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구한 ‘훈장’ 덕 좀 볼까
▲ 박용만 부회장(왼쪽), 김동진 부회장 | ||
이 경제인들이 총수들에게 충성하다가 검찰 포토라인에 서거나 법정에 섰던 것이라면 이들 앞에 놓인 어둠의 터널이 그리 길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해당 기업에서 대접받으며 잘 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면 조치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재벌가는 두산 총수일가일 것이다. 2월 12일 특별 사면 명단에 포함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곧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며 7월 이후 경영일선에 복귀해 사실상 그룹을 장악할 전망이다. 박 전 회장과 더불어 특별 사면 대상에 오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또한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기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라고 한다.
박 전 회장의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은 지난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난 이후 줄곧 박 전 회장과 한 묶음으로 세인들 입에 올려진 인물이다.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박용만 형제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한 이후부터 동생인 박 부회장이 박 전 회장의 복심이란 말이 퍼지기도 했다.
2005년 11월 박 전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박 부회장도 외형상 근신에 들어갔지만 두산타워에 있는 별도 사무실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왔다는 전언이다. 업계 인사들은 박 전 회장이 없는 상태에서 두산그룹 경영은 사실상 박용만 부회장이 주도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박 부회장은 이번 사면조치에 이은 핵심 계열사 등기이사 선임으로 명실상부한 두산그룹의 2인자로 거듭날 전망이다.
지난해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정몽구 회장의 구속수감과 김동진 부회장 등 핵심임원의 기소 사태를 겪은 현대차그룹은 최근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진 부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이 많은 시선을 끌어 모았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정몽구 회장과 함께 기소돼 얼마 전 1심 공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현대차 조직개편을 앞두고 일각에선 김 부회장의 거취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정몽구-정의선 총수 부자 다음으로 그룹 내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지만 그 역시 재판을 받는 몸이라 정 회장 재판상황에 정신없는 현대차 조직을 수습하고 재정비하는데 전념하기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이번 등기임원 재선임을 통해 현대차 대표이사직함도 계속 갖고 있게 됐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한나라당에 100억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던 바 있다. 당시 검찰청사 주변에선 “김 부회장이 십자가를 짊어진 덕분에 검찰이 정 회장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 손길승 전 SK 회장 | ||
최근 김 부회장의 행보는 유죄판결을 받은 경제인들이 대부분 대외행보를 줄이고 외부노출을 경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2월 21일 인도 공장 방문차 출국하는 정 회장을 배웅한 뒤 곧바로 주야 2교대 근무제 도입을 놓고 골머리 앓고 있는 전주 공장을 찾는 등 활발할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정 회장의 남다른 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현대차가 위기상황을 타파하고 난 후의 김 부회장의 거취에 대한 관측은 여러 방향으로 갈리고 있다.
한편 손길승 전 SK 회장의 컴백설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 당시 그룹 회장직에 있던 손 전 회장이 옷을 벗었다. 당시 구속수감 됐다가 풀려난 최태원 회장은 손 전 회장이 없는 상태에서 소버린의 경영권 침공을 막아내며 LG를 제치고 SK를 재계 3위로 올려놓는 등 그룹 장악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손 전 회장은 최태원 회장과 더불어 재판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 이번 2월 12일 특별 사면에 포함될 수도 없었다.
회장직 사임 이후 칩거해오던 손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발간된
한편 한화그룹의 한 핵심임원도 이번 2월 12일 사면을 통해 경영일선에 복귀했다는 전언이다. 한화는 2004년 말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 정·관계 로비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해외에서 귀국을 미룬 김승연 회장은 검찰의 수사망을 피했으며 대신 해당 임원이 사법처리 된 바 있다. 한화 측은 총수 대신 십자가를 짊어졌던 이 임원이 구속수감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극진한 예우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