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직장 내 괴롭힘’ 사건 국정감사…김주영 어도어 대표 “원론적인 얘기만 해” 지적도
15일 오후 2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및 지방고용노동청·노동위원회 등 고용노동부 소속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 뉴진스 멤버 하니와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겸직한 김주영 어도어 대표가 출석했다. 하이브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하니는 참고인으로, 김 대표는 증인으로 각각 자리에 섰다.
앞서 하니는 지난 9월 11일 뉴진스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얼마 전 회사 내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와 마주친 자리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으나 이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상대 측 매니저가 아티스트에게 자신을 무시하도록 종용하는 일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날 통역 없이 혼자 국정감사 참고인석에 오른 하니는 "당시 제가 그 일을 왜 당해야 하는지도, 일하는 환경에서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라며 "애초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국정감사) 나오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 또 묻힐 것이란 걸 알기에 나오게 됐다. 선배, 후배, 저희의 동기들, 연습생들 모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출석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을 폭로한 것은 직장내 괴롭힘 사태의 시발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간 쌓여왔던 게 터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하니는 "데뷔 초부터 회사의 높은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희 인사를 한 번도 받아주시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또 회사 내에서 느껴왔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으로만 생각했었지만 최근 벌어진 일들을 보며 회사가 저희를 싫어한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에서 '어도어' 또는 '하이브'의 직장명이 인증된 사용자들이 뉴진스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 글을 올리고, 며칠 전에는 하이브 홍보팀의 홍보실장이 언론에 뉴진스의 일본 데뷔 성적을 폄하했다는 '역바이럴 논란' 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서 하이브 전체에 뉴진스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하이브 측 인사로 지난 8월 27일 어도어 신임대표가 된 김주영 대표가 이 같은 괴롭힘 사건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니는 "제가 처음 이 사건을 말씀드렸을 땐 증거가 없다고 하셨다가 나중에 CCTV에 촬영된 인사하는 장면만 있다고 하셨다. 제가 분명히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왜 앞에 인사하는 장면만 있는지 이해가 안 돼서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니 진짜 앞에 8초(인사하는 장면)만 남기고 뒤에 5~10분 장면은 아예 없다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가 CCTV 관리하시는 분과 경호실장님 두 분과 미팅해서 왜 뒷부분이 없냐고 여쭤보니 미팅 내내 그 이유를 계속 바꾸시고 '영상을 삭제했다'는 말실수를 하셨다"라며 "저는 그 당시 대표님이 말없이 바뀌고(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해임) 모든 게 불안한데다 제가 외국인이라 한국어를 100% 이해 못하니 그런 중요한 자리의 미팅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녹음한다. 그래서 그 거짓말의 증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안이 특정 그룹의 문제나 이슈가 아니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법 밖의 근로자'에게도 상징적인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김주영 대표에게는 경영진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 보호 대상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김 대표는 "관련법상으로 아티스트는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근로자 여부와 상관없이 저희는 구성원과 아티스트간 상호존중행동규범 내부 가이드 라인에 따라 협업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은 구성원(아티스트 제외 일반직원)들 간의 문제로 한정돼 있으나 해당 가이드라인을 존중하며 일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놔 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또 직장 내 근로자에 해당하는 '구성원'과 아티스트는 별개라고 발언했으나 실제 하이브의 내부 규범에 아티스트가 구성원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산하 레이블끼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중재할 수 있는 '하이브'라는 모회사와 관련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 처리가 흐지부지된 점을 꼬집었다. 박 의원은 "양 측 회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하이브라는 그룹 차원의 문제이고, 인격체가 다른 회사 간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그걸 중재할 수 있는 상급(하이브)이 있는데 왜 중재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고, 김 대표는 "저희는 각각 독립적인 자회사로 저도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소속이 다른 매니저에게 강제하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박홍배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정작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여기에 없다. 미국에서 히히덕거릴 때가 아닌데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질타하면서 "이 사건은 거대 공룡 대기업 회사가 고객인 대중을 배신하고,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아티스트 인권 침해 논란까지 일으킨 막장 드라마인데 증인(김 대표)은 하이브 최고 인사책임자이면서도 '중재를 하려고 했지만 별도의 레이블이어서 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게 말이 되나"라고 질타했다.
경영진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김 대표의 발언에 하니는 "죄송한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더 하실 게 있었고, 애초에 저희를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럴 의지나 조치도 없었다"라며 "일단 제가 '앞으로 최선을 더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이 문제가 넘어갈 것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우재준 의원(국민의힘)은 이 사태가 앞선 하이브-민희진 간 경영권 싸움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우 의원의 "민희진 전 대표와 방시혁 의장 간의 싸움이 이 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하니는 "없을 순 없다. 그러나 그걸 떠나서 일까지 이렇게 할 필요는 없는데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김 대표를 향해서도 "대주주간 싸움이 있는데 소속 근로자나 구성원들 간에 팀을 나눠 괴롭히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회사에서 각별히 주의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한다"며 "증인은 처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는 질문에 굉장히 일반적인 사항만을 말했다. 사실 하이브 같은 경우는 그런 일반적인 절차 구성 외에도 대주주간 싸움이 구성원과 아티스트에게 미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했다"고 질타했다.
이날 하니는 마지막 발언을 이어가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제가 이 일을 겪으며 많이 생각했던 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하면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들은 없을 것이라는 거다. 앞으로도 선배나 후배, 동기, 연습생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자리를 마련해 준 의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팬들이)제가 한국에 와서 왜 이런 일을 경험해야 하냐고 걱정하시는 글들을 많이 봤는데, 저는 한국에서 가족 같이 생각하는 멤버들과 직원 분들을 만났고 한국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나라다. 그러니 제게 죄송해 하실 필요가 없는 일"이라며 "진짜 죄송하셔야 할 분들이 숨기지 말고 나오셔야 하는데 이런 자리를 피하시니까 너무 답답하다. 만일 또 이 자리에 나와야 한다면 그때는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나오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하이브의 2024년 일자리 으뜸 기업 선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홍배 의원은 이정한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에 "하이브는 근로자간 수평적 소통을 지향하고 '님' 호칭 커뮤니케이션 문화 등으로 일자리 으뜸기업에 선정돼 그 혜택이 적지 않은데 이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자리 으뜸기업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을 경우 철회가 가능한만큼 이를 취소하고 결과를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하이브의 일자리 으뜸기업 선정은 단순히 수평적 조직문화 뿐 아니라 이직률이나 일-가정 양립 지원 등 다양한 측면을 보고 현장 실사와 노사단체 평판 조회를 거쳐 어떤 하자도 발견되지 않아 공정하게 결정한 것"이라며 "다만 저희 지방관서에 이 건과 관련된 진정이 제기돼 있어 조사 결과가 나오면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