 이 사건을 수사해 검찰에 송치했다. 당 소속 의원을 수사한 경찰을 증인 명단에 올린 셈이다. 이후 ‘셀프 증인 채택 논란’ 지적이 나온 뒤 이 의원은 사전 소명된 부분이 있다며 증인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권순일 전 대법관, 남욱 변호사,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국민의힘이 신청한 증인은 채택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 성남시장 재직 시절 불거진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 관련 증인들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에 불리하게 발언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인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딸 문다혜 씨 증인 채택도 불발됐다. 민주당이 김 여사 관련 증인을 부르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 사법리스크 관련 인물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려고 시도하면서 국감이 ‘김건희 대 이재명’ 구도로 얼룩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거대 의석수를 앞세운 민주당의 입법 횡포가 이번 국감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여야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증인을 채택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어버렸고, 급기야 증인 동행명령장을 남발해 가며 출석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곽 수석대변인은 “특히 행안위 국감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서장과 실무자들을 모조리 증인으로 요청하면서 ‘셀프 보복’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동행명령 유명무실
민주당은 불출석 증인에 대해 동행명령 카드를 꺼내들었다. 상임위 위원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에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다.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동행명령장 수행을 회피하면 제13조 ‘국회 모욕의 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10월 7일 국회 행안위 소속 야당 위원 13명은 ‘21그램’ 김태영·이승만 대표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21그램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 컨텐츠’ 후원업체다. 이 유착 관계를 빌미로 대통령 관저 공사를 경쟁 없이 수의계약을 따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두 대표는 행안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안위는 같은 날 증인들을 행안위 전체회의장에 동행하도록 하는 동행명령장 발부의 건을 상정해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방적 의견이라고 반발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여당 간사 조은희 의원은 “다수당이 대통령실 관련 증인 동행명령만 밀어붙이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신정훈 행안위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소속 의원들은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역 인근 사무실을 찾았지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지 못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문을 두드리고 인기척을 확인해 보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 앞에는 오래전부터 비워둔 흔적이 보인다”며 “행안위에서는 증인 출석에 대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반드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증인으로 세워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동행명령의 강제력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과 달리 동행명령장은 강제력이 없다. 불출석 이유가 정당하면 법원에서 유죄가 나올 가능성은 낮아진다. 명령장 자체를 수령하지 않아도 처벌하기 어렵다.
국감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라는 평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부분 200만~10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징역형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박근혜 청와대 비밀문건 14건을 최순실 씨에게 건넨 혐의와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자리에 불출석하고 동행명령을 거부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공무상 비밀누설,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혐의가 중첩됐을 때 징역형이 나오는 셈이다.
행안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21그램 김태영·이승만 대표는) 동행 명령을 했는데 회피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후에도 종합감사가 있다. 또 한 번 (동행명령을 발부하는 차원의) 어떤 강력한 조치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증인으로 소환하는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