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작성 김옥숙 여사 수사 가능성 배제 못해…“특별법 도입이 답이 될 수도”
최태원 회장이 법원에 처음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7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이혼할 수 없다”고 맞서다가 2020년 초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반소(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 청구 소를 제기했다.
노소영 관장이 패소한 1심 결과는 2022년 12월 나왔는데, 그사이 변수가 하나 생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심 결과가 나오기 전인 2021년 10월 26일 사망한 것. 이후 노소영 관장 측은 법적 대응 전략을 바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을 2심 법정 대응에 추가시켰다. 그리고 지난 5월, 2심에서 완승을 거뒀다. 비자금이 SK그룹에 기여한 부분이 인정돼 최태원 회장의 재산 중 50%를 분할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공개적으로 꺼내들고 나오면서 국회를 중심으로 ‘수사 및 환수 필요성’이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가 ‘SK그룹 지분’을 인정받으려다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야 모두 질타한 노태우 비자금 사건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은닉 의혹은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에 대해 증인 출석을 요청했지만 모두 불출석했다. 올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는 노소영 관장과 노재헌 원장 두 사람이 여러 차례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들은 10월 8일 법무부 국정감사, 21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이어 종합 국정감사까지 모두 불참했다.
여야 모두 이를 질타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부분에 대해 공세를 펼쳤는데, 심우정 검찰총장은 관련 질의에 “법과 원칙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칙론적인 입장이지만 여야의 공세에 수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에 접수된 고발장은 3건이다. 노소영 관장 측은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망자에게 법적 책임이 없는 것을 고려해 2심에 ‘비자금’을 추가했다가 검찰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된 셈이다. 비록 노 전 대통령은 사망했지만 김옥숙 여사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없지만 김옥숙 여사는 있다(?)
노소영 관장이 이혼 재판 중 제출한 부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수사 필요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 관장은 2심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선경 300억 원’이라고 쓴 메모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메모에는 선경 300억 원 등 총 904억 원 규모의 비자금 내역이 담겼다. 이를 토대로 노 관장 측은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선경그룹(SK그룹 전신)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해 최태원 회장이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김옥숙 여사의 메모, 동아시아문화센터 기부금 152억 원, 차명보험 210억 원 등 정말 해명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다”며 “탈세 의혹에 대해서도 너무 의혹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도 “김옥숙 씨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차명으로 농협중앙회에 210억 원의 보험료를 납입했다. 이는 김옥숙 씨가 1998년 ‘904억 원 메모’를 작성한 직후로, 더는 돈이 없다고 호소하며 추징금 884억 원을 내지 않던 시기”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단이 최종 변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재판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다. 300억 원의 비자금이 SK그룹으로 넘어간 것을 인정할 것인지, 인정한다면 당시 300억 원의 금액이 SK그룹에 기여한 몫을 50%(2심 판단) 그대로 봐줄 것인지가 변수다. 아예 대법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판결문 경정(오류 사실이 담긴 판결문이 작성된 것)을 이유로 파기환송해 2심에서 다시 판단하도록 할 수 있다. 강민수 국세청장이 국정감사에서 환수 가능성에 대해 “사실관계 부분이 3심에서 확정돼야 (국세청이) 움직일 수 있다”고 미온적으로 답한 이유다.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300억 원의 비자금 여부 및 기여 몫에 대해 판단하지 않을 경우 대법원 판단에만 최소 수개월, 파기환송심 1~2년, 다시 대법원 판단까지 1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도 최소 3년 안팎의 시간이 지나야 ‘사실관계 확정’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 흐름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당초 노태우 전 대통령 가족들이 비자금을 재판에 꺼내든 것은 50%가 아니라 일부라도 인정해달라는 목적이었는데 되레 ‘환수’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 전 대통령 가족의 비자금이 더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도는데 이 부분까지 검찰이 제대로 수사에 나설 수 있을지,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예민해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판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지금 법 기준으로 수사한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나 SK그룹을 기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환수를 목적으로 한다면 특별법 도입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