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 같은 은행 계좌도 배상비율 제각각…은행 자의적 산정 의심, 투자자들 집단 소송 채비
개인투자자 A 씨는 2022년 홍콩 H지수 ELS에 가입했다. C 은행 영업사원이 A 씨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증권사 등을 통해 이미 ELS 상품 투자 경험이 있던 A 씨는 은행이 직접 ELS 상품 가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A 씨는 2022년 3월경 2개 계좌, 6월경 1개 계좌에 가입했다. 가입을 권유한 영업사원은 동일인이었고,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도 같았다. 총 3개 계좌로 투자한 금액은 1억 8911만 원 규모였다. A 씨가 가입한 ELS 3개 계좌에 대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배상비율이 책정됐다. 같은 가입자가 같은 은행에 가입했음에도 배상비율은 달랐다.
원화로 투자한 2개 계좌엔 배상비율 30%가 적용됐고, 달러로 투자한 1개 계좌엔 배상비율 40%가 적용됐다. A 씨는 “같은 영업사원을 통해 같은 투자자가 같은 은행을 통해 가입한 ELS 상품에 대한 배상비율이 다르게 책정된 부분에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이의신청을 했지만 은행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고 했다.
C 은행은 ‘이의신청 내용이 당행 홍콩 H지수 ELS 자율조정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객관적인 증빙서류 부재로 수용되기 힘들다’는 사유로 A 씨 이의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했지만, 배상비율 산정 기준을 보면 객관적인 수치자료는 제시되지 않았고, 자의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항목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배상비율을 산정 받는 과정에서도 왜 해당 비율이 산정됐는지 여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입 시기에 따라 배상비율이 다르게 책정된 것이라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투자자 B 씨는 2021년 3월 1억 2000만 원을 홍콩 H지수 ELS에 투자했다. B 씨 역시 C 은행 영업사원으로부터 상품 가입을 추천받았고, 3개 계좌로 상품에 가입했다. B 씨의 경우엔 원화로 투자한 2개 계좌에 대해 배상비율 25%를 산정 받았다. 달러로 투자한 1개 계좌에 대해선 배상배율 20%가 적용됐다.
B 씨도 C 은행 측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A 씨와 같은 이유로 이의신청이 거부됐다. B 씨 역시 배상비율 산정과 관련한 세부 근거에 대해선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했다. B 씨의 경우엔 상품에 가입한 시기도 모두 동일했다. 각 계좌가 다른 배상비율을 적용받는 이유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C 은행 측은 일요신문에 "(투자자가 동일인이어도 배상비율이 다르게 책정되는 것과 관련한) 디테일한 부분은 어떤 케이스인지를 봐야 설명이 가능하다"면서 "기준이 명확하게 나와있기 때문에 (배상비율 세부 배점 내용에 대해) 기본적으로 설명을 다 해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C 은행 측은 "세부적인 배점에 대한 확인을 영업점에서 가능한지 고객센터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부분은 확인해봐야 하지만, 큰 틀에서 배점표가 있기 때문에 설명은 가능하다"면서 "세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영업점에서 더 자세한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A 씨는 "은행 측에서 배점 기준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영업점 담당자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다"면서 "담당자 쪽에선 금감원 기준에 따라 평가했을 따름이라고만 했다"고 밝혔다.
홍콩 H지수 ELS 사태 대부분 투자자들은 2024년 3월 11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배상비율을 산정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분쟁조정기준안은 판매사 요인, 투자자별 고려 요소, 기타 조정 소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배상비율을 산정하도록 설계됐다.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홍콩 ELS 투자 손실 배상 기준에 따르면, 판매자별 요인에 따라 20~40% 사이에서 기본배상비율이 설정된다. 그 다음 ELS 가입을 은행이나 증권사 중 어디서 했는지에 따라 가중치가 적용된다.
투자자별 요인에서는 투자자마다 가진 특성에 따라 배상비율에 대해 최대 ±45%포인트(p) 가산과 차감이 이뤄진다. 예적금 가입목적, 금융취약계층, ELS 최초투자, 모니터링 부실, 비영리 공익법인 등 여부에 따라 배상비율이 가산될 수 있다. ELS 투자 경험, 금융상품 이해능력, 매입 수익 규모 여부에 따라 배상비율이 차감될 수 있다. 여기다 ‘기타 조정’을 통해 ±10%p 범위 안에서 배상비율이 최종 조정된다.
홍콩 H지수 ELS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 사이에선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분쟁조정기준안이 객관적인 기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수치를 통해 배상비율을 책정하는 알고리즘을 제시해야 할 금융감독원이 은행이나 증권사가 자의적으로 배상비율을 책정하게끔 울타리만 쳐준 격”이라고 호소했다.
이 투자자는 “기준이 마련됐고, 배상비율을 기준에 맞춰 책정하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왜 이런 배상비율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시켜줄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각 은행이나 증권사별로 투자자에 대한 배상비율을 금감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책정하고 있다”면서 “금감원이 기준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배상비율 책정 과정 및 투자자에 대해 세부적인 산정 내용을 안내했는지 여부를 추가적으로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투자자 800여 명으로 구성된 금융사기예방연대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 SC제일은행 등 홍콩 H지수 ELS를 판매한 6개 은행을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에 참여할 원고인단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법인 YK가 소송을 대리할 전망이다.
홍콩 H지수 ELS 투자자들은 “은행이 투자 위험성을 안내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권유한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취지 주장을 펼치며 손실액 기준 최소 50%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은행권은 대형 로펌과 손을 잡으며 소송전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원회는 업무현황 자료를 통해 홍콩 H지수 ELS와 관련한 각종 수치를 공개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판매사들이 책정한 평균 배상비율은 31.6%로 집계됐다. 홍콩 H지수 ELS 계좌 중 만기 손실 확정 계좌는 17만 건이다. 이중 자율배상에 동의한 계좌는 13만 9000건으로 전체 81.9%에 해당한다.
2023년 말 기준 은행이 판매한 홍콩 H지수 ELS는 15조 4000억 원 규모였다. 증권사 판매 금액은 3조 4000억 원 규모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최근 ELS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에 대해 자율배상 등 보호조치를 시행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