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머니볼 신화, 결국 뒷주머니로 쏘옥~
이장석 대표가 법정 구속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과의 소송이 중심에 있었다. 2008년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결국 악연으로 이어졌고 오랜 소송을 반복하며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민사 소송과 이 소송이 형사 소송으로까지 확대된 내용을 살펴본다.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2008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파산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이는 당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자문회사 대표인 이장석이었다. 센테니얼의 회사 자본금은 총 5000만 원. 7구단 체제로는 정상적인 리그가 운영되기 힘들다는 KBO와 하일성 사무총장의 지원에 힘입어 자본금 5000만 원을 들고 이 대표는 야구단을 손에 쥘 수 있었다.
KBO도 야구단을 듣도 보도 못한 사업가에게 그냥 넘겨줄 리 만무했다. 신규 구단이 KBO의 승인을 받으려면 120억 원의 가입금을 내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당시 메인 스폰서로 손을 잡은 우리담배를 비롯해 여러 군데서 돈을 끌어와 1차 가입금을 보냈다. 문제는 2차 가입금 가운데 24억 원이 부족한 부분이었다.
이 대표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박성일 고문을 통해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을 소개받았다. 홍 회장은 미국에서 부동산투자개발로 수천억 원의 돈을 벌어들인 재산가였다. 홍 회장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성일 고문이 내게 젊고 유능한 기업인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라고 해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에서 이장석 대표를 처음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홍 회장에게 여러 가지의 투자 제안을 했고, 마침 야구단 인수를 하면서 가입금이 부족하자 홍 회장에게 새로운 투자 제안서를 보낸다. 다음은 홍 회장의 설명이다.
“어느 날 이장석이 내게 가입금을 내야 하는데 24억 원이 모자란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그 가입금을 내지 못하면 야구단을 KBO에 빼앗긴다고 읍소할 정도였다. 나로선 한국의 젊은 친구를 도와야겠다는 자선의 의미로 처음엔 10억 원에 20%의 지분을 요구했다. 돈이 아닌 지분을 요구했던 건 히어로즈의 앞날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야구단에 문제가 생기면 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투자로 못을 박은 것이다. 그래서 2008년 7월과 8월 10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 20억 원에 40%의 지분을 양도해주기로 약속했고 이 대표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까지 받았다.”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성은 회장에 대해 “매일 자살을 꿈꾸던 시기에 구세주처럼 투자자가 나타났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2008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홍성은 회장, 박성일 고문에 대해 “내 정신적인 멘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장석 대표 측의 서울 히어로즈는 홍 회장이 투자한 20억 원이 투자금이 아닌 단순 대여금이라고 주장했고 대한상사중재원의 홍 회장의 주주 지위를 부인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당시 이장석 대표 측의 변호인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금전대출계약서가 투자계약서로 변질돼 온 것을 보고 문제가 심각한 걸 인지했다. 그때부터 야구계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홍 회장이 히어로즈 최대주주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은밀히 야구단 매각을 알아봤다는 내용이었다. 구단 입장에선 이런 소문이 확대될 경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물밑에서 소문의 주체가 홍 회장인지를 확인하는 중이었고, 결국엔 2012년 대한상사중재원에 주주 지위 부인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2012년 대한상사중재원은 홍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홍 회장에게 지분 40%를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 히어로즈는 히어로즈의 주식이 없기 때문에 이 대표는 변제의 의미가 없다고 맞섰다. 20억 원의 투자금은 법정 이자를 붙여 28억 원의 돈으로 보상하겠다고 했고, 홍 회장은 이를 거절했다.
넥센 히어로즈의 구단주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가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법정 구속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 사이 홍 회장은 이장석 대표가 지분을 양도할 의향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이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게 된다. 다음은 홍성은 회장의 설명이다.
“2012년 5월 서울 히어로즈 측에서 나를 상대로 주주지위 부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그동안 중재판정, 집행판결, 채무부존재확인판결 등 오랜 소송이 잇달았다. 처음에는 이장석 대표가 먼저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 신청을 한 게 황당했지만 지금은 내가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그의 잘못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검찰이 이 대표의 계좌들을 통해 수상한 돈의 흐름을 감지했고 의심스러운 전표들을 발견하면서 이 대표와 남궁종환 부사장이 82억 원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기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이 8년을 구형한 배경이기도 하다.”
