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측 ‘공개매수가 89만 원’ 승부수…장기전 관측 속 향후 양측 자금 부담 우려 높아
우리 자본시장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공매도가 금지된 상황에서 공개매수 경쟁이 과열됐고 고려아연이 그동안 지배구조 정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공개매수 경쟁의 최대 수혜자가 회사나 주주가 아닌 제3자가 될 가능성은 또 다른 화두다. 공개매수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 대부분을 결국 고려아연에서 부담하는 구조 때문이다.
#고려아연, 이겨도 불안한 최윤범 회장
공개매수 성패는 결국 가격이다. 영풍과 MBK는 83만 원보다 더 값을 높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고려아연은 10월 11일을 공개매수가를 기존 83만 원에서 89만 원으로 상향했다. 주주들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유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경쟁에서 이겨도 최 회장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고려아연 측이 이겨도 영풍·MBK는 여전히 지분 33%를 가진 최대주주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는 자사주 매입 형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에 성공하면 기존 주주들의 의결권 비율이 그만큼 높아진다. 영풍 측 지분율도 33.13%에서 39.2%가 된다.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이다. 최윤범 회장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2%가 안 된다. 최씨 일가 수십여 명 지분을 다 모아야 18%를 넘는 수준이다. 현대자동차, 한화, LG 등 우호 세력의 지지가 없이 최 회장 단독으로는 경영권 유지가 불가능하다. 7.49%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도 MBK에 투자하는 주요한 고객(LP)이다. 이해관계가 비교적 일치한다.
영풍은 이번 경쟁에서 설령 지더라도 지분율을 더 높여 계속 경영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MBK는 지난해 12월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당시에는 목표주식 미달 시 매수하지 않는 옵션을 적용해 자금 부담은 미미했다. 이번에는 목표에 미달해도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즉 이번에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해도 다음에 재도전할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영풍, 이기면 진짜 승자는 MBK
최윤범 회장과 달리 영풍은 이번 공개매수에서 승리하면 장씨 일가의 중심의 경영권 확립이 가능하다. 영풍이 직접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이 많고 고려아연 최 회장과 달리 영풍 계열은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 남매로 지분이 집중돼 있다. 오히려 관건은 MBK와의 정산이다. 사모펀드들은 보통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낸다. 저금리 상황에서 국내 증시가 호황일 때는 기업공개(IPO·상장) 등을 통해 수익을 회수했다. 금리가 오르고 증시가 가라앉으면서 증시를 통한 투자 회수가 어려워지자 최근 사모펀드들이 경영권 관련 공개매수 등에 적극 뛰어드는 모습이다. 실패를 해도 부담을 줄일 장치들을 활용할 수 있고, 승리를 하면 경영권을 가진 쪽에 보유 지분을 넘기면서 투자 회수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개매수 자금 2조 5000억 원 중 대부분을 MBK가 조달한다.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가 하락해 평가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MBK는 고려아연 특별배당 추진과 함께 영풍 측에 지분 재매입까지 요청할 수 있다. 영풍은 현금이 넉넉하지 않다. 재매입 대금은 고려아연에서 뽑아내야 한다. 사모펀드는 보통 연 10% 이상의 수익률을 추구한다. 3년 안에 수익실현(엑시트·Exit)을 한다면 최소 3조 5000억 원 이상을 회수해야 한다. 영풍이 고려아연에서 진짜 돈을 벌 수 있는 시점은 MBK가 투자 회수를 완료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고려아연의 곳간은 최윤범 회장이 자사주 매입에 성공해도, 영풍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도 대부분 털려야 할 운명인 셈이다.
#MBK 공개매수 가격 인상 멈춘 이유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주도하던 MBK는 최근 추가 인상 중단을 선언했다. 성패가 가격에 달렸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을 버린 셈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당거래 조사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번 승부가 아니더라도 다음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존재하는데 굳이 불법을 저지를 위험까지 감수할 이유는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카오는 SM엔터 공개매수에 성공했지만 이후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돼 재판까지 받고 있다. 자칫 MBK도 김범수 위원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자본시장법은 시세조종과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먼저 176조(2항3목)는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에 관하여 거짓의 표시 또는 오해를 유발시키는 표시를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178조의2(2항4목)는 ‘풍문을 유포하거나 거짓으로 계책을 꾸미는 등으로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수요·공급 상황이나 그 가격에 대하여 타인에게 잘못된 판단이나 오해를 유발하거나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가격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불법이 확인되면 관련 손해액에 대한 배상과 벌금은 물론 1년 이상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MBK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막기 위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고려아연의 이익잉여금 상당부분이 사업을 위한 임의적립금이어서 자사주 매입에 쓸 수 없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MBK의 지적은 옳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MBK의 지적이 오해를 유발시키는 행위로 해석된다면 위법 의혹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개매수 과열…공매도 금지의 부작용
이번 경영권 경쟁 전 고려아연 최고 주가는 2022년 11월에 기록한 68만 5000원이다. 이후 주가는 꾸준히 미끄러져 올 3월 43만 원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경영권 경쟁 재료 없이는 고려아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1주당 83만 원)을 유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지난해 12월 공개 매수 선언 직후 한국앤컴퍼니 주가는 2만 3750원까지 치솟았지만 한 달 만에 1만 5000원대로 주저앉았다. 공개매수 경쟁이 정점이던 2022년 3월초 16만 원을 넘던 SM엔터 주가는 불과 한 달 만에 1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공매도는 주가가 많이 부풀려졌을 때 이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개매수로 주가가 부풀려 있을 때가 공매도 적기다.
공매도는 전략을 시행하는 주체뿐 아니라 주식을 빌려주는 주주들에게도 수익 기회다. 공매도가 가능하다면 공개매수가를 크게 높이기 어렵다. 공개매수에 맞설 수 있는 방법으로 대항공개매수 외에 공매도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장기적 발전에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높은 공개매수 가격 탓에 회사의 자산이 비싼 값에 자사주 매입에 소모되거나 MBK 같은 공개매수 재무적투자자(FI)에게 소진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금감원이 굳이 공개매수 과열 경쟁에 제동을 걸 이유도 줄어든다.
한편 이번 공개매수 경쟁에서 또 다른 수혜자들도 있다. 자금 대여자들이다. MBK는 NH투자증권에서 1조 5785억 원을 비롯해 1조 9596억 원을 9개월간 평균 연 5.6%에 빌린다. 이자만 817억 원에 달한다. NH투자증권의 이자 수익만 666억 원이다. 고려아연은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1조 1635억 원, 메리츠증권에서 1조 원 등을 차입하며 이자로만 1063억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가장 비싼 이자를 받은 곳은 메리츠증권으로 650억 원, 연 6.5%다. 차입 기간도 9개월이 아닌 1년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