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승인 거치면 오너 부당이익 ‘면죄부’
▲ 터널링이란?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의 자원을 빼돌려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하며, 눈치채지 못하도록 터널을 통해 회사 밖으로 회사 자원을 빼가는 상황을 묘사한 용어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
올해 초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북한보다 재벌들의 지배구조 때문이며, 특히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희생해 오너 일가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터널링(Tunneling, 땅굴파기)’ 관행이 한국 주식 저평가와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회사기회 유용 행위는 회사자산 헐값 인수, 일감 몰아주기 및 대가 높이 쳐주기, 과다한 보수 지급과 더불어 대표적인 터널링으로 꼽힌다. 회사기회 유용 행위는 그간 경영권 승계자금을 마련하는 툴(Tool, 방법)로써, 증여·상속세를 피하면서 부의 대물림을 가능케 하는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벌가 오너의 자녀들이 그룹의 IT, 물류, 미래성장 신사업들을 담당할 새로운 회사를 소액의 자본금으로 설립한 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회사를 키운 후 상장시켜 경영권 승계자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정부는 회사기회 유용 금지 조항이 포함된 상법개정안을 마련했고, 국회를 통과하여 2012년 4월 15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개정상법 제397조의 2는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 없이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회사의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은 공통되게 개정상법이 재벌의 회사기회 유용 행위를 막는 데 충분하지 못하며, 보완책으로써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사의 감시기능 강화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상법 제397조 2의 전면적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 측이 지적한 개정상법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 행위 주체를 이사로 국한했기 때문에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재벌 오너 가족이 회사기회 유용 행위를 했을 때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둘째, 회사의 기회뿐만 아니라 회사 자산을 유용하는 행위를 규제할 필요성이 큰데 이것이 누락되어 있다. 셋째, 이사회의 승인만 거치면 법적으로 회사기회 유용이 정당화되는 효과가 있는데, 소유주로부터 이사회가 독립되지 못한 현실을 고려할 때 회사기회 유용에 대해 면죄부만 주는 셈이다. 넷째, 회사 유용 행위로 인하여 회사가 입은 손해의 배상만을 구할 수 있을 뿐, 회사가 그 행위로 얻은 이익 자체를 회사로 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안 후보의 지적은 수긍할 여지가 있다. 특히, 이사 총 수의 3분의 2 이상이 재벌 오너의 회사기회 유용 행위에 대하여 승인하면 설령 그 행위로 인하여 회사가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회사는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상 사외이사의 선임에는 오너의 입김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고, 사외이사들이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3분의 2의 승인을 받으면 손해배상청구를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위 조문의 개정 취지를 무시하고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까닭에서다.
또한 미국의 경우 회사기회를 유용한 이사에게 의제신탁(Constructive Trust) 법리를 적용, 회사가 이사에게 업무를 위탁한 것으로 간주해 이사가 얻은 이익 전부를 회사에게 귀속시키는데 개정상법에 따르면 단지 회사는 자신이 입은 손해액의 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사가 사업기회 유용 행위를 통하여 얻은 이득을 회사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상법 제397조 제2항은 이사가 회사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이사가 되는 경우 이를 경업금지의무 위반으로 보아 그가 얻은 이익을 회사로 귀속시킬 수 있는 ‘개입권’을 명문화해놓고 있는 데 반해, 회사기회 유용 금지를 규정한 개정상법 제397의 2는 개입권을 누락하고 있어 혹시 재벌 오너를 봐주기 위한 의도적 누락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 법원은 ‘회사기회’ 인정에 소극적이다. A 그룹 사건에서 오너 가족의 물류회사 설립이 회사기회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고, B 그룹 사건에서 오너가족의 지방백화점 지분 인수가 회사의 유망한 사업기회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회사 내에서 사업의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거나 회사가 유리한 조건으로 사업기회를 제안 받는 경우 등과 같은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회사기회를 인정하고 있는 경향이다.
따라서 미국의 기념비적인 구스(Guth v. Loft) 판결이 정의한 바와 같이 “회사가 재정적으로 수행 가능하고, 회사 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 되며 나아가 이를 실행함에 대해 합리적 기대를 할 수 있고, 이사 등이 사적으로 편취할 때 회사와 이해 충돌이 일어날 때 이는 회사기회”라는 것을 상법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기회 유용 행위에 대하여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의제신탁 법리가 적용되지 않아 재벌오너 일가가 얻은 이익을 회사가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재벌 후계자들이 취한 자본이익을 일종의 ‘의제증여’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재벌 가족이 신설한 C 사에 그 재벌그룹의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하고 일감을 몰아주어 급성장시킨 후 이를 상장할 경우 C 사의 주인인 재벌 가족은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게 되는데, 그러한 주식가치의 증가를 재벌그룹이 C 사로, 이를 다시 C 사의 주인인 재벌 가족에게로 이익을 나눈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하종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