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 독일서 학업과 바둑 병행 3위 쾌거…“AI 등장해 동서양 실력 차 좁혀져, 서양 바둑 미래 밝아”
―이번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바둑 두는 상황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의 바둑 커뮤니티는 전쟁 이전에 250명 정도였다. 지금은 전쟁으로 상황이 변동되었지만, 여전히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번 대회에서 3위를 한 것은 분명 좋은 성과지만, 1위를 차지한 중국 선수와 2위 대만 선수는 프로급 기량을 갖고 있어 차이를 절감했다. 하지만 성적에 만족하고 더 발전할 기회를 찾고 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전쟁을 피해 독일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화학이 본업이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이 커서 고민이다(웃음). 하지만 최종 목표가 꼭 프로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프로 입단대회에는 계속 참가할 예정이지만, 직업은 전공을 살리고 싶다.”
―이번 대회에서 인상적인 대국이 있었다면.
“특별히 한 경기를 꼽기는 어렵다. 상대 선수들의 스타일이 다 달라서 어느 한 명이 최고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실력 면에선 5라운드에서 만난 대만 선수가 가장 강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개성과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당신의 바둑 인생에서 영향을 받거나 존경하는 기사가 있는가.
“어렸을 때는 이세돌 9단의 대국 모습과 기보를 많이 놓아보았고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기력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이창호 9단의 기보를 보면서 스타일을 바꾸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좋아하는 기사들이다. 이렇듯 내 바둑 스타일은 계속 변해왔기 때문에 영향 받은 기사 딱 한 명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 본인의 바둑 스타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액티브’하고 ‘파이팅’을 추구하는 바둑이다. 전투적인 플레이를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서양의 바둑이 한국 등 동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프로 제도의 역사가 깊은 동양의 시스템을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AI(인공지능)가 등장하면서 실력 차가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만일 AI에 정통한 사람이 서양에서 나타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지닌 친구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는 현재 15세인 옥시젠코라는 신동이 있다. 몇 년 후 그가 만일 이 대회에 참가한다면 1~2위를 다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유럽 각지에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아 서양 바둑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AI는 당신의 바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알 수 없어서 그냥 지나쳤던 명백한 실수에 대한 답을 정확히 제시해주는 것이 놀랍다. 더 중요한 것은 AI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마치 인격체처럼 내 바둑에 창의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AI 덕분에 바둑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도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프로 입단대회에 출전할 정도하고 하는데 유럽 내에서 본인의 랭킹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유럽 전체에서 20~25위 정도다. 나와 비슷한 수준이 10명 정도 되고, 월등히 강한 선수들도 10명 정도 있다. 그래도 더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친 크루셀니츠키는 이번 국무총리배 대회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대회 환경과 경기 컨디션, 숙박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다. 딱히 개선을 원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가끔 식사량이 조금 적게 느껴졌던 점이 있긴 했다”는 유머러스한 답변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회 일정을 마친 후 서울에서 하루 정도 관광을 할 예정이다. 좀 더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국은 다섯 번째 방문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이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 학업과 바둑을 병행하며 더 나은 성과를 목표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