2일 선고공판에서도 드러났지만 이장석 대표가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수감된 가장 큰 이유는 홍성은 회장에게 투자받은 20억 원에 대한 40%의 지분 양도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홍 회장에게 애초 주식을 양도할 의사가 없었다며 사기죄를 인정했다.
이장석 대표는 또한 횡령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받았다. 2012년 2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야구장 내 매점 임대보증금 반환 등에 관해 장부를 조작해 회사 돈을 개인 비자금으로 쓴 혐의도 받았다. 회사 정관을 어기고 인센티브를 받았으며 상품권 환전 방식으로 수십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홍 회장은 “이 대표는 히어로즈 구단 계좌로 보낸 20억 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빼낸 후 다시 회사 대여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 이자를 받아 챙겼다”면서 “남의 돈으로 이자를 받은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난 인내심을 갖고 이 대표가 자발적으로 지분을 양도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주위에서 더 이상 이 대표의 옳지 못한 행동을 두고 봐선 안 된다고 나를 설득시켰다.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미 검찰의 8년 구형으로 선고 공판에서의 법정 구속이 예견됐던 이장석 대표. 재판부는 이 대표를 향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비롯해 주주들도 엄벌을 요구했다. 따라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일주일 내 항소할 수 있는데 야구인들은 이 대표가 반드시 항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수협회 김선웅 사무총장(변호사)은 이장석 대표의 법정 구속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가능성을 보여줬던 구단주였는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게 안타깝다. 무엇보다 야구단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이장석 대표는 야구단 마케팅의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고 선수 구성을 잘해서 성적을 내면 야구단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 부분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결국 선수들의 권한과 권리가 강화되려면 야구단은 구단주가 아닌 선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수들의 일탈 행위에 이어 구단주가 야구단을 이용한 범죄 행위까지 저지르며 막장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히어로즈가 양심적인 전문가에 의해 운영된다면 대기업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체 수익을 만드는 야구단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히어로즈의 운명은? 홍성은 회장 “지분 양도 되면, 전문 경영인 내세울 것” 안개 정국인 히어로즈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홍성은 회장 측은 히어로즈 측이 법의 판결을 인정하고 이사회를 열어 주식 양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장석 대표는 항소를 통해 시간을 끌겠지만 그러는 사이 지배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것은 구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동안 히어로즈는 수차례 매각설에 휩싸였다. 대기업, 유명 IT 기업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다. 그렇다면 히어로즈의 매각은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전지훈련을 떠나는 넥센 히어로즈 선수들.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변호사 출신의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법률적인 리스크가 있어 매각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각이 되려면 먼저 홍성은 회장과의 지분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 어느 기업에서 지분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회사를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서겠나. 홍 회장과의 지분 정리를 하지 않으면 히어로즈의 매각은 현실로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히어로즈 자사주가 없는 상황에서 신주를 발행해 홍 회장에게 지분 40%를 양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상황이 워낙 복잡해서 당분간은 소송전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홍 회장도 “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지금은 매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홍 회장은 자신에게 40%의 지분이 양도된다면 매각이 아닌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야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야구단은 전문인한테 맡기고 난 뒤에서 야구단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야구단은 구단주의 개인 소유가 아닌 땀을 흘리는 선수들, 팬들의 것이다. 개방적인 경영, 열린 마인드의 경영으로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운영을 해나갈 것이다.” 김선웅 사무총장은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 인수해서 운영해온 히어로즈 구단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야구단은 모기업의 감사와 보고 체계로 횡령이나 비리를 저지르기 어려운 구조이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이장석 대표가 회사 돈을 쉽게 빼서 쓸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다보니 핵심 경영진과 대주주가 야구단 관련 불법 행위에 연루되고 말았다. 대주주를 바꾸고 건전한 투자 그룹이 들어와야 히어로즈가 흔들림 없이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